언제부터인가 커뮤니케이션하면 경청을 먼저 떠 올린다. 숫한 자기 계발서나 교육에서도 좋은 커뮤니케이션의 조건으로 경청을 강조한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도 상대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경청은 상호작용이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직장은 월요일 오전을 회의로 시작한다. 필자가 도움을 주었던 회사의 경우도 월요일은 전 직원이 모여 회의를 한다. 각 팀의 업무 브리핑이 끝나면 사장은 한 주 동안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직원들의 의견을 묻지만 말을 하는 직원은 그리 많지 않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사장의 일방적이며 지루한 이야기로 회의시간만 길어지지 않을까?”
“답은 정해져 있는데 뭘 말하라는 거야”
“남들도 아무 말하지 않는데 뭐 하러”
“잘못 이야기를 했다가 혹시 책임 추궁을 당하거나 일이라도 떠안게 되면 어떡해” 등등
직원들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경청은 상호작용이다.”
대다수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보면 말을 아끼고 들어야 하며 잘 듣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듣기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상대가 말을 하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잘 듣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해야 한다.
다시 회의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들 의견은 어떠신가요?”, “무엇이라도 좋고 누구라도 좋으니 생각을 말해 주세요.”라고 사장은 말한다. 평소 토론하는 회의문화가 정착된 조직이 아니라면 이런 상황은 곧 정적으로 이어진다. 기다리다 지친 사장은 결정타를 날린다. “그럼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기 의견을 말해봅시다.” 갑자기 직원들의 두뇌회전 속도가 빨라진다. “무슨 말을 해야 다른 사람과 중복되지 않고 튀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무시당하거나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대화에도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상대가 말을 쉽게 이어갈 수 있는 연결고리를 던진다. 이런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생각을 줄줄 풀어내게 된다. 경청은 이때 필요한 것이지 처음부터 “ 나는 들을 준비가 되었으니 이제 말해보세요.”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배가 닻(anchor)을 내리면 닻과 배를 연결한 밧줄의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는 것처럼 사람들도 머릿속에 특정 기준이 세워지면 판단의 범위가 제한되는 효과를 “앵커링 효과 Anchoring effect”라고 한다. 내가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하느냐가 상대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조직의 리더가 하는 말은 구성원들의 생각의 문을 활짝 열수도, 굳게 닫을 수도 있다.
"이해의 책임은 듣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에게 있다."
회의나 대화를 할 때 “잘 알아들었죠?, 이해됐죠?”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궁금한 게 있어도 물어보기가 꺼려진다. 혹시라도 질문을 하면 알아듣지 못한 것이 될까 봐, 상대가 그것으로 나를 평가할까 봐, 혹은 무시당할까 봐 등등 여러 가지 생각에 용기내기가 어렵다. 특히 그 사람이 조직의 리더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질문을 하게 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하려면 이해의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회의나 대화에 상대를 참여시키고 말을 하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 잘 알아들었죠?, 이해됐죠?”라는 말 대신
“지금까지 여러분과 나눈 이야기가 이렇게 정리가 될 것 같은데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요?”
“내가 제대로 말했나요?”
“혹시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누가 바로잡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런 말을 해보자. 그러면 상대방도 더 쉽게 그리고 부담감 없이 이야기의 고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