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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할인 Dec 30. 2020

[더 프롬] 후기

화려함은 익숙하고 고민은 얕다

넷플릭스는 디즈니와 더불어 콘텐츠에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고자 노력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예능, 스탠딩 코미디,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콘텐츠에 이러한 점들을 반영하기 위해 애쓴다. 그래서 <더 프롬>이 넷플릭스에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꽤 기대가 컸다. 흥미로운 소재, 화려한 캐스팅, 연출을 맡은 라이언 머피의 이름값 등을 고려하면 연말을 강타할 영화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심지어 국내에서는 극장에서도 상영하게 되어 뮤지컬 영화의 스케일을 제대로 만끽할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더 프롬>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일까, 배우들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건만 희한하게도 흥이 나지 않는다. 



<더 프롬>은 졸업식 파티에 여자 친구와 참석하고 싶은 시골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다. 이전에도 <풋 루즈>, <헤어스프레이>처럼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뮤지컬/음악 영화는 많았다. <더 프롬>은 여기에 LGBT를 섞었다. 하지만 <더 프롬>은 차별에 저항하는 이야기라기보다, 편견을 가진 이들을 끝없이 가르치고 조롱하려고만 한다. 러닝타임 내내 꽉 막힌 시골 이성애자들에게 LGBT를 받아들여야만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끝없이 강의한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주인공 커플이 아니라 주변인들이 한다는 점에 있다. 교장 캐릭터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스테레오 타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다 보니 배우들 개개인의 역량에 존재감이 크게 좌우된다. 게다가 대부분의 조연 캐릭터들에게 백 스토리 분량을 할당하다 보니 자연스레 신인 배우들인 주인공 커플들의 존재감도 희미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뮤지컬 시퀀스들도 아쉽다. 라이언 머피가 이전에 만든 <글리>보다 규모는 훨씬 커졌지만 오히려 무대 집중력은 떨어진다. 노래들은 나쁘지 않으나 매 시퀀스마다 감정은 과잉되고 미술은 너무 블링블링 요란하다. 모니터로 보면 모르겠는데 극장에서 보니 너무 휘황찬란해서 정신이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가장 큰 단점은, 이 화려지만 지루한 LGBT 강의를 결말에서 한 번에 퉁쳐버리고 만다. 그 많은 갈등들과 고민들을 피날레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선택은 그나마 영화에 남은 좋은 인상마저도 지워버리고 말았다. 



<더 프롬>은 넷플릭스와 라이언 머피라는 이름값에 비하면 많이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특히 라이언 머피가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드라마들을 꽤 재밌게 관람한지라 기대가 컸는데, 오히려 전작들의 잔상을 지워내지 못하는 바람에 <더 프롬>은 큰 특색 없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처럼 보수적이고 꽉 막히고 심지어 KKK단의 본진이었던 인디애나라는 동네가 인종에 상관없이 LGBT에게만 엄격한 것은 뭔가 아이러니했다. 게다가 웃긴 건 이 와중에도 아시안은 없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남자들에게>나 <반쪽의 이야기> 같은 작품들은 훌륭하게 만들어놓고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다 못해 울부짖는 <더 프롬>에서 아시안은 쏙 빠진 점은 매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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