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는 마치 ‘작업을 완수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시련을 완수한다’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완수해야 할 시련이 너무나 많았다. 따라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나약해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
반복적으로 회피하는 것들은 내 삶에 큰 제약과 두려움을 야기합니다.
올해 이런 것들을 깨보려고 두려워하는 것에 하나씩 도전 혹은 직면하는 중입니다.
예상한 대로, 생각만 할 때는 너무 두렵고 하기 싫지만, 막상 그 일이 끝난 후에는 ‘이게 뭐라고 그렇게 초조해 하고 전전긍긍했을까’ 생각합니다.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 같은 책
빅터 프랭클은 내가 삶에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보다 삶이 내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삶이 내게 특별히 주는 과제로서 시련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시련을 피하지 않고, 시련을 완수하기 위해 책임을 떠맡으며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시련이 올 때 책임을 떠맡을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는 어떤 일에 나를 던져 넣으며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시련을 자초하는 건 꽤 멋있는 일이 아닐까, 삶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을 얻습니다. 두려움에 덜덜 떨기보다 오히려 그런 적극성을 보이는 게 자신에게 자비로운 행동이 아닌가도 싶고요.
자비로운 행동이란 의도와 목적이 있는 집중된 행동이다. 자비로운 치료사는 환자가 자신의 불안이나 다른 것을 직면해서 그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꺼려할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강하게 밀어붙일' 수도 있다. - 마음챙김과 자비 (자비로운 마음 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