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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Oct 07. 2024

12년 차 직장인, (완전)퇴사를 선택하다.

10. 좋은데 싫은 양가적 감정 

투어(feat.병원+맛집+쇼핑+양가.. etc.) 

2년 반을 못했던 일들을 밀도 있게 해내려고 남편이 오기 전부터 종합검진을 예약했다. 지병이 있어 먹는 약을 처방받기 위한 전문병원과 대장내시경 예약도 잊지 않았다. 입국 후 3일 내로 다 마무리해야 출국 전 결과를 보고 이상이 있으면 추가 검진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여러 검진 결과에 추가 검사나 큰 병원으로 가야 할 이상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건강검진이 끝나자마자 수제햄버거집을 비롯해 동네에 함께 다니던 초밥, 등갈비, 떡볶이, 규가츠 등등 여러 맛집들을 방문했다. 집밥을 해주고 싶었는데 끼니마다 가고 싶은 식당을 골라둬서 집밥은 양가 어머니들이 주신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도 요리보다는 조리를 많이 하는 편이었고, 맛이 없으니 굳이 시도하지 않았다. 남편이 다시 출국하고 나서 이게 내심 마음에 걸렸었다. 맛이 없어도 정성으로 차려줄걸.. 

신혼때 자주 가던 쇼핑몰에 들러 쇼핑도 신나게 했다. 남편은 골프를 즐겨해서 매장에가서 시타도 해보고 갖고싶다던 드라이버도 구매했다. 수화물로 부칠수 있게 잘 포장해 갖고 돌아와 계속 뿌듯해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양가 방문 일정도 사전에 다 조율을 했었는데 먼저 시댁에 가서 형제들까지 한 번에 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2년 넘게 못 보던 아들, 동생이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준비해 주셨고, 두 살이나 더 먹은 조카들에게도 용돈을 주며 삼촌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본가에서도 부모님과 형제, 그리고 손주사위를 가장 예뻐하던 할머니까지 함께 했고, 아빠는 아끼던 양주를 꺼내놓으셨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사위였지만 그래도 항상 좋은 술을 내어주시던 아빠였다. 나의 조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만남이었지만 남편은 형식적인 인사만 했을 크게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본인의 친조카도 데면데면한데 울기만 하는 갓난쟁이 처조카가 이뻤을 리 만무하긴 하다. 입국하자마자 이렇게 병원, 맛집, 양가 투어를 마치니 5일이 지나있었다. 


생각해 보지 못 한 주제

부모님 댁에서 하루를 자고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직 숙취가 남아있던 남편이 아닌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매일 혼자 운전하다가 옆에 남편을 태우니 더 좋았던 것 같다. 연애 시절엔 내가 운전을 못해서 어딜 가든 남편이 항상 운전을 해서 집에 바래다주었다. 운전을 해보니 쉽지 않은 일인데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게 미안했고, 또 한결같던 그 모습도 내심 고마웠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내가 일을 그만두고 남편이 있는 곳을 가게 되었을 때를 가정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그 좁은 공간에서 둘이 함께였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의 생각은 맞벌이에서 외벌이가 되었을 때 어떻게 살 것인지에 집중되어 있었고, 나는 같이 살게 되면 우리의 삶을 어떻게 꾸릴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남편이 꺼낸 가장 의외의 주제는 '외벌이가 되면 양가 부모님께 매월 드리는 용돈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내 주변에선 다 그래 

외벌이가 된다면 수입이 반으로 줄어드니 당연히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주제가 초반에 나와서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양가에 드리는 용돈을 절반씩 줄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계산을 하던 차에 남편의 의도는 이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남편은 장인장모님께 매 월 용돈을 드려야 하냐는 것이었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이내 본인은 돈을 벌고, 내가 돈을 안 벌게 된다면 외벌이고 하니 본인 어머니에게는 용돈을 드릴 수 있지만, 장인장모님까지 드리는건 경제적으로 부담되지 않겠느냐 생각했다는 것이다. 본인 주변의 동료들한테도 다 물어봤는데 장인장모님께 용돈을 매 달 드리는 경우는 없다면서. 


기가 막혔다. 내가 커리어를 포기하고 해외살이를 고민하는 게 누구 때문인데 아직 일을 그만두지도 않은 내게 돈 버는 유세를 떠나 싶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런 식이면 당신이 백수가 되었을 때 시어머님에게 돈을 한 푼도 드리지 않아야 하는 거냐 되물었다. 더욱이 난 나만 돈을 벌어 가정을 유지하더라도 양가를 차별할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남편은 화를 내는 내 모습에 바로 주장을 누그러 뜨렸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과 주변 동료들에게 '너도 장인장모님께 매월 용돈을 드리냐?'라고 물었을 그 장면을 상상하니 화가 치밀었다. 안 그래도 모자란 시간에 남편과 이런 감정싸움을 할 줄은 몰랐는데 너무 서운하고 짜증이 났다. 이런 식이면 내가 돈을 계속 벌어야 무시당하지 않고 살겠구나 하는 생각도 잠깐 스쳤다. 


화해의 제스처는 바로....! 

그래도 운전을 하는 중이었으므로 격한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속에서는 열불이 났지만 나름 차분하게 생각을 전달했다. 집에 돌아와 짐 정리를 하고 씻고 소파에 앉아있는데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점심에 주변 맛집을 찾아다니고 데이트를 했지만 마음이 편치않았다. 남편도 이런 상황이 불편했는지 계속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던가, 좀 돌려서 의견을 물어봤다면 화가 덜 났으려나.  그날 저녁 집에서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 눈물이 터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있냐며, 내가 돈을 안 벌어서 우리 부모님께는 효도도 못하고 살아야 하는 거면 일을 그만두지 않아야겠다고 했다. 남편은 그렇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들 한다더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미안하다고 했고, 너의 남편이 돈을 벌지 않는다고 무시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냐며 여러 질문들을 던졌다. 


남편은 종이와 인주를 가져오더니 아내가 일을 그만둬도 지금과 같이 양가에 똑같이 효도를 할 것이며, 돈을 벌지 않는다고 아내를 구박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해서 지장을 찍은 후 내게 건넸다. 순간 남편이 해외에서 근무하지 않는다면 발생하지도 않았을 이런 상황과 각서의 내용이 웃퍼서 울다가 웃었다. 

장난스러운 각서 한 장이었지만 남편의 귀여운 행동에 화난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그렇게 화해를 하고 부부의 미래를 위한 선택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나누었고 제주도 여행도 계획했다. 


돌이켜보니 이 휴가기간동안 부부는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고 좋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논의하며 그 상황을 마주하는게 싫기도 했다. 짧았지만 감정싸움도 하게 되었고, 화해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휴가가 일주일 남짓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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