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디 공책 Nov 21. 2022

겨울 모기를 죽이고 싶다

겨울 모기를 죽이고 싶다

행사를 위한 옷을 챙겼다

아기의 옷가지며 기저귀. 먹을 것들을 챙겼다

이동 중에 먹을 우리 간식도 챙겼다

아기를 카시트에 누이고 짐을 싣고 기름을 채웠다

1박 2일 어떤 이를 위한 장거리 여행을 시작했다

3시간 반 운전 길 끝, 예약된 무인모텔에 도착했다

짐을 옮기고 우는 아기 달래 재우고 우리의 출출한 허기도 달랬다

6시간 자고 일어나니 출장 육아가 기다렸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집에서 하는 것처럼 다했다

꾸안꾸 단장을 하고 시간에 쫓겨 미용실에 갔다

누구는 머리를 하고 누구는 아기를 봤다

조금 일찍 행사장에 갔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일들이 시작됐다

왁스와 스프레이로 떡진 머리를 매만졌다

세계가 얽히고설켰다

뭉개진 하늘 아래서 두어 시간을 보냈다

괜찮나 좋은가 힘드나 편하나 모르는 걸 되물었다

아기하고 사람 둘 우리만 남았다

전구 빛이 반짝이는 놀이랜드에 갔다

추억을 남기고 시간을 보내며 잠시 웃었다

편의점에 들렸다

따뜻한 국물을 샀고 차가운 에너지드링크를 샀다

마셨다

원 플러스 원 제품 하나만 먹기 아쉽다나 두 캔을 땄다

운전자 그놈이 다 마셨다

밤길 운전을 했다

옆 차선의 차가 추장이와의 거리 1미터 전에 깜박이를 켜고 우리의 차선에 들어왔다

소리 낼 틈도 없이 옆 차선으로 운전대를 틀었다

살았다

사고가 나지 않았다

욕을 했다

휴게소에 들렸다

다시 출장 육아를 시작했다

4시간이 달렸다

개떡같이 주차한 이웃의 도움으로 어렵게도 주차를 했다

고생했다고 등을 토닥이고 아기를 재웠다

겨울 모기를 발견했다

벽에 붙어 있던 걸 놓쳤다

대충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이야기가 오갔다

못난 놈이 감정을 쓰레기통에 던지듯 툭툭 토해냈다

너를 향한 인내심은 육체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모깃소리가 들렸다

한 방 두 방 세 방 네 방 다섯 방 빈약한 동산이 피부 위에 생겼다

자잘한 새뀌

밥그릇도 작은 새뀌

피도 제대로 빨 힘도 없는 새뀌

어두울 때만 나타나는 비열한 새뀌

이 새뀌 잡으려고 새벽 귀한 한 시간을 보냈다

못 잡았다

포기했다

잠에 빠진, 좋은 사람 과분한 사람 예쁜 사람 여전히 설렘을 주는 사람을 봤다

불을 끄고 작은 창고 방으로 들어갔다

컴퓨터를 켜고 선풍기를 틀었다

메모장을 켜고 브런치를 켜고 맞춤법 검사기를 켜고 국어사전을 켜고 제목을 적었다

겨울 모기를 죽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맘마보다 사과가 우선인 아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