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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캥거루 May 04. 2019

퇴근3 - 심야식당

식탁 위 핏줄의 연대

 퇴근길 터벅터벅 뭐가 그리 황망했는지 빙빙 돌아 집에 들어오기를, 엄마가 집에 있다.
 “저녁 먹었어?”
 “아니 아직”
 “뭐 좀 해줄까?”
 당연한 것처럼 엄마는 내 끼니를 걱정한다.
 "볶음밥이나 하나 먹을까?".

 집에 오기 전까지, 사실 저녁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아니면 저녁 생각은 이런저런 잡생각에 밀려 집에 올 때까지도 그 생각을 하지 못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냥 멍하니 고개 숙이고 집에 들어오기를, 엄마의 저녁 얘기는 신기하게도 나를 허기지게 했다. 그렇게 갑자기 진 허기에 따뜻한 국물을 먹고 싶었지만, 이제 와 국물 있는 요리는 엄마에게 부담이 될 테고, 그렇다고 라면을 얘기한다면 분명 아니 될 테니, 냉동실에 즉석 볶음밥 한 팩이 생각이나 나는 볶음밥을 말했다. 엄마는 소파에서 티브이 쪽을 응시하면서 짧은 발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답이 없는 걸 보니 볶음밥은 괜찮은가 보다.

 나는 거실을 흘러가듯 지나가며 방으로 들어가 오늘 짊어졌던 회사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내려놓는다. 가방, 머플러, 코트, 시계 등등. 그러다 불현듯 더할 것이 생각나 버렸다.
 “엄마 후라이도!” 

 거실 쪽으로 고개를 반쯤 돌려 크게 소리를 낸다. 엄마는 의미 없이 틀어놓았던 티브이를 무심하게 뒤로하고 주방으로, 나는 훌러덩 욕실로 들어간다. 잠시 변좌위에 걸터앉았다가, 흐느적 일어나 샤워 꼭지를 꺾었다. 촤아 뜨거운 물을 내리쬐며 수증기 아래로 고개를 숙여 큰 숨을 깐다. 오늘은 웬지 절인 배추 같은 하루였다. 그래도 잘 버텨냈어. 머리 위 떨어지는 따스한 물은 그런 나를 토닥여주는 느낌이다. 한참을 이곳저곳 북북 거리다, 문득 또 어떤 생각에 다시 욕실 문을 열고 소리를 쳤다.

 “엄마 만두도!” 

 결국 생각이 없다던 저녁은 생각이 많아졌고, 애써 봐준 엄마의 편의는 나의 늦은 욕심으로 층층이 덮어버렸다. 하얀 수증기를 가득 채운 욕실을 나와 물기를 닦고 이것저것을 치덕치덕 바른다. 아 이제 살았어, 개운하다. 젖은 머리는 오늘 처음으로 편하게 앞으로 내려앉는다.

 나를 기다리는 식탁에는 볶음밥 깻잎, 김치, 군만두가 먹음직스럽게 준비되어 있다.

 나는 벽을 뒤로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맞은편엔 엄마가 한쪽 다리를 의자에 올리고 앉아, 중지로 손가락질을 하며 돋보기 너머로 핸드폰을 보고 있다. 어설픈 에비씨디 노래가 나오고 웃고 있는 걸로 보아 엄마는 조카의 동영상을 보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도 곧 한쪽 다리를 올리고 젓가락을 든 손을 올린 무릎 위에 기대며 쩝쩝대기를, 엄마는 이제 조잘조잘 조카 얘기를 한다. 아라가 벌써 에비씨디를 한다느니 애가 어찌나 영특하다느니. 딱히 답할 말은 없어도 밥을 먹던 나도 그냥 조카 생각에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다. 엄마가 들이미는 핸드폰 속 조카를 보다 보면 나도 반가워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오고, 어느새 신이 난 엄마는 영상통화까지 걸어 밥 먹는 삼촌을 보여주기도 한다.

 식탁 위 핏줄의 연대 의식은 그렇게 끝났다. 그 뒤론 온전히 마주 앉은 모자의 시간이다. 달각달각 수저 소리가 조용히 난다. 무심한 척 자리를 지켜주는 엄마에게, 나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딱히 말거리가 없다. 전혀 새로운 건 없었던 하루니까 그리고 나는 나의 말을 잘 못 하니까. 그래도 어색할 건 없다. 아무튼,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오늘 당신 아들은 별일 없었음을 마음속으로 전한다. 따뜻하니 참 맛있다. 살 것 같다. 잘 먹었습니다.

나를 기다리는 식탁에는 엄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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