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음과 호기심의 사이에서
아마 작은 발이 쿵쿵거리는 소리에 느지막이 일어났다.
한시가 넘은 봄 토요일 오후, 암막커튼으로 창이 가리워져 아직도 방이 어둡다. 침대위에서 잠깐을 꿈틀거리다가, 반쯤 뜬 눈으로 스멀스멀 기어나왔더니 역시나 반가운 얼굴이 있다. 멀뚱히 쳐다보는 고 얼굴에, 흐멀거리는 티를 입은 머리 뻗친 아저씨는 두팔을 벌려 "호랑이 삼초온" 하며 쿵쾅쿵쾅 뛰어간다. 그러면 뭐가 그리 좋은지 소리내 웃으면서 콩콩 또 도망치기를 거실 한바퀴, 호랑이 삼촌은 조카를 잡아 쇼파 위 무릎에 앉힌다. 조카는 호랑이 코, 귀 눈두덩이 손이 닿는 것들을 무작위로 건드리다가 금새 지루해져 끙끙거리며 내려간다. 난을 꺾어보기도 하고 어디로 또 뛰어 가서 뭘 집어보기도 하고 바빠 보인다.
멍하니 그걸 쳐다보고 있었다. 아라는 저 주변 것들을 무슨 생각으로 감정으로 느끼고 있을까. 보고 만지고 때론 힘을 주어 보기도 하고 아무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어린 호기심일텐데 아마도 그걸 해결하고자 다가가는 행동들에 두려움 같은 건 없다. 오히려 멀찌감치 혹시나 쳐다보는 삼촌이나 엄마가 염려같은 두려움이 있을 뿐이다.
보다보니 호기심이 가득한 저 모습이 왜 저렇게 예쁘게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핏줄 섞인 아이라 귀여워 모든 모습들이 예뻐 보여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또 생각해보니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 큰 호기심으로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은 항상 아름답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게 일이던 사람이던 어떤 것이던, 나는 새롭지 않아도 그 사람에게는 새로워 호기심을 가지는 모습들을 이상하게 좋아했었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하고, 별거 아닌 것에 대해 즐거워하고 낯선 것들에 지레 손 떼고 뒤에 숨어 쳐다보는 그런 아기 같은 호기심, 낯선 것에 대한 그들의 반응들.
나는 낯선 것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본다. 호기심 가득한 그 모습들을 예뻐했음에도, 나 스스로는 그렇지 못했다. 사실 이제는 그다지 낯선 것들이 없이 대부분은 경험해본 터라 기억을 찾는데도 오래 걸린다. 아니면 낯선 것들은 불편해 이미 다 피해버렸거나.
아마 그러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그다지 많은 것들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새롭다 경험하는 것들이 사실 알고 보면 본질적으로는 다 이미 비슷해 보였다. 오만하게도 대부분의 것들이 뻔해보였다. 나이가 차면서 쓸데없이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건가 아니면 새롭게 대하는 방법을 잃어버렸던가. 그리고 낯설음에 대해 외면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속한 세계를 어디 다른 세계와 부비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처음 맞이할 그 낯설음, 그리고 그 낯설어하는 나의 모습이 싫어 외면해왔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낯설음’과 연상되는 단어는 ‘색다름’이 아닌 ‘어색함’이었다. 그래서 앞서 손내밀지 못했고 뒤로 물러나거나 으레 피해왔다. 스스로 그래왔으면서도 새로운 게 없다 지루해하고 불평하고 그랬다.
조카가 아로마 오일병을 만진다. 신기해하고 궁금해하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무언지 알려주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그냥 몰랐으면 좋겠다 너는. 언젠가 알테지만, 언젠가는 혼자만 애기일 순 없으니 알아야 겠지. 그래도 지금같은 따뜻한 눈길로 색과 그런 것들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런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그러다보면 나도 닮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