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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캥거루 May 04. 2019

운전의 기원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

 남자치고는 다소 늦은 나이에 운전을 시작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떠밀려 취득했던 운전면허는 활용할 기회가 흔치 않았다. 어디 멤버쉽 카드마냥, 면허증은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고 주민등록증만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가끔 아버지 차를 몰고 나온 친구들의 모습이 새롭기도 했지만, 이내 그 어설픔이 별로라 생각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운전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딱히 들진 않았었다. 그렇게 운전이라는 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없이 20대를 보냈다.


 서른 즈음에 나는 배움의 세계에서 활용의 세계로 경계선을 넘었다. 새로 넘어온 세상에는 ‘사회적 시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사회적 시선은 단순한 시선이 아니라 어쩌면 암묵적 요구였다. 그리고 운전은 그중에 하나였다. 나는 잊고 있던 운전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첫 번째 맞닥뜨린 고민은 인턴 생활 중에 생겼다. 출장길 부지점장의 운전할 줄 아냐는 물음에 ‘장롱입니다’ 라는 대답을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할 수 있어야 하는 신분의 사람이 할 수가 없어 무기력해 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차를 살 여건은 되지 않아 취직 후 일년 뒤로 그 시기로 미룰 수 밖에는 없었다. 그 대신 퇴근한 아버지 차를 몰래 몰고 나가는 소심한 연습을 시작했다. 기껏해야 건널목 몇 개를 요란하게 지나 PC방이나 가는 동네 드라이버였지만.


 두 번째 사건은 차가 있는 여자친구를 만났을 때였다. 매번 그 사람의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갈 때마다 서로 자리가 바뀐 것 같아 불편했다. 만날 때면 그 사람 집 앞에서 셀프 픽업을당하고, 헤어질 때는 배웅하고 지하철로 홀로 돌아가는 길의 그 기분은 유난히 쓸쓸했다. 그러나 아직 형편은 부족했고, 몇 년 간 겨우 모은 돈을 다 바쳐 차와 바꿀 용기도 아직 없었다. 그 사람도 ‘차는 한 대만 있으면 되지’ 하며 고맙게도 이해를 해줬다. 문제는 헤어지고 난 뒤였다. 스스로 만든 자격지심과 다른 남자들처럼 조수석에 곱게 모셔주지 못했음에 대한 후회가 급격하게 몰려왔다. 헤어짐의 이유가 그것이 전혀 아니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이별에는 이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헤어지고 딱 한달 뒤, 서른살을 맞이하는 나에 대한 선물이라 자위하면서, 근 이년간의 노동의 대가를 조그만 검은색 SUV로 교환했다.


 야밤의 아마추어 동네 드라이버에서 진짜 운전자가 되면서, 세상은 걸을 때와 많이 달라보였다. 이제 더 이상 거리는 거쳐야할 역의 개수로 정해지는게 아니라 네비게이션이 정확한 수치로 말해 줬고, 무작정 가까운 바다로 갈 수 있었으며 출퇴근길에 더 이상 귀로만 노래를 듣지 않아도 됐다. 청소하기를 좋아했던 나는 새로운 취미로 세차를 시작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근 이년간을 ‘검둥이’와 함께 운전자의 자격을 마음껏 누렸다.


 매우 불편할 이유가 없다면 차로 이동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던 시간을 한동안 보냈다. 그리고 여러가지 신변에 대한 생각이 복잡했던 작년 여름, 고등학교 친구들과 통영으로 짧은 휴가를 갔다. 휴가내 친구차로 움직일 계획이라 나는 굳이 운전을 맡을 필요가 없어 모처럼 만에 뒷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시끌벅적한 대화들이 잠시 쉬어갈 때, 고개를 돌린 나는 오랜만에 달리는 차창 밖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한동안 잊고 살았음을 그때야 깨달았다.


 운전을 시작한 이래 내 자리는 항상 앞 열 왼쪽 좌석이었다. 회사차를 타건 렌트카를 빌리건 내 손에는 이제 핸들이 쥐어져 있었고 페달은 다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전방주시‘ 앞만 보며 달리거나 멈추거나 했어야 했다.


 처음 내 차로 운전을 시작했을 땐 나는 마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저 넓어진 동선과 기동력 같은 장점에만 취해, 돈을 지불하고 추가된 혜택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운전은 새롭게 획득한 여유로움과 혜택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선택지의 하나였기 때문에 어쩌면 꽤나 많은 다른 것들을 기회비용으로 마땅히 가져갔었다. 차창 밖 풍경, 출퇴근길 여유, 지하철 사람구경, 쪽잠, 짬짬이 읽었을 책 등등을 잃었다. 꼰대 같았던 시인의 말처럼 눈은 빨라지고 마음은 더욱 바빠졌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되찾은 차창 밖 통영의 풍경을 실컷 즐기고 즐기며 올라왔다. 그 뒤로 나는 다시 운전을 하나의 선택으로 미뤄보기로 했다. 요즈음의 나에게는 편의보다는 여유가 더 필요했고, 그동안 잃어버린 것들이 그리웠다. 필요에 의한 운전을 하기로, 다시 좀 더 두리번거리며 걷기로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

                                                                - 김광규-


네가 벌써 자동차를 갖게 되었으니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도 하다

운전을 배울 때는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을

네가 대견스러웠다

면허증은 무엇이나 따두는 것이

좋다고 나도 여러 번 말했었지

이제 너는 차를 몰고 달려가는구나

철따라 달라지는 가로수를 보지 못하고

길가의 과일 장수나 생선 장수를 보지 못하고

아픈 애기를 업고 뛰어가는 여인을 보지 못하고

교통 순경과 신호등을 살피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구나

너의 눈은 빨라지고

너의 마음은 더욱 바빠졌다

앞으로 기름값이 또 오르고

매연이 눈앞을 가려도

너는 차를 두고 걸어다니려 하지 않을테지

걷거나 뛰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남들이 보내는 젊은 나이를 너는

시속 60km 이상으로 지나가고 있구나

네가 차를 몰고 달려가는 것을 보면

너무 가볍게 멀어져 가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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