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M Jul 01. 2021

왜그려야 하는것을
그려야 하는데?

미술학원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해준 말은한결같았다.





아빠는 그런 우리를 보며,
침대 밑에 하얀 도화지를
항상 한가득 쟁여 놓으셨다.






어렸을 때 유일하게 공부 대신 흥미를 가진 것이 그림 그리는 것이었다.

시골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랐던 내 어린 시절은 

밖에서 뛰어놀며 여느 농촌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까맣게 그을린 모습이었다.

하지만 뭐 항상 그랬던 건 아니고...,


안 바쁜 날이 없는 농촌의 삶은 어른들이 항상 밭으로 나간다.

그리고 넓은 집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건 나와 내 동생 그리고 강아지들뿐이었다.


사춘기를 향해서 가면 갈수록 지루한 시간들이 많아지고

쓸쓸한 시간들도 많아졌던 거 같다.

그때마다 동생과 나는 하얀 도화지 또는 집 구석 벽지에다

낙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놀곤 했다.


유일하게 그림 안에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큰 그림의 이점이었다. 





성인이 되어 그린 그냥 고래 어릴 때나 지금이나 고래는 항상 좋다.



내가 생각했던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갈 수 있는 통로 같은 거였지..

그림 속에선 내가 어른이 될 수도 있었고

내 얼굴을 그려 엄마 화장품을 마음껏 

칠해 볼 수도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그림책 속으로 들어가거나, 

하늘 위로 올라가거나 하는 등의 

그림으로 갈 수 있는 곳을 그려 가보곤 했다. 

어디가 그렇게 난 가고 싶었던 걸까?

여하튼 지금도 어딘가 마구 가보고 싶고, 

탐험하고 싶은 마음은 이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내 동생은 못다 본 혹은 겨우 허락을 받아야 볼 수 있는 만화 영화의 연장선을 그리며 

입으로는 자체 로봇 만화 성우도 했다. 

푸푸 푸하핳 촤촤 뭐.. 이런 식으로...

(지금은 웹툰 작가가 되어 작게 활동 중이다.)




아빠는 그런 우리를 보며, 침대 밑에 하얀 A1 사이즈 정도 되는 도화지를 한가득 쟁여 놓으셨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에 유별난 우리 아빠였다.

근데 지금 보니 웃겼던 건 재료만 한가득 쟁여 놓고 그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없었다.

그저 종이가 줄면 다시 채워 놓고 또다시 채웠다. 그리고 우리가 그린 그림은 

영영 어디론가 사라지고 성인이 된 지금은 아예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항상 종이가 쌓여 있었던 기억만이 

아련히 남았다.



암튼 항상 아빠가 재료들을 쟁여 놓는 탓에 종이를 4개씩 이어 붙여 지도도 만들어 보고 

정글, 남극, 마법의 세계, 동굴 등등 여러 가지 상상했던 온 세상 들을 그리며 놀았다.




한 5학년 정도 되었을 무렵

"엄마! 나 미술학원 보내주면 안 돼?"

라고 엄마에게 처음으로 학원 이야기를 꺼냈다.


미술학원에 가려면 두 시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40분 정도 타고 읍내로 나가야 하는데도 

무조건 다녀야겠다는 생각 이 들었다. 

이유는 학교에서 다녀야 한다고 이야기가 돌기도 했고 

명암, 형태 이런 이야기 들을 하는데 도무지 내 머리로는 아직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그림에 저런 것들이 있어야 하는 거지??


그림을 정말 좋아하는 나로선 뭔가 그림만큼은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던 거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엄마에게 미술 학원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해준 말은 한결같았다.

"너 미술학원 가면 그리라고 하는 것만 그려야 하는데? 괜찮아?"

라고... 거기서 알려주는 대로 그려야 해, 미술학원 가면 잘 그리는 방법을 알려줄 거야...

그 말을 듣고선 " 아니 그건 싫은데.."

라는 말과 함께 5학년이 지나고 6학년이 지나고 정말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먼지 나게 

신나게 뛰어놀았던 거 같다.


하하하


그리고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돼서야 미술학원을 다녔다.

그 이후로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쭉 다니거나 꾸준히 다니진 못했지만... 


지금 그림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문득 

생각해보면 엄마가 왜 그랬는지 너무 잘 이해가 된다. 


그리고 정말 지금 내 직업과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나에겐 그런 엄마의 결정이 행운이었다는 생각도...,


그림은 누군가가 제시하는 그려야 하는 것들을 먼저 그리는 게 아니라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것 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 테니까..


컬러, 형태, 명암, 디테일, 등등 이런 요소들에 집중하기 전에 

(이런 것들이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내가 그리고 싶은 어떤 것들을 마음껏 행복하게 그릴 수 있어야 하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지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맞닥뜨렸을 때 내식대로 내 느낌대로 잘 구워 삶을 수 있을 테니까.. 


 to be continue ,,!



대학을 졸업하고 어린이 체험학습 관련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나름 생전 처음 창업이란 걸 해본 셈이다. 그때 느꼈던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자유로움. 무한한 집중력.


현재 어렸을 때 꿈꾸었던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갖고 고군분투 중이다.  앞으로도 쭉 그림을 그리며 열심히 살 작정이다. 지금은 그림책스러운 게임을 그리는 일에 집중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네버앤딩 그림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