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ha Feb 03. 2024

어린 날의 나를 위로하는 몇 가지 짤

장나라, 조혜련 님에게서 배운 '받아들임'과 '감사하기'

 30대에 접어드니 제법 안정도 찾아가고, 나름의 소확행을 즐기는 법도 알게 되면서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춰진 삶을 영위하고 있다. 다소 신경 쓰이는 일이 있더라도 찡찡거리기보단 '그래서,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하려 노력한다.(물론 아직도 어렵지만...) 큰 스트레스 없이 유연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풍족함을 느끼고 있지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은 '내가 이 마음가짐으로 20대를 살았더라면, 조금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다.


 20대에는 매번 '원'을 그리는 느낌이었다. 나름 나아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늘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나는 정말 안 되는 사람일까?'라며 자책했던 순간도 많았다.  일도 잘하고 싶고, 돈도 잘 벌고 싶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싶었지만 자꾸 뭔가 어긋나는 듯 했다. 주말마다 차를 끌고 나가 엉엉 울면서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들. 그렇게 늘 외줄 타기를 하는 것만 같았던 그 시기의 감정들은 지금 돌이켜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지금 현재의 행복을 천천히 곱씹다 보면, 그러지 못했던 20대, 어리고 약한 나에게 미안함이 들 때도 있다.


#1.

 어릴 때 가수 장나라 언니(혼자만의 친밀감에 언니라 부른다.)를 너무나 좋아했었다. '축전', '펜띠' 모두 장나라 언니로 도배되었고, 내 '벅스뮤직' 플레이리스트에는 언니의 노래로 가득했다. 이제는 가수가 아닌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쌓아나가는 언니를 보며 늘 내적 응원을 보내고 있었는데 최근 '유퀴즈'에 출연했단 소식에 유튜브로 찾아봤다. 프로그램 속 언니는 신혼의 삶을 마음껏 즐기는 모습이었고, 너무나도 안정된 모습을 보면서 참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그중에서 한 장면이 내 뇌리에 박혔다.



 탑스타인 언니와는 비교도 되지 않겠지만, 나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20대 방송인 시절, 조금만 더 목소리가 좋았으면, 조금만 더 날씬했으면, 조금만 더 예뻤으면, 더 나아가 조금만 더 돈을 벌었으면 바랐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부족했던 나 자신을 잘 인지하고 있었기에 늘 자신감이 없었다. 모든 방면에서 애매모호하기만 한 스스로를 계륵이라고 여기기도 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 그마저도 없었으면 내가 거기까지 갔겠어?'라고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노력의 방향이 살짝 아쉬웠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는 걸,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기에 이제야 당시의 모든 것들에 과분함과 감사함을 가지게 됐다.


#2.

 요즘 즐겨보는 웹예능으로 '핑계고'가 있다. 유재석 님이 안테나뮤직으로 소속사를 옮기면서, 수다를 좋아하는 유재석 님의 맞춤형 복지로 제작된 프로그램이다.  주변 친한 연예인들과 나와서 두서없이 편하게 수다를 떠는 프로그램인데 장장 1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조회수가 천만을 넘어가는, 최근 아주 인기 있는 예능프로그램이다. 지난주 조혜련 님이 출연하셨는데, 여느 편보다 너무 재밌게 봤다. '역시 코미디언들은 다르구나'라는 걸 절감했던 시간. 그 속에서 주옥같은 인사이트가 있었다.


 일본 예능에 첫 진출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지만 너무 긴장이 되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에 투입되기 직전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는데, 너무도 긴장하고 겁에 질린 어린아이를 마주했다. 너무 잘하고 싶은 나머지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떠는 그 아이에게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못해도 돼. 처음엔 다 누구나 그래.'라며 위로를 하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보통 이런 서사라면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으니 잘 해냈다.'는 해피엔딩을 기대하곤 하는데, '정말 못했다'라고 한다. 그 장면에서 모두가 다 빵 터졌는데 생각해 보면 지극히도 맞는 말이었다.



 잘하려고 애쓰는 나를 위로하는 또 다른 나마저도 이면에는 '잘하고 싶은 마음'을 한편에 품고 있다. 위로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못해도 된다고 아량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잘하고 싶어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으나 결과는 늘 불 보듯 뻔했다. 어차피 못할 건 확실하니 마음만이라도 편하게 가져야 한다는 '인정'과 약간의 '체념'도 필요했다. 마치 그런 태도들이 나의 유약함을 드러낼까 봐 노심초사했었던 어린 시절의 나. 결국 드러나는 건 똑같으니 마음이라도 편하자는 생각은 정말 어른이 아니고서야 하기 힘든 것이다.



 나보다 어른인 사람들에게서 얻은 인사이트는 양질의 책만큼이나 크게 다가온다. 소소하게 보는 예능에서, 조금 더 현명하고 어른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자 혼자 살아간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