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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Apr 18. 2024

 일에 대한 단상

일잘러가 되고 싶지만 뚝딱거리는 스스로를 보며 드는 생각들.

 그 험하다는 방송계에서 별 일을 다 겪었기에, 이제는 어떤 일을 하던 수월할 거란 생각은 나의 단단한 착각이었다. 여전히 나의 현재보단 과거의 경력에 포커스가 맞춰진 터라, 새로운 직무에서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내 또래들은 이미 몇 년 전 신입사원 시절에 겪어봤을,  보고서 작성이나 엑셀을 붙들고 땀 뻘뻘 흘리는 장면은 요즘 나의 일상이다. 여기에 새로운 직무에서 어려운 단어는 왜 이렇게 많은지 아무리 외워도 뒤돌면 까먹는 스스로를 보며 매일 좌절하곤 한다. 외국계 회사인지라 만일을 대비해 매일 아침 졸린 눈을 치켜뜨며 큰 소리로 중국어를 읽어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 성장'이라는 공식을 품고 다녔던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를 바꾼 건, 결국엔 내가 지향하는 가치가 '혼자'가 아닌 '같이'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깨들은 순간부터였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하고 안정감을 찾아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게 한몫했던 것 같다. 생각을 꽤 고쳐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원을 그리며 성장을 이뤄내지 못하는 것 같은 불안감은 계속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달 내 인생 첫 해외 출장이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보던 급박한 비즈니스들을 직면했는데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부장님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는 것뿐이었다. 스스로가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걸 직감함과 동시에 그 이후로 마음 한편에 부담감이 계속 자리하고 있었다. '일잘러'가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는 회사원도 처음인 데다 전자 제조업은 더더욱 생소하기에 계속 나사가 하나 풀린 것처럼 어리바리한 스스로를 보며 너무 한심했다. 그냥 하던 계속하면 중간은 갈 텐데 왜 굳이 직무를 바꿔서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찾아왔다.


 그런 상념들이 머릿속을 헤집어놓다가 결국 늘 자기 전에는 '뭐가 됐던, 일단은 잘 버텨보자'라고 결론을 짓는다. 어느 정도 노력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일머리'는 그래도 물리적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 일하면서 익혀둔 업무 관련 용어들을 한 번씩 반추해 보며 '그래도 어제보다 하나 아는 거 더 생김!'이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건네는 걸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엄청나게 특별한 건 없지, 매일을 비슷한 수준으로 버티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그 안에서 소소한 성장도 일궈낼 것이고 그만큼의 만족과 안정도 켜켜이 쌓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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