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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May 01. 2024

임시의 삶이 싫어서

이사 온 지도 벌써 한 달. 강남 한복판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직주근접'이란 핑계로 이사를 했다고 하지만, 사실 통근 3시간을 감내할 만큼 서울을 놓지 못하는 충분한 이유가 없었다. 막연히 서울에 대한 제주도 촌년의 로망으로 버티기엔 동네 풍경은 늘 삭막했고, 또 복작복작한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의 삶이 외롭기도 했다. 중간중간의 사람들과의 친목을 다지는 시간은 오히려 스스로를 더 고립시키기도 했고. 그렇게 나는 회사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막상 이사를 결정하니 침대, 식탁, 가구, tv, 등등 살 것들이 산더미였다. 이제 여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나이도 나이인지라,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결혼을 할 수도 있는데 그때 혼수를 마련해야 하니 지금은 그냥 최소한만 갖춰놓고 살 것인가, 아니면 그냥 독신의 라이프를 인정하고 즐기며 풀소유로 살아갈 것인가.(풀소유라고 해봤자 예산이 그리 넉넉한 것도 아니지만...)


 결국 나는 막연한 미래를 그리며 잠시 임시의 삶을 살기보다는, 지금 당장을 누리기로 결정했다. 나중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내 취향만을 고려한 가구들을 들여놓았다. 10대에는 20대를 기다리며 모든 것을 미뤄뒀고, 20대는 30대에 안정된 삶을 꿈꾸며 또 그 당시의 행복을 잠시 미뤄뒀었다. 그렇게 늘 흐릿하지만 희망을 품고 기다렸던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런 선택들을 또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번 이사에서 처음으로 지금 당장의 삶에 충실하자는 다짐으로 내 멋대로 '필요'와 '굳이' 사이를 넘나들며 물건들을 사들였다.


 그 어떤 것도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은 없다. 돈이야 있다가도 사라지고, 없다가도 갑자기 턱 하고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내 일상은 잔잔하지만 끊임없이 흐른다. 또 다시 지금의 생활을 나중을 위해 감내하고 희생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아서 내린 나름 중대한(?)결정이었다. 그래도 한 달 정도 지나 보니 깨나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삶의 안정감도 찾아가고 있고 나름의 밸런스도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생활환경에 대한 적응은 필요하지만, 문득 두 달 전 살았던 그 집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면 이 소소한 모든 순간들의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이제 더 이상 나중을 위해 임시로 선택하는 어리석은 짓을 범하진 않으리라.' 휴일 나른한 오후, 커피를 마시면서 나름 웅장하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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