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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Jun 18. 2024

버티는 삶에 대하여

 '다들 그렇게 버티면서 살아.'

 상당히 아빠스러운 조언이었다. 우리 아빠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딸바보지만, 그 누구보다 딸을 강하게 키우신다. 대학생 때 학비 지원은 일절 없었고, 이번 이사 올 때도 돈 좀 빌려달라고 했더니 아주 강경하게 없다고 말하셨던. 그런 아빠에게 2년 전, 번아웃이 온 것 같다고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상당히 T스러운 아빠의 대답에 파워 F인 나는 상처받고 엉엉 울었다. '아니 내가 힘들다는데 어떻게 버티란 말이야아 아'라며.  거의 제로에 가까운 공감능력을 보며 '분명 뒤에서 욕 많이 먹는 상사일 거야'라며 속으로 씩씩 거렸다.


사소한 일에도 멘털이 많이 나가는 편이지만 유독 요 근래 마음이 편치 않았던 날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어디론가 슝 하고 도망가고 싶었다. SNS 앱도 삭제하고 '나 찾지 마시오'라고 카카오톡 상태메시지에 박아놓은 채로.(물론 몇 시간 못가 다시 앱을 설치하고 들어가겠지만) 이제는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힘든 일이 생길 수가 있지?' 싶어서보다는 '무슨 각설이처럼 잊지 않고 찾아왔네'라고 생각할 만큼 너무도 당연스러운 사이클이 되었다. 그런 마음속에 마치 깨진 유리파편처럼 엉망으로 내던져진 감정 찌꺼기들은 나를 온종일 콕콕 찔렀다.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어 다 때려치우겠단 마음을 다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음 한 구석에 자그마한 메아리가 울렸다.


'버텨볼까?'


 그래, 생각보다 버티면 달라지는 게 많았다. 버티다 보면 휘몰아치던 감정이 잠시 누그러지고, 그 안에서 아주 작게나마 한 발짝 나아간다. 그리고 그런 소소한 변화들이 모여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던 걸 여러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멘털이 탈탈 털리다가도 버티고 나서 보게 될 미래를 어렴풋하게나마 다시 한번 그려본다. 엄청나게 달라져있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것도 버텨야 좀 더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며.


 그래도 그 버팀에 근간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늘 내 마음속에 되뇌는 말 '철학 같은 명징한 도구는 없지만 나는 언제나 나를 믿는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를 다시 한번 읊조리며 오늘도 다시 버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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