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나에게서 위로를 받은 일
한동안 노션을 쓰지 않았다. 딱히 필요성도 없었고, 더 솔직하게 말하면 요즘은 거의 무계획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 새로운 일을 하나 시작하면서 프로세스에 대한 가시적인 정리가 필요해 노션을 다시 다운로드하였다. 정확히 1년 전 기록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뭔가 갓생을 해보겠다고 발악하는 자의 비장한 기록들을 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러다가 작년 이맘때쯤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며 정리했던 자료들, 그 안에 당시의 나의 감정상태들이 고스란히 남겨져있었다.
사실 사람의 의식적 성장은 시간의 흐름에 정비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어느 정도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1년 전, 그러니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모든 일을 다 정리하고 도서관에 처박혀있을 때의 나는 그 누구보다 희망에 부풀어있었고, 의식적으로도 성숙했다. 당시 나는 흘러가는 대로 살면 좋은 일들만 가득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을 끌어안으며 순정만화 주인공 코스프레를 하며 살고 있었는데, 실제로 말도 안 되게 정말 좋은 일들이 참 많이 생겨났다.
물론 그 당시에도 나름의 고민들을 치열하게 했을 것이고 불만족스러웠던 것들이 없진 않았겠지만, 기록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행복은, 한동안 타성에 젖어 무기력했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기나긴 장마 끝 찾아온 한여름 더위를 헤치고 간 도서관,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녹음들과 도서관 특유의 냄새가 떠올랐다. 가진 것도, 만날 친구도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 단단했던 내 모습과 마음가짐까지 같이 떠올랐다.
보통 나와 비슷한 상황이거나, 나보다 더 안 좋은 사람들, 혹은 나와 같은 경험을 딛고 이겨낸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곤 했지만, 1년 전 나의 기록들을 보며 위로받는 건 처음이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쉽게 받아들였던 과거와 달리, 한동안 '나는 도대체 언제쯤..?'이라는 회의적인 말들만 늘여놓으며 견뎌내지 못한 지금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다시 예전처럼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