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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Sep 06. 2024

끝과 시작 그 사이에서

 짧았던 회사 생활의 종료. 그리고 새로운 시작.

 어떤 일을 끝마치고 나면 '그래서 어떤 것 같아?'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졸업을 할 때도, 이전 회사들을 그만 둘 때도 '좋은 경험이었어.' '재밌었어'라고 짧게 느낀 점을 남기는데, 이번 회사 생활의 끝은 너무도 처량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변명들로 나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사람을 견뎌내지 못하고 나왔다. '해고'와 '휴직'을 운운하며 매일 나를 옥좨왔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채찍 하며 '그럴수록 더 잘해야지'라고 말해봤지만 방향도, 방법도 모르겠고 더 중요한 건 내가 일 자체를 잘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회사 짐을 정리하고 나오는 길. 여느 때의 느꼈던 후련함은커녕, 허탈하기만 했다.


 퇴사를 하고 좀처럼 쉬지 못하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상실감에 젖을까 봐 스스로가 겁이 났다. 우연히 알게 된 한국어 강의를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빽빽하게 잡아놓는가 하면, 인천까지 두 시간 넘는 거리를 삥삥 도는 버스를 타며 강의를 다녔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끔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마다 들춰봤던, 사람들 앞에서 교육자로서의 막연한 로망을 어쩌면 지금 실현시켜야 할 시기라 생각했다. 그렇게 강의를 찾아다니고,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쉼 없이 움직였던 두 어달.


  이제는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방향을 잡아야겠다는 다짐을 할 무렵, 정말 우연히 꿈꾸던 회사의 공고가 떴고 20대 취준생 시절보다도 더 치열하게 준비했다. 나이 서른 넘고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는 것이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다들 결혼하고 안정을 찾아갈 시기에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어찌 돌아갈 방도가 없었다. 짐 싸고 고향으로 내려갈 수도 없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는 처지였기에 정말 절실했다.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 한 달은 내 인생 가장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소식에 점점 마음을 놓을 즈음 합격 통보를 받았다. 


'와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집 누수 문제로 인한 전 임대인과의 갈등, 전세 계약 파투로 몇천만 원의 계약금을 날릴 뻔한 경험, 회사에서의 해고 등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일 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그동안 충분히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물러터진 애송이라는 걸 절감하면서도, 날삼재를 제대로 겪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늘 가슴속에 새겼던, '복은 화를 입고 온다'는 말을 되내이며 잘 버텨냈다. 다행이었던 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 이 시간들도 지혜롭고 의젓하게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일, 그리고 가고 싶었던 회사에 합격했다.


  삼재를 호되게 겪었던 지난 3년의 일들을 반추해 보면 그래도 힘든 일 뒤엔 늘 좋은 일이 뒤따랐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는 것. 그래도 근거 없는 자신감들을 늘 마음 한편에 모셔두었다가 힘들 때 무의식적으로 꺼내어본다. 아직 서른 갓 넘은 애송이지만 이제 삶의 흐름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우당탕탕 내 인생에서 또 다른 멋진 커리어 한 획을 써 내려가며 이제부터는 진짜 나 다운 삶을 살아야지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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