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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Feb 15. 2024

동치미와 봄

팔순 시어머니, 아픈 큰언니가 사랑한 산골 겨울 김치

겨울비가 촉촉이 오십니다.

날씨가 푸근해서 봄비처럼 느껴져요.


비님 나리기 전 

동치미 담근 항아리를 열었더니 그새 바닥이 보입니다. 

그 많던 걸 거의 비웠으니 

진짜로 봄이 코앞이구나 싶습니다. 

자주 그랬거든요. 동치미 다 먹을 무렵이면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곤 했어요.     


겨울 김치 동치미를 다 먹을 무렵이면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곤 했어요.


더부룩한 속에 답답한 마음까지

시원하게 적시면서 풀어 주는 동치미. 

올해는 어느 때보다 귀한 몫을 했어요.  

 

겨울 어느 날 산골에 드신 팔순 시어머님. 

소박한 밥상에서 동치미 한 숟갈 뜨시더니

대뜸 물으십니다. 


“혜원아, 이거 더 있냐?”

“네, 그럼요! 항아리에 많아요.”  


“그럼 나 좀 가져가자.”

“맛이 괜찮아요?”


“국물이 시원하고 좋구나.” 

“입에 맞으시다니 저도 참 좋네요. 넉넉하게 싸드릴게요.^^” 


다음 날 서울 가시는 시어머니는

작은 통에 동치미를 담아 가셨어요.

무어든 베풀어 주시기만 하면서

뭐라도 드리려면 한사코 마다하시는데

자청하여 먼 길 가져가시는 걸 보니까 

짠하면서도 뿌듯했습니다. 


“너 참 장하구나!” 


동치미 항아리를 보면서 마음껏 칭찬을 해 주었어요.


듬직한 동치미 항아리가 있어 겨울이 행복했어요.

또 다른 어느 겨울날, 

폐암 항암 치료로 밥 먹기가 힘겹다는 

큰언니한테 반찬 택배를 부쳤어요. 

나물이랑 산골에서 해낼 수 있는

밑반찬들을 이모저모 준비하다가 

동치미가 떠올랐어요. 


국물 때문에 괜찮을지 걱정이 됐지만

몸에 좋기론 이게 또 으뜸인지라 보내기로 결심! 

이중 삼중으로 꽁꽁 싸매서 

택배상자에 조심스레 담았습니다. 

   

맛보다는 정성만큼은 보장하는

밑반찬이 나름 여러 가지였는데

그중 동치미가 좋았나 봐요.

이거 하나만 놓고도 밥을 먹을 만큼 

너무 잘 먹었다고 하네요.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통통하게 듬직한 동치미 항아리 앞에 큰절 올리고 싶을 만큼 고맙고 기뻤습니다. 


겨우내 빠짐없이 산골밥상을 채운 

동치미를 오늘도 입에 들입니다. 

거의 끝물이라 국물이 좀 탁하고 알싸함은 덜해도

속을 후련하게 보듬는 건 여전하네요. 

먹을 때마다 감탄이 나오니  

요거 참, 대단하고 멋진 음식이에요.

(이런 김치를 만들어 낸 조상님들도 진심으로 존경하나이다~)


많이 아픈 큰언니한테 산골 동치미를 택배로 부쳤어요. 너무 잘 먹었다는 이야기에 눈물나게 고맙고 기뻤습니다.


저녁상 치우고 마당을 잠시 나가니

어머나, 경칩도 아닌데 개구리가 우네요.

어느 때보다 간절히 기다렸던 새봄이   

그예 오긴 오려나 봅니다.   


조금 일찍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처럼

제 안에도 봄기운이 살랑거립니다. 

살얼음 살강거리는 동치미를 맛볼 수 없어서 살짝 서운할 뻔했는데 

뒤이어 찾아든 이 설렘이,

다가오는 봄이 참 좋고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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