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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싸엄마 Mar 13. 2024

책으로 서글픔을 달래다

주부의 설움


새벽 3시

자고 있는 나의 귓가에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

꿈을 꾸고 있는 중이었다.


한숨소리의 정체는 눈치챘다.

남편이다.


잠결에 들은 한숨소리는

화장실 앞에서 들려왔기에,

저녁밥으로 먹은 제육볶음이 매워

배가 아픈가 싶었다.


이내 내가 꿈속에서 현실로 점점 돌아오면서

남편의 한숨소리는

그의 속 안에 있는 무언가를 깊게 내쉬며 꺼내는 소리였다.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분명 몇 시간 전 저녁에 있던 일 때문일 거다.

저녁을 먹는 그 시간부터

남편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와도 한마디 말도 안 했던

나의 태도 때문 일 것이다.


현실로 완전히 돌아온 나는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야?”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보는 눈빛에 원망이 서려있다.

그리고 겉옷을 집어 그대로 집밖으로 나가버렸다.


분명 담배를 피우러 갔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며 원망으로 가득 찬 속을 잠시나마 달래고 들어 올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몇 분 후, 남편은 들어와 그대로 거실 소파에 가서 앉았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침대 끝머리의 이불을 치우고 앉으라는 듯 손으로 두드렸다.

남편은 뭐 하냐며 다시 거실로 가려했으나, 내가 그의 손을 잡고 한번 더 침대를 두드렸다.

남편은 마지못해 침대에 걸터앉았다.


“생각하고 있는 거 얘기해. 잠자코 들을게.”


남편은 또 깊은 한 숨을 서너 번 쉬었다.

가만히 기다렸다.

그의 입에서 이야기가 나오기를.

몇 분이 흐른 뒤 그의 입이 열렸다.


결혼한 지 6년 차.

우리는 집안일로 종종 다툰다.

그리고 오늘의 일도 결국 집안일이다.


전업주부인 나지만,

육아에 집안일을 하자면 벅찬 날도 있다.

그래서 남편에게 도움도 청해보고,

힘들다고 소리도 질러 보았다.

거기에 내 욕심에 시작하는

소소한 일들까지 하자면 거짓말 하나 없이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은 밥 먹을 때와 잠자리에 들기 전이다.

거기에 새벽에 자주 깨는 아이가 있어

온전히 푹 잠들지도 못한다.

하지만 남편의 포커스는

내가 힘들다 말하는 것은 모두 잔소리이고

그저 불평불만이었다.


최근 집에서 근무하면서 나의 불평에 본인이 설거지와 빨래를 도맡아 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드디어 내 마음을 이해해 준다 생각이 들어 고마웠다. 그런데, 그 이후 남편은 그동안의 나의 방식을 이해 못 하겠다며 이렇게 빨리 할 수 있는데 왜 그동안 못했냐며 면박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것을 맡아하니 나머지는 당연하게 내가 감당할 몫이었다.


맞다.

나는 행동이 느린 편이다.

(남편 말로는 그렇다. 하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그래서 집안일에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요령이 없었을 수도 있다. 게으른 부분도 있었겠지.

내가 원하는 것은 내 힘듦을 알아달라는 것인데, 그걸 6년째 그렇게 안 해준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그저 잔소리이고 칭얼거림이다.


남편에게 물었다.

“지금 화가 난 것이, 나를 이해해 보려 하는데 이해가 안돼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내가 했던 말들이 화나고 서러운 거야? “

남편의 대답은

“그래, 한번 이해해 보게 얘기해 봐. “이었다.

그 말은 이해해보려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겠지.


나는 나의 생각과 그의 생각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좁혀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6년 동안 모든 걸 이야기했다 생각했는데, 남편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내가 포기하기로 했다. 남편에게 내가 다 하겠다고, 내가 느려서 여태 그랬나 보다고, 내가 했던 말들이 당신을 속상하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했다.


안다.

나의 진심이 아니다. 하지만, 끝이 없는 다툼을 이어가기 싫었다. 그래서 내가 지기로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눈물이 났다. 내 몸이 참고 있음을 알았는지 부르르 떨렸다.


‘응. 나도 알아. 그래도 이게 해결책이야. 내가 나의 감정을 알아챘고, 참는 것도 알고 있으니 다행이야.’


남편은 지금처럼 설거지와 빨래를 도맡아 하기로 했다. 지금 우리 가족은 모두 적응기이다. 아이들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남편은 재택으로 하는 새로운 사업에 나는 남편의 사업과 함께 있는 환경, 그리고 소소한 나의 일들에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 변화는 또 일어날 것이다.


지금은 내가 참고 넘어갔지만, 남편이 나를 이해해 줄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르고, 더 안 좋은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리고 오늘 일은 별일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지금의 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다시 재우고 나니 새벽 4시가 넘었다. 남편은 그새 잠이 들어 코를 골고 있다. 이야기를 하기 전 잠들지 못했던 남편은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잠이 들었고, 이야기하기 전 자고 있던 나는 이야기하고 난 후 잠들지 못한다.



이번엔 내가 거실로 나간다.

거실 구석에 있는 스탠드 불을 켜고 믹스커피 한잔을 준비한다. 따뜻하다. 손에서부터 마시는 순간 온몸으로 퍼지는 온기가 좋다.


그리고 저녁에 읽었던 책을 펼친다. 다행이다. 유쾌한 소설이라서. 몇 장 읽지 않았는데 웃음이 나왔다. 책으로 나의 설움을 위로받는 느낌이다. 앞으로 집안일을 할 때마다 책 읽는 순간을 기다리며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가정주부‘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남편은 네가 할 일 내가 할 일을 극명히 나눠놓았다. 그 선안에서 나의 투정은 허용되지 않나 보다. 참 매정한 사람.

그 또한 내가 하는 말이 잔소리라 여겨질 때 생각하겠지. 참 매정한 사람.


해가 뜨고 날이 밝으면 서로 어떤 얼굴로 볼지, 어떤 이야기가 다시 오갈지 궁금하다.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다시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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