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로 생필품 대란, 주유 대란 등 국가적 위기를 겪고 있는 영국, 그 파급력은 문화산업에서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영국 TV프로그램의 유럽 지상파 상영 제한, 영국 가수들의 유럽 콘서트 투어 난항에 이어 영국 영화산업에도 어려움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유럽'은 영국을 제외한 EU소속 국가를 통칭
2020년 1월 31일 EU를 탈퇴한 영국
Creative Europe - MEDIA
유럽과 영국의 영화산업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Creative Europe - MEDIA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Creative Europe은 EU의 프로그램으로 15억 유로(한화 약 2조원)의 예산을 움직이는 문화, 창작 지원 제도입니다. 주요 목표는 유럽의 문화, 언어적 다양성을 발전, 보존하는 문화유산을 위한 프로그램이며 EU의 문화적 자산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문체부 지원사업'으로 보시면 될 것 같네요.
Creative Europe중 MEDIA(또는 MEDIA Programme)은 영화와 시청각 산업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20년간 운영되어왔으며 Creative Europe이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또 한국의 예를 들자면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사업금'으로 보시면 되겠죠.
MEDIA의 지원을 받던 영국 영화사들
영국의 배급사와 세일즈사는 MEDIA의 수혜를 많이 받았었는데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블루칼라의 시인'등의 작품이 대표적인 수혜작품입니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인해 MEDIA의 영국 회사 지원은 2020년 중반 모두 끝이 났으며, 현재 '지원금 중단'과 '코로나'로 인해 영국 영화산업은 최악의 순간을 곧 맞이 할 수 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지원을 받았으며 어떻게 문제가 되는 것 일까요
영국 배급사는 유럽 영화를 수입할 때, MEDIA로부터 배급지원금(마케팅, 홍보 지원)을 받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담없이 유럽영화를 수입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100% 회사자본으로 배급을 진행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유럽영화를 수입하던 영국의 Modern Films의 CEO는 '이제 EU의 작품을 배급할 때, 작품을 얼마나 크게 개봉해야 할지, 얼마나 홍보에 써야할지'가 큰 고려요소가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유럽 영화 배급 자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높아진 리스크로 인해 배급하는 영화의 총량이 줄 것이라는 거죠.
불리해진 세일즈사
세일즈사도 걱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의 세일즈사들은 한국영화만 판매하는 한국 세일즈사들과는 달리, 타국(주로 유럽)영화들도 해외세일즈를 대행하곤 했는데요. 이제는 영국 세일즈사들이 판매하는 유럽영화가 MEDIA 지원금 대상인지 아닌지 유럽 수입사들이 자주 물어본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영국 세일즈사들이 유럽영화를 유럽에 팔 때, MEDIA 유럽배급 지원금 수령계획을 유럽 판매전략으로 활용하여 수입사들의 비용부담을 덜어줬지만 이제 그러한 전략이 유명무실해진 것이죠. 유럽의 수입사들은 '물론 영화가 좋으면 사겠지만 마케팅, 홍보예산은 줄어들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재 유럽 영화 제작자들은 세일즈사를 선택할 때, 영국 회사보다는 유럽 회사를 선택하고 있으며 이를 피하기 위해 영국 세일즈사들은 유럽에 지사 설립을 늘리고 있다고 하네요.
영국 영화협회의 지원금 사업
영국의 자체기금 조성과 한계
그렇다고 영국 영화산업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영화협회(BFI: British Film Institute)은 UKGSF(UK Global Screen Fund, 영국 글로벌 스크린 기금)라는 7백만 파운드(한화 약 1150억원) 규모의 지원금을 새롭게 조성하였습니다. UKGSF는 세일즈를 위해 쓰이는 지원금이고 영국 영화의 세일즈, 마케팅, 홍보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시범운용 중이죠.
영국 영화 업계인들은 이러한 기금이 도움은 되기 있지만, 시범운용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고 기금을 받기 위한 행정적 절차의 복잡성에 불만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또한 MEDIA의 지원금의 5%에 불과한 UKGSF가 MEDIA와 비슷한 규모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네요.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지원금 사용의 제한성입니다. MEDIA는 수입사에게 직접적으로 마케팅, 홍보용 지원금을 전달할 수 있지만 UKGSF는 영국 세일즈사의 영국 영화 해외세일즈에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영국 회사는 영국에 등록되어 있고, 정부에서 관리할 수 있는 유한회사로 제한되며 비영국 법인의 지분이 25%이상인 회사는 불가하며, TV 방송국, SVOD 플랫폼 그리고 영국 회사법에 의해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회사 또한 받을 수 없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EU의 지원금과 동일한 형태가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예상되며 영국으로서는 힘든 시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만 잘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 정치, 사회를 모두 통달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느끼며, 유럽 영화 배급이 힘들어진 영국과 영국 영화 배급이 힘들어진 유럽 시장에 한국 콘텐츠의 자리는 없을까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