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하필 긴장하는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다행히도, 그 이후에 다른 회사들의 면접 기회가 더 남아있었다. 이제와 후회해봤자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음을 알기에 애써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잊어보려 노력했다. 그런데도 가끔 그 때의 그 면접관들의 무표정한 얼굴들과, 질문을 하던 그 순간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문제는 그거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긴장을 하지 않게 될까.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선천적으로 긴장을 많이 하는 타입이었다. 어릴 적부터 남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하거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될 때 목소리가 떨리고 후들거려 제대로 말을 하질 못했다. 하지만 180도 달라지는 날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부모님 참관수업일이었다. 평소에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가 부모님 참관수업일만 되면 갑자기 나서서 발표를 하고 남들보다 잘하려 했다. 그 때마다 선생님들이 놀라고 기특해서 자꾸 나에게 기회를 줬고, 부모님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역시 내 자식은 다르다며 칭찬을 해주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긴장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부모님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착한 아이'였기에, 원래의 내 자신을 속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내성적이며 경쟁을 싫어하는 성격인 나라는 인간이, 면접이라는 전쟁통에서 애써 나 자신을 포장하려니 잘 되지 않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했다.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면접과정에서의 나는 '뭐든지 도전하고, 뭐든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으로 연기를 하고 있었다. 마치 어릴 때 부모님께 칭찬받고 싶어 나를 속였던 것처럼 면접관들에게도 자꾸 '인정'을 받고자 기를 쓰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렇게 내 긴장의 원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피력하는 데 너무나 큰 욕심을 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면접관들이 사실 잘 몰라서 그렇지만, 난 참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다. 남들보다 이것도 뛰어나고 저것도 잘할 수 있는데 왜 몰라줄까. 너무 억울하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이렇게 생각을 바꾸었다.
"나는 잘난 사람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 잘났다.
그들이나 나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믿고 나는 내 자신, 내 본질에 집중하자"
쉽지않지만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믿고, 또 욕심을 비우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1) 일단 진짜 나를 대표하는 성격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사실 도전적이고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성격이라기보다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성실한, 말그대로 '정직한 성격' 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인턴을 할 때도 그저 묵묵히, 열심히 하는 무식쟁이였다. 이전 면접에서는 도전정신이니, 창의력이니, 아이디어 제시니 내가 이렇게나 다양한 역량을 다 가지고 있다고 피력하기 바빴지만, 이제 내가 '얼마나 진실한 성격인지, 그리고 얼마나 책임감있는 성격인지'를 어필하는 데만 일단 집중해보기로 했다.
2) 그렇다면 과연 인사직무에 내 '정직함'이 무기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다.
글쎄, 모르긴 몰라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 봤다. 인사직무에 대해 공부한 결과, 대내외 고객들을 모두 상대해야 되면서 회사의 각종 규정과 원칙을 지켜야하는 부서로, 무엇보다 투명성이 정말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현직자 선배가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또 있다손 치더라도 '인사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정직한 사람이 있나요?!'라고 물어봐도 정확한 답변을 듣기란 만무할 것 같았으니 뭐, 그냥 내가 생각한대로 믿고 가기로 했다. 또 긴장하다가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보단 나았다.
3) 최대한 많은 취업, 면접스터디를 했다.
실험이 필요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외우고 연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되도록 다양한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이미지로 보이는지'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이전 면접스터디에서는 다들, '똑부러져 보인다', '자신감있어 보인다'는 말을 주로 들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답변이 진실되어 보인다', '정말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4) 표정, 목소리 톤, 말하는 흐름 등을 컨트롤하려 자꾸 연습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나는 긴장하면 자꾸 말이 빨라지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일단 인터넷에 올라온 다양한 면접 후기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당황했던 질문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 찾아봤다. 그리고 답변하는 내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그냥 내가 내 스스로 촬영을 하는 건데도 굉장히 떨려서, 면접에서의 분위기와 비슷한 효과를 냈다. 동영상의 나를 보는 게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꿋꿋이 연습했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목소리 톤이 어떤 것일까도 고민했다. 나는 多대多 면접에서 특히, 내 옆에 목소리 큰 지원자가 있으면 그 지원자만큼 목소리를 크게 내려 했다. 왠지 목소리가 작으면, 자신감이 없어보일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를 키우다보니 톤 자체도 높아져 사람이 가벼워보였다.
일단 "목소리가 크면 자신감이 많아보인다"라는 내 믿음 자체를 버리기로 했다. 괜히 큰 목소리로 하다 긴장하느니 그냥 내 평소 목소리대로 하되, '정직'을 어필하기 위한 진지함으로 승부하기로 했다. 대신 내가 자신있거나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내용에 강세를 주거나 흐름을 느리게 하는 등 변화를 주었다. 목소리를 크게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니, 긴장도가 좀 덜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