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면접경험, 그리고 나의 '긴장'병 치료기
시간은 야속하게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느새 주변에서 하나둘씩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너무나도 억울한 것이, 내가 훨씬 더 많이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면접전형에 더 가는데 남들을 한번 간 면접전형에도 턱턱 붙어왔다. 왜 나는 이렇게 기회가 널려있는데도 잡지를 못하는가.
하루에도 면접스터디를 2개 이상씩 했던 나는, 이제 툭치면 1분 자기소개가 자동으로 나왔다.
선배들도, 친구들도 그렇게 하나둘씩 납세자의 길로 떠날 동안, 나는 별별 면접전형을 다 겪었다.
다른 면접전형 후기
1) 합숙면접
1시간 면접보는 것도 죽겠는데 합숙면접이라니 미칠 것 같았다. 전날 밤에 잠을 설쳤다.
지하철을 탔는데 뭔가 캐리어를 들고 정장을 입은 사람이 군데군데 보여 얼른 몸을 숨겼다. 설마 나와 같은 역에 내리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역시나였다. 이런, 개찰구를 통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검은 정장에 캐리어였다. 이른 시간이라 출근하던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창피했다.
도착하자마자 자리에 앉아 인적성검사, 논술시험을 봤다. 그리고나서 버스를 타고 연수원 비슷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 주구장창 면접을 보았다.
이동할 때, 식사할 때, 하다못해 면접 잘 봤냐고 대화하는 것까지도 자유롭게 할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며 채점을 할 것 같았다. 혹시 몰라 계속 입가에 미소를 매달고 있었더니 나중에는 정말 안면근육이 굳어 입만 웃는 형태가 되었다.
토론면접도 하고, 롤플레이 면접도 하고, 인성면접도 하고.. 하도 긴장을 많이 했더니 나중에는 내가 긴장을 한건지 아니면 정신을 놓은 건지를 몰랐다. 그렇게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되고, 타고왔던 버스가 다시 왔다. 똑같은 정장무리들과 섞여 다시 돌아가려는데 면접관 분들이 나오셔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계셨다. 뭔가 울컥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정말 다시 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구마구 손을 마주 흔들었는데, 난 참 건방지게도 면접관 분들도 참 힘들게 사신다는 생각을 했다.
2) 집단토의, PT면접
토론은 어느정도 스터디를 하거나 요령을 알아서 익숙했는데, 집단토의는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찬성, 반대로 나누어서 의견을 펼치는 게 아니었다. 자료를 읽고 그것에 대해 본인 생각을 정리한 후 집단토의를 통해 문제에 대한 해결안이나 결론을 내는 것이었다. 뭐 준비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몰라 그냥 들이대기로 했다.
조가 편성되고 들어갈 순서가 되자 조원 중 한 명이 같이 화이팅하자고 우리는 적이 아니라는 소리를 했다. 적이 아니다... 어느새 우리는 '적'까지 되어있었던 건가.
그냥 A4용지 한 장 줄 줄 알았던 준비자료는 무려 책자가 한 권 나왔다. 정신없이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은 줄을 치고 어떻게 이야길 해야할까 구상했다. 다행히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거나 정리하는 데 소질이 있던 나는, 정해진 시간 안에 분산된 사람들의 주의를 모으고 어떻게든 결론을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토의면접이 끝난 후 쉬지도 않고 바로 PT면접에 대한 준비시간을 줬다. 역시나 책 한 권이 턱 나왔다.
너무나도 생소한 주제,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라 다 정리를 하지도 못한 채 면접장에 들어갔다. 인당 약 30분~40분 정도 PT 및 질답을 진행했는데,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들이 많이 나와 당황스러웠다. 또다시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나오려는 걸 초인적인 마인드컨트롤로 버텨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채, 또 이리저리 주절대는 건 막지 못했다.
3) 이상한 면접
면접방식은 특별할 게 없는 다대다면접이었는데, 질문들이 좀 이상했다.
Q. 여자들과 트러블이 있던 적이 있었나요?
Q. 애인이 있나요?
Q. 결혼은 언제할 건가요?
첫번째 질문같은 경우는, 왜 그런 질문을 하신건지 당황스러웠다. 꼭 여자여서는 그런건 아니지만 일을 진행하다보면 의견충돌이나 이런 것들은 있었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재차, "아니, 여자하고 트러블이 있었던 적이 있었냐고요." 라고 하셨다.
뭔가 쎄한 느낌이 들었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네, 있었습니다. 일을 진행하다보면 서로 간 의견이나 생각이 달라 부딪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여자여서 발생했던 건 아니었습니다."고 대답했더니 그분께서 옆의 면접관에게 바로 이야기하셨다. "그것보라고, 이래서 여자는 안된다니까. 들어오면 분란만 생겨."
아, 순간 표정관리가 안되었다. 그래도 꿋꿋이 미소를 유지하려 했는데 결과는 불합격. 분명 기분이 나빠야했는데 이상하게 좀 슬펐다.
긴장병 말기 환자인 나에게 그래도 연습기회라도 많이 주시려는지, 이것말고도 다양하디 다양한 면접을 다수 경험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나 나름대로의 긴장해소방법이 생겼다. 혹시 나와 같이 고통을 겪고있는 후배들이 있다면, 읽어보고 참고만 해봤으면 한다.
나의 면접긴장병 치료법
1) 면접 중간에라도 심호흡을 크게 한다.
면접 때는 미소를 유지한 채 꼿꼿이 앉아있어야 한다고 누가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당황스러운 질문이 치고 들어올 때의 마인드컨트롤은 그야말로 너무 어려웠다.
어차피 표정도 다 무너지는 거, 그냥 눈치보지 않고 면접 중간에라도 심호흡을 크게 했다.
면접관들도 답변하기 전에 심호흡을 하고 할말을 고르는 나를 딱히 기분나빠하거나 한심하게 보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되려 어떻게 답변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생각이 깊고 신중한 친구'로 비춰졌다고 한다.
이렇게 나와 같은 긴장병에 걸려, 답변을 하려는데 목소리가 떨려나올 것 같은 경우 시작하기 전 짧게 심호흡을 했으면 한다. 그러면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려 노력하면 덜덜거리면서 답변할 일이 적어진다.
2) 답변을 모르는 경우 : 객관적인 사실을 물어볼 때 Vs 나의 의견을 물어볼 때
말그대로 정해져있는 답을 물어볼 때, 예를 들어 그 회사의 당해년도 매출액을 물어봤는데 답을 모를 때는 그냥 모른다고 답변한다. 괜히 어물어물 대답하려다가는 긴장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의견을 물어봤는데 어떻게 답변해야할지 모를 경우, 순간적으로 어떻게 답변해야할지 많은 생각이 스쳐가겠지만 그냥 소신있게 질문을 받았을 때 즉시 떠올랐던 나의 의견을 답하기로 한다. 또 답변을 고르다가는 긴장이 심해지고, 또 추가질문을 받았을 때의 방어도 안된다. 가뜩이나 목소리도 떨려나올텐데, 답변마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면 자신감도 없고 비논리적인 지원자가 되어 매력도가 떨어진다.
3) 그 회사에 대한 가급적 '모든 것'을 공부한다.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확실히 준비가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회사는 면접에 임할 때도 뭔가 자신감이 더 있었다. 물론 준비가 되었다, 덜 되었다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 회사 홈페이지 및 최근 1년간의 뉴스기사 등을 완벽히 숙지한다면 어느정도 공부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누가 뭐래도 면접관들이 가장 큰 가산점을 주는 건, 회사에 대한 입사의지가 강하고 또 절박한 지원자이다.
혹시 운이 좋다면, 다른 지원자들은 다 모르는 사실을 나만 답변하는 기회를 얻게 되어 그때까지 긴장하고 답변을 망쳤어도 반전결과를 얻을 수 있다.
4) 괜히 목소리를 크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답변에 강세와 흐름을 준다.
자신감있게 보이려고, 본래의 나는 목소리가 우렁차지도 않은데 크게만 하려는 지원자들이 있다. 사실 나도 그랬다. 특히 다대다면접일 경우, 1분 자기소개할 때 내 옆 지원자보다 목소리를 크게 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다 바로 질문공격이 들어와 당황하면, 우렁찼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하릴없이 작아지고 기어들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그로 인해 내 자기소개는 더 외운 티가 잔뜩 났다.
물론 내 옆 지원자에 비해 내 목소리가 작다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어 보일 수 있다. 목소리가 크면 당연히 좋겠지만, 크지 않다면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하고 싶다. 긴장으로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차라리, 답변에 강세와 흐름을 주라고 하고 싶다.
작고 모노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고, 상대적으로 묻힐 수 있으므로 논리적인 지원자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강세, 그리고 답변에 리듬을 입힌다. 난 지금도 회의를 시작하기 전이나, 남들 앞에서 발표할 때 이 방법을 활용하는데 아주 효과가 좋다.
마지막으로 긴장병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말 어떻게든 '한 회사는 들어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납세자의 길로 빨리 들어가는 것이, 그때의 그 순간에는 너무 간절하고 원하는 것일 수 있지만 막상 납세자의 길은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럽다. 막상 입사하고 나니, 내가 정말 원해서 취업을 했다기보다 주변의 시선이나 부모님의 기대때문에 너무 빨리 한 건 아닌가하는 생각과, 오히려 준비를 더 많이 해서 좀 더 괜찮은 회사로 입사할걸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들었다.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아니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회는 언제든지 올 수 있지만, 그것에 내가 끌려가느냐 아니면 당기느냐는 순전히 내 마음의 문제다. 나는 그걸 못해서, 기회는 항상 나를 앞서만 갔고 질질 끌려가느라 몸과 마음만 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