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해서도 경쟁, 경쟁, 경쟁
남들은 입사하기 전에 여행은 디폴트로 다녀온다는데, 나는 그놈의 돈이 뭔지 억울하게 입문교육에 입소했다.
큰 강당에 나같은 신입사원들이 모여 갓 상경한 것마냥 눈알을 데룩데룩 굴렸다.
처음에는 잔뜩 설레는 표정으로 강당으로 들어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딱딱하게 긴장한 로봇이 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나와 같은 팀인 동기가 있느냐였다. 신입사원들 모두 팀 단위로 지원했고 합격했기 때문에 부서변경 등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다. 이 무섭고 차가운 회사에서, 설마 본인 혼자 그 팀으로 들어가게 될까봐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나를 포함해 약 80명 정도의 신입사원이 함께 입사했는데 그 중 오직 5명이 여자였다. 수많은 시선들 안에 있으려니 마치 우리 안의 원숭이가 된 것 같았다. 지정해준대로 조가 짜여지고, 당연히 여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홍일점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인사제도를 포함해 회사 전반에 대한 교육을 받고 여러 가지 개인, 또는 조별 과제를 받았다.
그렇게 입소한지 중반부가 지나고 조원들끼리도 친해져 시끄러워질때쯤 인사담당자가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다. 교육 마지막 주에 그동안 교육받은 내용으로 시험을 본 뒤 1등에게 부서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다. 아니 시험이라니, 처음에는 그런 말이 없었는데. 큰일이었다. 입문교육을 주관하는 부서가 인사팀인지라 내 시험점수는 인사팀 전체에 다 알려질 것이 자명했다.
또한 나를 기함하게 한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정해져있는 부서별 인원때문에 1등이 선택하는 부서에서는 기존 신입사원 중 1명이 빠져야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신입사원들이 잔뜩 웅성웅성했다.
적어도 입문교육 과정 중에는 그 지긋지긋한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완벽한 나의 오산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벽돌 2개 무게의 두꺼운 책을 매일 끼고 다니는 나를, 다른 동기들이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냐며 은근한 견제와 함께 놀려댔다. 괜히 다른 동기들 자극해서 나보다 좋은 점수받게 할까봐 온갖 내숭이란 내숭은 잔뜩 떨었다.
그렇게 시험날이 되었고 발표된 1등은 나와 같은 조의 조장이었다. 참 희안하게 1등부터 3등까지가 모두 우리 조에서 나왔다. 그리고 나는 3등 안에도 들지 못했다.
그렇게 입문교육이 종료되었다. 조장은 어느 부서를 선택했을까. 아마 부서별 인원이 정해져있을테니 조장이 선택하는 부서에서는 한 명이 빠져야할 것이었다.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인사팀에서 나를 호출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사팀에는 나를 포함해 총 3명의 신입사원이 배치되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인사팀으로 들어가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말이 3명이지 실제로 1명은 인사 업무가 아닌 환경 업무를 맡았다. 팀 내 업무들이 혼재되어 함께 배치된 것뿐이었다. 그래도 보면 혼자 배치된 동기도 있던데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2명이나 더 있다니 정말 감사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가지 않았던 것이, 그 중 1명의 동기가 술에 취해 나에게 험한 말을 하는 바람에, 그 동기와 우리 2명은 사이가 멀어졌다.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는 동기와, 같은 팀이라면 퇴사하겠다는 나 사이에서 죄송하지만 팀장님이 중재를 하셨다. 그 동기는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있다. 본인 능력 대비 하찮은 업무만 하는 것 같다고 옮겼는데, 연봉도 낮춰서 간 것치고는 아주 불만족스러운 것 같아 속이 시원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조장은 최종 인사팀을 선택했다. 하지만 인사팀장님의 설득으로 기존 가려던 부서에 가게 되었다고. 조장에게는 미안했지만, 하마터면 3명 중에 내가 다른 부서로 가게 되었을 수도 있던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지금도 내 사회생활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을 꼽으라면 그 때의 팀장님을 꼽는다. 현재는 다른 회사에 계시지만 내 경력의 9할을 만들어주신 분이며 여러 조언들로 나를 한층 더 강하게, 단단하게 만들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