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니 키의 <Pleasure Shop>
WRITER. 네온
샤이니 KEY가 선보이는 세계관은 언제나 독보적이다. 때로는 본 적 없이 화려하고, 때로는 이색적인 이미지에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를 부여해 대중들을 그가 만들어낸 세계로 초대한다. [BAD LOVE]에서 그가 선보였던 레트로 스페이스를 떠올려보자. 알 수 없는 생명체를 창조해 마스코트화하고, 그가 들고 있는 광선총은 분명히 SF 영화 한구석에서 본 적이 있는 소품이다. [BAD LOVE]로 보여 준 세계가 레트로 퓨처리즘에 기반한 그만의 우주였다면, 이번 그의 세 번째 미니 앨범 [Pleasure Shop]은 리스너 모두를 그가 촘촘하게 구상해 놓은 그만의 미래 세계로 초대한다.
이번 키의 미니 3집, [Pleasure Shop]에서 찾을 수 있는 요소는 퓨처리즘이다. ‘사이보그 키’가 이끄는 세계로 초대한다는 앨범 소개의 말마따나, 이번 앨범에서 키가 선보인 이미지는 그야말로 미래적인 사이보그의 이미지이다. 이는 앨범을 대표하는 컨셉 포토에서부터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차가운 분위기의 컨셉 포토 속 키는 메탈릭한 핸드 피스와 헤드셋을 통해 사이버네틱한 분위기를 더한다. ‘사이보그’라는 이미지에 맞게 마치 신체의 일부가 기계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바지나 구두 역시도 광택감 있는 소재를 사용했고, 전체적인 모노톤의 컬러감에 실버 컬러를 더해 금속성의 색깔을 보여줌으로써 그는 앨범을 대표하는 패션에서도 퓨처리즘을 추구한다. 전선을 연상시키는 디자인과 함께 희뿌연 한쪽 눈까지도 인간이 아닌 듯한 분위기를 풍겨, ‘사이보그’라는 캐릭터에 설득력을 더한다. 키는 하나의 앨범을 단순히 콘셉트만 잡고 넘기지 않는다. 캐릭터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앨범에 녹여 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U2Ur7zPztTA
키에 의해서 정교하게 짜인 서사는 뮤직비디오뿐만 아니라 무드 샘플러, 컨셉 포토 그리고 앨범을 홍보하는 프로모션 방식에까지 촘촘하게 적용되어 있다. 무드 샘플러 영상 속에서 메탈릭한 기계 악세사리를 달고 있는 사이보그 키는 또 다른 키에게 알 수 없는 잔을 건넨다. 잔 속의 액체를 삼킨 또 다른 키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사이버 세계를 유영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지만, 화면이 전환되고 키는 사라진다. 대신 그 자리에는 의문의 유리잔이 남는다. 어딘가 묘하고, 또 싸한 분위기를 풍기는 무드 샘플러 영상은 앨범의 제목이자 곡의 제목인 ‘Pleasure Shop’처럼 마냥 기쁨만 남아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노 단위로 영상을 살피다 보면, 어느새 키가 만들어 놓은 본인만의 미래 세계가 궁금해지다가, 그대로 빠져들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LgQRl5qED6c
티저를 통해 수많은 '떡밥'과 세계관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는 만큼, 본편인 그의 뮤직비디오는 어떨까? 뮤직비디오 속의 ‘Pleasure Shop’은 말 그대로 ‘기쁨’을 파는 상점이다. 스스로에게 ‘플레저한 무언가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렌즈를 통해서 뮤직비디오 속의 키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판매한다. 사람들은 더 큰 자극을 위해 사이보그 키의 상점을 방문하고, 더더욱 큰 자극을 갈망하게 된다. 그리고 키는 사람들을 본인의 상점에 초대하고 그들을 홀리는 데에서 기쁨을 얻는다. 마치 공상과학 같은 배경 설정과 함께 따라오는 로봇 팔이나 실험실과 같은 세트, 메탈릭한 이미지의 공간 역시 키가 만들어낸 퓨처리즘의 산물이다. <Pleasure Shop>은 내내 ‘플레저’에 당신을 환영한다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으나 뮤직비디오가 진행될수록 묘하게 불안한 분위기로 이어진다. 뮤직비디오 속의 키는 ‘플레저’하다기에는 웃음을 짓지 않고, 어딘가 혼란스럽다. 키가 궁극적으로 말하는 ‘Pleasure’는 중독이다. 키가 제공하는 가짜 기쁨에 사람들은 중독되고, 플레저 샵을 운영하는 키의 머릿속에는 이를 조종하는 또 다른 키가 있다. 같은 사람으로 보이면서도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진짜’는 흐려진다.
키의 세계는 뮤직비디오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음악 바깥으로 나와 직접적으로 리스너들을 환영한다. 키가 앨범 패키징에 참여하는 걸 넘어서, 그 앨범이 어떻게 배송되는지, 어떤 식으로 구현되어 대중들에게 전달되는지 세세한 부분까지도 신경 쓴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앨범 <Pleasure Shop> 역시도 앨범 구성품에,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던 유리잔과 같은 디자인의 플라스틱 잔을 포함했다. 키가 이 컵이 깨지거나 모양이 어그러져서 도착하는 것은 아닌지 직접 앨범을 몇 개씩 주문해서 확인했다는 에피소드는 당시 케이팝 팬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키의 섬세함과 더불어 본인의 작업물에 갖는 애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키는 본인의 세계에 당신을 참여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무드 샘플러 영상에서 사이보그 키는 손님 키에게 유리잔을 건네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앨범 구성품에 같은 잔이 들어 있다는 것도 앨범을 받는 모든 사람을 이야기로 초대하고자 하는 연출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환영’은 앨범 프로모션 이벤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키의 <Pleasure Shop> 발매 며칠 전 ‘안녕하세요, 중독자 여러분. Pleasure Addicts Club입니다.’라는 서두와 함께 샤이니 공식 계정에 돌발적인 프로모션이 업로드됐다. ‘플레저 샵’을 현실에 구현하고, 유리잔에 담긴 ‘플레져’를 직접 만들고 체험할 수 있도록했다. 문구에서도 찾을 수 있듯이, 플레저는 중독이다. 키는 작업물에 담은 본인의 이야기와 그 의도 속으로 사람들을 완전히 끌어들였다. 음악과 비주얼, 홍보까지도 모두 같은 내러티브를 완벽하게 공유하도록 만든 것이다. 정교하게 설계된 프로모션이 앨범 전후로 이어지면서 키의 플레저샵을 어디서라도 마주한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라도 동시에 같은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것이 키의 작업에서 마주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키의 앨범을 구매하여 플라스틱 잔을 받거나, 사전 프로모션이었던 팝업 스토어에 방문하여 플레저 주스를 만들거나, 혹은 티저 영상을 통해 플레저 샵에 방문하거나. 우리는 어느새 키의 세계 한가운데에 있다.
키는 꾸준하고 우직하게 티저 이미지와 프로모션, 앨범 패키지 구성 그리고 뮤직비디오에서까지 퓨처리즘을 통해 그가 구축한 세계관을 표현해 왔다. 그는 언제나 앨범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꼼꼼하게 부여한다. 앨범의 비주얼적인 부분에서 확실한 통일감을 선사하고 리스너들을 설득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음악뿐이다. 설계도 사이에서 음악에 구멍이 있다면 그 설득력이 확연히 떨어지게 된다. 콘셉트와 비주얼이 음악을 압도하여 오히려 음악과의 괴리가 생기거나 이질적으로 보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Pleasure Shop>은 음악으로 완성한 앨범이라고 말하고 싶다. 앨범의 모든 트랙을 하우스를 기반으로 만들어 통일성을 잡았다. 키가 만들어낸 콘셉트도 너무 과하거나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하우스 음악과 잘 어우러져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다. <Pleasure Shop>의 주인공은 사이보그 KEY다. 그의 세계관 속 새로운 현실은 sci-fi지만, 음악은 레트로한 하우스 장르이다. 키의 음악은 언제나 카세트 퓨처리즘, 복고미래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Pleasure Shop>의 미래적인 분위기에 어우러진 레트로한 EDM 비트와 하우스는 과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다프트 펑크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다프트 펑크가 70년대에 시작한 하우스 계열 사운드를 자신의 음악에 재해석했듯이, 키는 10년 전 K-POP 씬에서 유행하던 개러지 음악이나 딥 하우스 장르를 키는 노련하게 스스로의 음악에 적용시켰다. 10년 전 유행한 하우스 음악이 샤이니의 ‘view’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키의 이번 장르적 선택은 본인에게 의미가 깊고 또 잘 할 수 있을 필살기를 내보인 것은 아닐까.
이번 미니 3집에 수록된 여섯 곡은 전부 하우스 장르로 귀결되지만, 통일감이 있다고 해서 구성에 지루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앨범을 통째로 들었을 때 어느 하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곡이 없지만, 그렇다고 아 이 노래 아까 들어봤는데, 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어느 하나 어색하게 튀는 부분 없이 일관적이기에 듣기에 담백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키가 가지는 음악에 대한 세심함과 디테일한 구조는 리스너들이 자연스럽게 키의 세계에 매료당하도록 만든다. 그의 색깔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미니 3집 <Pleasure Shop>은 특히나 리스너들에게 깔끔하지만 확실하게 ‘키’라는 아티스트를 어필한다. 키의 활동이 이어질수록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는 키만의 세계관 속에서, 다음에는 KEY WORLD의 어떤 구역을 구경할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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