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RITER 덕원
타임지가 선택한 올해의 엔터테이너, 한국 가수 최초의 코첼라 헤드라이너, 세계 걸그룹 역사상 가장 높은 투어 수익 기록. 이 모든 성과의 주인공인 블랙핑크는 명실상부 케이팝 최고의 걸그룹 중 하나다. 특히 해외에서 케이팝 걸그룹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지난 7년 간 블랙핑크가 톡톡한 역할을 해온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지점이다. 어떤 그룹과 견주어도 가히 독보적인 커리어를 완성했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이제는 솔로로서도 남다른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블랙핑크의 가장 큰 이슈는 재계약 여부였다. 해체 수순을 밟진 않았지만, 멤버 전원 모두 기존 소속사인 YG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사실상 솔로 활동에 더 박차를 가할 것임을 비추기도 했다. 기약 없는 완전체 활동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존재했지만, 멤버 모두 높은 수준의 실력과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한 만큼 솔로 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앞서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기대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멤버들의 매력은 YG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몇몇 평가들이 무색할 만한 성적을 내고 있다. 멤버 모두 그룹 활동 때는 선보이지 못한 자신의 취향이 담긴 음악과 함께 국내외 음원 차트를 휩쓸며, 블핑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그룹 활동 없이 11월 걸그룹 브랜드 평판 1위를 기록한 것만 봐도 이들의 솔로 활동이 얼마나 빛을 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제아무리 명성 높은 걸그룹이라고 한들, 음원 차트 상위권을 멤버들이 나란히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블랙핑크의 멤버들이 어떤 음악과 메시지와 함께 그룹 활동 때와는 다른 차별 포인트를 만들어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필자는 배우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지수를 제외한 제니, 로제, 리사의 솔로 앨범을 중심으로 그들의 첫 홀로서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개성 강한 멤버들 사이에서도 유달리 눈길이 가는 제니. 독보적인 매력 때문인지, 필자는 개인 레이블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제니가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가장 궁금하기도 했다.
제니의 ‘Mantra’는 누구나 자신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곡이다. Love Myself, 흔하디흔한 주제인 데다 이미 완벽한 셀럽의 모습을 갖춘 이가 예쁜 여성임을 강조하는 노래가 어딘가 모순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블랙핑크로 활동하면서 당당한 여성의 이미지로 이미 많이 소비됐다 보니 더욱이 색다른 인상을 받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Mantra’를 특별한 변화가 없는 양산형 앨범으로만 보기엔 섣부르다. 데뷔할 당시의 제니를 생각해 보면 정석적인 미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가진 아티스트는 아니었다. 제니야말로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모두를 매료시키고, 기존 미의 기준과는 다른 본인만의 추구미로 유행을 선도한 아티스트다. 이렇듯 주체성을 가진 제니가 ‘우리는 모두 자신 만의 방식으로 빛나며, 당당히 본인 만의 매력을 만들어 가라’는 응원을 보낸다는 사실은 필자에게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https://youtu.be/Wv65k8LMn6M?si=yXy_vor_ZZKU6IU2
더하여 오직 여성을 위해 노래했다는 점도 이 곡의 인상적인 부분이며 차별 포인트다. 프로모션 영상 중 하나인 Presenting Video ‘MANTRA for Pretty Girls’에선 전 세계의 여성을 대표하여, 모든 여성은 존재만으로 고귀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동물을 사랑하고, 잠을 많이 자는 것만으로도 예쁜 여성의 기준에 충족한다는 메시지는 엄격한 미의 기준을 요구받는 여성 사회에서 울림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셀럽 중의 셀럽인 제니가 너도 나처럼 너만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곡을 마다할 여성은 아마 없을 것이다. 블랙핑크가 많은 젊은 여성 팬들에게 사랑받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여성을 향한 제니의 진심도 그녀의 전략가 기질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Mantra’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비주얼이 특히 묘미이다. YG는 비주얼적으로 확실한 본인들만의 철학을 갖고 있어 제니의 매력을 돋보이는 데 큰 몫을 했지만, 한편으론 다양한 모습을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도 많았다. 이를 의식하듯 ‘Mantra’ 뮤직비디오에서 무려 6번이나 스타일링에 변화를 주며, 청순, 섹시, 카리스마 등 여러 가지 컨셉을 한 번에 소화하기도 했다.
https://youtu.be/bB3-CUMERIU?si=Zlw-bplrOAQGBoP5
이번 뮤직비디오는 도자캣, 카디비 등과 협업 경력이 있는 ‘타누 무이노’ 감독이 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때문인지 뮤직비디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할리우드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뮤직비디오 속 분위기가 제니의 외적인 매력과 잘 융화되긴 하지만, 본래가 팝 가수의 느낌을 내재하고 있다 보니 완전히 새롭다는 인식까진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앞서 소개한 Presenting 비디오가 이국적인 분위기에 레트로한 느낌까지 더해져 세련되고 트렌디한 영상미로 압도했다 보니, 뮤직비디오의 임팩트가 더욱 부족하게 느껴진 여파도 있다. 그럼에도 헤어부터 의상까지 최대한 많은 분위기를 자아내려 한 노력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스타일링 속에서 '세상엔 다양한 매력의 여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낸 점은 뮤직비디오와 음악의 시너지를 충분히 빛나게 했다.
세계 소녀의 날에 음원을 발매한 점, 모든 스태프와 댄서를 여성으로만 구성한 점 등, ‘Mantra’를 완성시킨 여러 디테일 속에서 제니가 프로듀서의 자질도 갖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직 여성을 위한 응원가를 만들고 싶었던 제니의 바람이 그녀의 예술적 감각으로 잘 표출된 앨범인 듯싶다. 제니가 이후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궁금해질 만큼, 그룹 활동 때는 미처 몰랐던 작품에 대한 그녀의 집요함을 알 수 있었던 활동이다.
샤이니의 Ring Ding Dong, SS501의 U R MAN을 뛰어넘는 수능 금지곡으로 꼽히고 있는 로제의 ‘APT.’. 술 게임 ‘아파트’의 멜로디로 곡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올해 발매한 앨범들 중 가장 참신하다.
‘APT.’의 가장 큰 매력은 펑키하고 팝다운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코러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디로 구성돼 있어 친근감이 넘친다는 점이다. 거기다 팝 황제인 브루노 마스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마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느낌까지 든다. 퓨전 음악 같기도 하고, 분명하게 B급 감성을 노리고 있지만 세계를 아파트 열풍으로 물들인 것을 생각하면,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 넘치는 곡이다. 나도 모르게 입에 착 달라붙는 멜로디가 수능 금지곡이 되지 않을 수 없다.
https://youtu.be/ekr2nIex040?si=Ql0sHMJlzdCMAdy4
로제가 스태프들에게 아파트 게임을 알려준 것을 계기로 작업까지 이어졌다는 후일담에서 알 수 있듯, ‘APT.’는 그저 즐거움만을 생각하며 제작된 곡이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지 않아도, 그 어떤 곡보다 의미가 충만하게 다가온다. 언어와 장벽을 뛰어넘어 모두가 즐겁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만큼 대단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필자는 블랙핑크 멤버 중 로제가 가장 진중한 노래를 발매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로제의 음악 세계 안에 발랄한 면모가 있었다는 것이 큰 반전이었다.
사실 한국에서의 ‘APT.’ 열풍은 너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익숙한 멜로디를 가진 곡은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손이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외국에서도 ‘APT.’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을 단순히 로제의 인지도 때문으로만 보긴 어렵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 2위를 기록하며 케이팝 여성 가수 중 최고 기록을 달성했고, 빌보드 핫100 차트 8위를 기록하며 케이팝 여성 가수 역대 최초로 TOP10 진입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블랙핑크 활동 때보다 더 높은 커리어를 갱신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는 가운데, 단순히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명성만으로 성공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글로벌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콩글리시가 통했다는 점이 꼽힌다. ‘APT’는 영어 원어 표현인 ‘Apartment’에서 유래한 외래어이자 콩글리시 표현이다. 영어권 문화의 입장에서 정확한 표현도 아니고 아시아인들만 통하는 주문처럼 들리는 단어지만, 콩글리시 사운드가 주는 청각적 쾌감이 매우 고유하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노래에 중독되었을 즈음, 따라 부르기에도 그리 어려운 단어가 아니다. 그 덕분에 코러스의 가사가 영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수 있었다. 더하여 브루노 마스의 파트들도 얼핏 들으면 전부 영어로만 구성된 것 같지만, ‘건배 건배’와 같은 한국어 가사가 숨겨져 있다. 이런 언어유희가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독특한 재미로 발현된 것이다. 온전히 의미가 이해되진 않아도 음악의 첫 번째 덕목인 사운드의 쾌감이 충분히 전달된 것이다.
https://youtube.com/shorts/m7AD2GKqI10?si=fMDGFssAbleiEUZY
이외에도 아파트 게임의 손동작을 챌린지에 사용해 소소한 재미를 주기도 했으며,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기만 하는 챌린지는 게임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접근성을 높였다. 중독성 있는 노래인 데다 챌린지 또한 자율도가 높아, 자신의 개성대로 변형하여서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뿐만 아니라 여러 패러디 커버 영상도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유튜버 '화성인 릴도지'가 제작한 북한 버전의 ‘APT.’는 공개 일주일 만에 500만 뷰를 돌파하기도 했다. 즉, 술 게임으로 만든 노래가 대중들에게 새로운 놀이터가 된 격이다.
단순히 재미로 시작했던 노래가 결국 전 세계인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니, 로제의 의도는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더하여 고급스러운 이미지에서 친근한 이미지로 변신하여 자신의 한계까지 넓혔다. 이렇듯 완벽한 이미지 변신이 앞으로 로제의 솔로 활동을 더 기대되게 만드는 이유기도 하다. 오는 12월 6일, 선공개한 ‘APT.’를 포함해 정식 컴백을 앞둔 가운데 어떤 앨범을 선보일지 많은 관심 바란다.
6월 28일에 발매된 ‘Rockstar’는 앞선 두 노래에 비해 한국에서 그리 흥행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리사의 이야기를 듣기에 이보다 더 좋은 노래는 없는 것 같다.
‘Rockstar’가 발매된 이후 리사가 케이팝을 떠난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기에, 사실 케이팝 팬들에게는 다소 이중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곡이다. 물론 케이팝을 완전히 등져버렸다고 판단 내릴 순 없지만, 리사가 팝 가수로서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절실히 느껴진다.
https://youtu.be/hbcGx4MGUMg?si=7KaYy1XU4yaLfEn9
곡에는 케이팝 가수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받았던 인종에 대한 오해와 차별을 담았다. 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나라에 대한 애정도 들어내면서 말이다. 그 대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Lisa, can you teach me Japanese?”라고 묻는 가사에 “I said hai hai”라고 대답하는 부분이다. はい(발음: 하이)는 일본어로 ‘네’라는 대답인데, 이것이 태국어 “ให้"과 발음이 똑같다. 겉보기엔 리사가 일본어를 가르쳐 줄 것처럼 순응한 것으로 보이지만, 자신은 일본인이 아닌 태국인 임을 강조한 것이다. 즉, 그동안 리사가 블랙핑크로 활동하면서 서양인들에게 일본인으로 많은 오해를 받은 것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또한 방콕은 예쁘다고 하는 가사가 등장하기도 하고, 뮤직비디오는 태국의 차이나타운에서 촬영했으며 태국의 인플루언서 3명이 등장하기도 한다. 태국을 자랑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진 않았지만, 모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드러나 있으며 자기 작품을 통해 태국이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 내포된 것은 분명하다.
리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스토리를 이어가면서도 ‘I’m Rockstar’라는 가사를 계속해서 강조하는데, 이는 자신이 블랙핑크 때와는 다른 것을 추구할 것이며, 자신이 하려는 음악도 케이팝이라는 틀 안에 속박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 리사는 세계 시장에 K를 떼고 도전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옳은 선택인지는 더욱 지켜봐야 하는 부분이지만, Rockstar를 통해 완전한 홀로서기를 선언한 것이다. 한국 대중들 사이에서는 이 곡을 계기로 리사를 배신자로 칭하는 사람도 많다. 다시 블랙핑크로 활동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리사가 얼마나 성실히 참여할지는 미지수지만, 그룹 활동만 열심히 해준다면 필자는 리사의 개인적인 꿈도 응원하는 바다. 계약기간 동안 성실히 활동해 온 아티스트에게 케이팝의 틀을 강요하기엔 케이팝은 이젠 글로벌로 도약한 산업이 아니던가. 게다가 일부 사람들은 리사의 이러한 행보에 비판만 하기엔, K의 근본은 무엇인지 우리부터 먼저 확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장하기도 한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리사의 행보가 마냥 달갑지는 않지만, 만약 리사가 도전에 성공한다면 음악 시장의 다양성을 넓혀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일부 팬들은 리사가 스스로 락스타로 거듭날 것임을 화려하고 자신감 있게 표현하고 있지만, 음악은 이전과 큰 차별점이 없다며 메시지보다 음악의 방향성을 더욱 견고히 할 때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리사가 남다른 각오를 보여준 만큼, 대중들의 피드백을 귀담아듣고 독보적인 색깔을 갖추길 바라는 바다.
멤버 모두 각기 다른 방향성을 추구하고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지만,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음악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는 사실만은 공통적이다. 이 같은 노력이 블랙핑크 멤버들이 그룹의 울타리에 벗어나서도,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잘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할 것이다. 블랙핑크의 솔로 활동이 지금처럼 탄탄대로 이어져,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길 바란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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