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민경 Sep 08. 2018

내 시선을 보여줄게요
_ 책 '사울레이터의 모든 것'



사울 레이터에 대한 모든 것
'시선'에 관하여




적당한 수준의 작가의 말


 이 시대에 가장 말이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작가는 아닐 것이다. 의미와 글자가 너무 많다. 그리고 필자도 아닐 것이다. 조잘조잘 말이 많다. 아마 필자가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말이 없는 사람은, 사진가 혹은 화가 등의 예술가들이다. 작품으로 말을 할 수는 있어도, 말 그 자체를 하지는 못한다. 아마 말이 많은 사람의 미술품은 가치가 낮을 것이다. 유효한 상상과 생각의 공간이 매우 적을테니까.


 앙드레 지드가 말하길, 작품에는 세가지 몫이 있는데 작가의 몫, 독자의 몫, 신의 몫이 바로 그것이랬다. 신의 몫은 작가가 깨닫지도, 깨달을수도, 느낄 수도 없는 그런 몫으로 입센의 <인형의 집>이 그도 모르게 페미니즘 작품의 시초가 된 것이 그 예이다.

 우리는 곧잘 독자의 몫, 신의 몫을 향유하지만, 결국 ‘작가의 몫’은 그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그런 상황 속에 종종 빠져있곤 했다. 그렇다보니 우리는 사진가 혹은 미술가의 말 혹은 이야기는, 여담을 통해서만 들었다. 사실은 그 미술가는 이랬다더라, 이런 말을 했다더라는 것은 우리가 예술품을 보고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그런 독자들의 안타까움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그것도 아주 적당한 수준으로.

 예를 들어, 이 책에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이 아주 많다. 하지만, 수많은 사진들을 보고 향유하다 보면 작가의 의도나 생각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책에는 흰 페이지에 영어 말과 한국말 해석본이 제시되어있다.


사울레이터의 이야기 - 시선


 사울레이터의 이야기는 거의 이런 것이다. ‘대상보다는 시선이 중요하다.’ ‘일상의 것이 특별하다’, 그리고 필자가 이 말을 토대로 느낀 바에 의하면 정말 사울 레이터가 시선을 중요시하는 만큼, 그의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묵직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예술가의 말이 궁금해왔다. 예술이라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두루뭉술한 것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미치지 않는 힘이 어디에 있을지, 그들의 생각들이 궁금했었다. 이 책은 필자의 그런 궁금증을 아주 적당한 온도로 전한다. 사진의 감상을 헤치지 않을만큼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짧은 말들의 제시가 과하지 않아 좋았다.


그 말을 들은 필자의 시선

 사진에는 나도 모르게 시선이 닿는 데가 있다. 목적성을 띄고 찍은 사진을 보아도 그러한데, 무목적성을 내세우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더더욱 그런 것이다. 무엇을 보든 상관 없다고 말하는 듯한 그의 사진은 온갖데에 오랜 시간을 두게 만드는 그런 것들 투성이다. 롤랑바르트가 사진엔 스투디움과 푼크툼이 있다고 했는데, 그 단어의 탄생을 이해해버린 순간이었다. (스투디움은 사진의 보편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을, 푼크툼은 사진의 한 부분이 타인과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을 찌르는 경험을 의미한다)

 아마 각각의 모든 사진은 그렇게 오래 시선을 둘만한 데를 가지고 있었을 텐데, 책이라는 것은 나를 재촉한다. 그런 점에서 사진집은 친절하면서도 못되었다.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해주지만 대신 오랜 시간을 내주지는 않는다. 아마 이 책은 필자가 두고두고 옆에 끼고, 그 색채와 아름다움을 즐기며 나를 찌르는 푼크툼을 오래오래 찾아볼 그런 소지품이 되지 않을까.

이 사진 속 필자의 푼크툼들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난 경험이 있는데, 누군가가 필자를 찍어준 일이었다. 모든 사진을 고치고 정돈하는 필자지만 그 사진은 고치지 않았다. 그가 찍어준 필자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건 그가 필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뻐서라기 보다는, 그가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뻐서 그런 것일 것이다다. 사울 레이터도 같았다. 그도 일상과 주변을 바라보는 눈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필자의 지인이 사울레이터를 닮은 건지, 사울레이터가 지인을 닮은 건지는 모르겠다.


마무리


내 시선을 보여줄게요.


 아마 이 책이 모든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는, 주변과 일상을 애정하며 시선할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필자도 글의 마지막에서 그 진부한 시사점을 다시 되새기며 글을 닫아야 할 것 같다. 시선이 무겁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겠다. 또 시선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