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ing Choenghee Mar 10. 2024

저 동물들 알아요!

12. <Whose Baby am I?>

 딸이 돌 전부터 자주 보던 책 <Whose Baby am I?>. 많이 닳고 구겨진 책 사진을 통해서도 그 반복 독서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자기 전 부쩍 가져오던 책이라 작은 조명을 머리맡에 두고 딸에게 읽어주었다. 노래가 딸려있는 책이라 그 노래를 반복해서 불러주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너무 자주 노래로 불러주고 읽어주던 책이라 딸이 따라 부른다. 다른 부분 다 제외하고 ‘I’만. 내가 ‘Whose baby am I?’를 부를 때 딸은 기다렸다가 어김없이 ‘I’를 함께 부르고 바로 뒤따르는 ‘I am ~’ 부분도 ‘I’를 같이 부른다. 계속 ’ 아이~ 아이~‘하면서 따라 부르는 딸이 너무 사랑스럽다.




 책에 대한 소개부터 하자면, 'Whose baby am I?(난 누구의 아기일까요?)'가 반복되고 그에 대한 답으로 'I am (동물)'s baby.'가 또 반복된다. 엄마/아빠 동물과 아기 동물들의 사진이 차례로 제시되면서 표현이 반복되고 다양한 동물들의 영어 단어가 제시되는 것이다. 책 말미에 딸에게 "OO이는 엄마 새끼/아기~"하면서 폭풍 포옹과 뽀뽀를 해준다. 그럴 때마다 딸은 배시시 웃는다.      




딸의 혼란을 막기 위해 책을 반으로 접어서 그림을 제시한다. 올빼미 그림, 다음에는 올빼미와 새끼 올빼미가 함께 있는 그림만 보게 된다.
책을 펼쳐서 보여주면 코끼리와 코알라 등 관련없는 그림을 같이 보게 되어 혼란스러울 수 있다.




 구체적으로, 노래를 부르듯 책을 읽어주는데 동물의 이름 부분에서는 그 동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baby를 부를 땐 새끼 동물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예를 들어, I am Elephant's baby를 읽어줄 때 'Elephant' 할 때는 큰 코끼리를 손가락으로, 'baby'할 때는 새끼 코끼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모든 동물들을 다 이런 식으로 노래 부르듯 읽어주었다. 가끔 딸이 동물들의 이름을 우리말로 이미 알고 있을 땐 동물들의 영어 단어 발음을 들려준 후 우리말로 한 번 언급해 줄 때도 있었다. 








 18개월인 딸이 요즘 부쩍 아는 단어가 많아지고 입 밖으로 말하는 단어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것이 보였다. 우리말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문득 궁금해졌다. 영어 단어로 동물들의 단어를 들려주면 딸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너무 많이 반복해서 읽어주고 노래 불러주던 책이라 놀이처럼 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책의 마지막 장에 가면 모든 동물과 새끼동물들의 그림이 각 쪽에 나열되어 있다.




 우선, 딸이 이미 영어 단어로 알고 있는 익숙한 동물들부터 영어 발음으로 물어보았다. 위의 사진처럼 모든 동물들이 모여있는 장을 펼쳐 코끼리를 찾아보게 했다. "OO아, elephant 어디 있어?"라고 하니 손가락으로 코끼리를 가리켜 찾아냈다. "panda bear는?" 딸이 손가락으로 팬더곰을 정확하게 짚었다. 뒤뚱뒤뚱 걷는 펭귄을 자주 흉내 내며 걷는 딸은 펭귄도 무난하게 찾아냈다.




 이후, 코알라, 북극곰, 기린, 올빼미, 물개, 얼룩말까지 영어 발음을 듣고 정확하게 찾아내는 딸. 남편과 나는 그런 딸을 보며 팔불출 같은 말들과 칭찬을 폭포수처럼 딸에게 해댔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딸이 영어를 싫어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점점 영어에 익숙해지고 영어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알고 있다. 반복하지 않으면 그다음 날에는 딸이 알고 있던 것도 모를 수 있다는 걸. 








 딸에게 영어 그림책을 자주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는 과정에서 내가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는

딸이 일상생활 속에서 보고 듣는 것들, 그리고

한글로 이미 알고 있는 것들과

자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한글로 된 그림책이든, 영어로 된 그림책이든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책들이 다루는 주제와 내용은 비슷하다. 그러므로 내용이 겹칠 수밖에 없다. 또한, 딸이 현실 세계에서 보고 듣고 맛보고 만져보는 모든 것들이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에 당연히 나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OO아, 우리 어제 이거 공원에서 봤지?", "이거 저번에 외갓집에서 먹어봤었지?", "맞아, 엘레펀~ 코끼리", "우와~ 달님이네. 책에서 봤던 달님! 달님 안녕~하자" 등등. 이러면 딸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 엄마와 함께 읽었던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한다. 책 속 노래를 틀어주어도 그 책을 가져온다. 오래전에 읽어주고 노래를 들려주던 것이라도.




 언어교육, 특히 영어교육 전공자라면 모를 수 없는 언어학자 Stephen Krashen의 입력 가설(input hypothesis)에 따르면 학습자의 현재 수준보다 살짝 높은 수준의 언어 입력(input)이 주어질 때 습득이 일어난다고 한다. 즉, 이미 습득된 단어, 문법, 발음 등 이것들보다 아주 조금 더 어려운 언어에 노출되었을 때 습득이 일어나며, 너무 어려운 것은 습득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The input hypothesis is that acquisition occurs when one is exposed to language that is comprehensible and that contains i + 1. The 'i' represents the level of language already acquired, and the '+ 1' is a metaphor for language (words, grammatical forms, aspects of pronunciation) that is just a step beyond that level.   

-p. 37 Second language applications: Krashen's 'monitor model' <How Languages are Learned> by Patsy M. Lightbown & Nina Spada  




 평소에 딸(현재 18개월)이 이미 알고 있는 한글 단어, 발화할 수 있는 우리말 및 영어 발음을 'i'로 삼아 새로운 영어 단어들을 그림책으로 재미있게 익히고, 영어로 말할 수 있을 법한 단어들은 내가 천천히 과장하여 발음해 주며 딸이 입 밖으로 소리내보게 한다. 




 어제는 딸이 한글로 된 그림사전을 보다가 나온 '열대어'를 보고 영어 그림책 <Hooray for Fish!>를 가져오며 "피시"라고 말하는 걸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살 딸이 나에게 알려주는 답: 딸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한글로 된 그림책 속 세상-영어로 된 그림책 속 세상이 각기 구분된 세계가 아니다. 하나로 연결되고 통합된 세상이다. 엄마가 건네는 말들, 들려오는 노래로 읽었던 책을 찾아오고, 그림책에서 보았던 것을 현실에서 보았을 때 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낸다. 딸에게 책을 읽어줄수록 딸만이 갖고 있는 그 세상이 무한히 팽창할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곰돌이야, 가지 마. 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