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을 다녀왔다.
작년 말에 우연찮게 도쿄 항공권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얻었다. 항공권 개시는 올해 4월 중순.
도쿄를 다녀온 후기를 한마디로 말하면 ‘이제 당분간 해외 여행은 쉬고 싶다’.
한마디를 더 붙여본다면 ‘우리집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다‘. 지루해보일 수 있는 반복적인 일상이 흐르는 내 공간, 그 공간에 흐르는 시간들이 더 소중해지는 건 왜일까. 단순히 생각하면 체력을 너무 많이 소진한 여행이어서일 듯. 그만큼 누리진 못했고.
도쿄 여행에서 돌아온지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 여행을 생각하면 별로 떠오르는게 많지 않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고 우리집을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해 지정된 좌석에 착석했을 때의 기분 좋음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딱 하나만 꼽아보자면 츠타야 서점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알기론 도쿄에 츠타야 서점이 4군데가 있다. 긴자 츠타야 서점,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 롯폰기 츠타야 서점, 나카메구로 츠타야 서점.
도쿄에서의 첫 츠타야 서점이 긴자 츠타야 서점이었는데 그곳에서의 시간이 너무 달콤해 다른 두 곳의 츠타야 서점을 더 들리게 된다.
1. 긴자 츠타야 서점
도쿄에 도착한 날. 늦은 오후에 도착해 가장 효율적인 동선에 있던 긴자 츠타야 서점. 긴자 식스 빌딩 안에 있었는데 쇼핑 건물 안에 있는 곳이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았던 곳.
츠타야 서점은 책만 파는 곳이 아니다. 스타벅스가 있어 차나 커피 등 음료와 함께 독서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만도 부족하다. 츠타야는 문화복합공간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예술도 함께 깃들어있다. 미술 전시도 함께 이루어지는 곳. 그림체가 일본스러워 귀여웠던 작품들이 많아 관심이 일었다.
일본어도 할 줄 몰라 읽을 수 있는게 하나도 없으면서 책들을 좀 더 둘러보다가 다시 와야지 하고 전시된 작품들을 아껴두었었는데 츠타야 서점에 늦게 도착한지라 클로징 시간이 다되어 결국 전시를 즐기지 못했다.
지금도 후회하는 중이다. 여행 내내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으면 한 번 더 갔다왔어야 했는데…
2.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
시간이 더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츠타야 서점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여유롭게 책을 읽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의 장점인 녹색 자연 속에서 커피 한 잔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다.
일본어를 조금도 읽지 못하지만 익숙한 표지가 눈에 띄어 너무 반가웠다. 일본 서점 번역 대상 수상작인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아몬드>가 눈에 띄었다. <82년생 김지영>도. 이외에는 한국 문학책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일본어를 잘 했더라면 아마 일본어로 된 저 책들을 사오지 않았을까.
3. 롯폰기 츠타야 서점
츠타야 서점 중 가장 평범했던 곳. 교보문고 느낌이었달까. 몰랐는데 츠타야 서점마다 내부 구성이 달랐다. 여기는 책과 스타벅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심플했던 츠타야.
하지만 서점 외부에 마련된 아담한 좌석은 바로 앞에 높지 않은 계단이 있어 우리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요즘 딸이 혼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에 심취해있기 때문이다. 딸은 연신 계단을 오르내리며 우리의 반응을 살폈지만 남편과 나는 어느 츠타야보다 여유롭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즐길 수 있었다.
모든 츠타야 서점의 공통된 특징
쉐어 라운지(Share Lounge)
츠타야 서점에서 발견한 새로운 공간 쉐어 라운지. 츠타야에는 스타벅스만이 책 읽는 사람들에게 안락한 공간과 음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쉐어 라운지가 있다. 프리드링크와 각종 스낵들이 제공되는데 일정 금액을 내고 이용하는 듯 했다. 더나아가 LP도 들을 수 있고, 술도 겻들일 수 있는 곳.
서점인데 책만 사는 게 아니라 그곳에 책을 즐기는 시간, 책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음악, 커피, 술, 그리고 조용한 공간, 그리고 문화,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아이템들까지. 이쯤되면 서점이 아니라 문화를 향유하러 가는 곳.
아주 주관적인 도쿄에 대한 인상:
개인적이고 조용하다
도쿄는 어디를 가나 둘이서,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혼자서 어디를 이동 중이거나 책을 읽고 있거나 휴대폰을 보고 있다. 심지어 혼자 있더라도 폰으로 타인과 연결되어 전화를 하는 사람도 없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외국인들이었다. 남편과 딸과 나처럼.
지독히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고 동시에 피해받고 싶지 않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시선하나 쉽게 남에게 두지 않는다. 자신의 눈빛 하나도 조심한다. 너무 놀란 점이 하나 더 있는데 유치원생처럼 보이던 아이조차 아주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쳤는데 딸과 나를 보지 않는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문화와 관습의 영향이 이렇게나 크다.
가끔 길을 몰라 도쿄 현지인으로 보이는 듯한 사람들에게 몇번 물었었는데 정말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 일본인들은 대체로 일본어로 이루어지는 일본이라는 세상에 갇혀 사는 듯하다. 그밖의 더 넓은 세상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도 없고 그저 자신의 하루를 살아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지극히 나의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느낀 점을 쓰는 것이라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이런 일본인들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궁금증이 일어 일본에 사는 한국인 유튜버들의 영상 몇개를 시청했다. 세상에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그래서 배우고 싶은 외국어도 많은 나와 정반대에 있는 듯한 일본인들이 궁금해진 것이다.
영상에서 알게된 정보를 나열해보자면 일본인, 특히 젊은 층들의 월소득이 그리 높지 않다고. 그리고 나라에서 제공되는 지원금이 어느정도 충분해 취업에 대한 욕구나 조급함도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그저 받은 월급 안에서 소소하게 살아가고 그래서 일본인들은 해외여행도 거의 가지 않는다고. 차도 잘 사지 않는다고 한다. 대중교통비도 비싼 편이라 자전거를 주요 교통 수단으로 활용한다고.
어떤 라이프스타일이 더 좋다고 말 할 수 없다. 그건 그 어떤 삶을 사는 그 개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 제일이지 않을까.
도쿄에 도착한 첫날 긴자 츠타야 서점에 들린 뒤 가까운 곳에 도쿄역이 있어 잠시 쉬던 곳. 딸이 처방받은 약을 먹지 않아 애를 먹던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즐겁자고 간 여행에서 요즘 좀 더 자유로운 활동가가 된 딸을 통제하느라 짜증도 많이 냈다. 동물원, 문구점, 꽃나무 아래, 강가에서 동물들, 꽃, 흘러가는 물을 보고 좋아하는 딸과 펜을 잡고 어떻게든 써보겠다고 고집부리는 딸을 보며 귀여워 웃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또 제멋대로 하려는 딸을 통제하고 통제가 안돼 짜증내고 마는 무한 루프 속에 들어간 듯했다.
사람 많고 복잡한 도시로의 여행에 딸도 함께여서 나의 불안도가 높았던 것 같다. 불안한만큼 통제 안되는 딸을 통제하려는 나의 욕심이 심해졌고 그만큼 마음의 여유는 사라졌다.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왔더라면 좋았으련만…
* 글 제목 이미지: 롯폰기 츠타야 서점으로 가는 길에 발견한 도쿄타워 끄트머리. 우연찮게 롯폰기 츠타야 서점 일정이 도쿄 여행 마지막날 마지막 일정이 되었다. 도쿄타워도 가고 싶었으나 체력적 한계로 타워 끄트머리로 만족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