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음, 살기 위함, 살아 돌아감을 위해
'여행은 ~이다'로 정의한 문장들은 여행 에세이 수만큼이나 셀 수 없이 많다. 그중 김영하 작가는 책《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은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 소설과 닮았다.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다가,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 독자와 여행자 모두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장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할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로 정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서울로의 여행은 사뭇 달랐다.
임시공휴일이었던 10월 1일 국군의 날과 그다음 날 이틀 동안 남편과 첫째 딸, 그리고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둘째 딸과 함께 서울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유독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고, 가족과 무사안일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목표였던, 떠나고 싶어 갔으면서 마치 징병제 하에 있는 군인의 시간 같았다.
집에서 나서기 전부터 걱정부터 앞섰기 때문이다. 10월 1일을 기점으로 급격한 기온 저하로 두 돌을 갓 지난 딸이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18개월 즈음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흐르는 콧물 덕에 감기약을 달고 살고 있는 딸이다. 쉬지 않고 먹는 약이 몸에 해롭진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면서도 먹이지 않을 수 없었기에 딸의 코에서 나오는 소량의 액체만 보여도 '또 시작이다'라는 노이로제가 뇌 속 깊숙한 곳에서 불쑥불쑥 발동했다.
아무리 딸에게 겹겹이 입혀도 추워 보이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아무리 서울이 대구보다 추워도 딸이 너무 더워 보인다며 강경 입장을 취했다. 남편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조금 가벼운 옷으로 딸에게 입힌 후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전과는 달리 약간은 차가운 공기에 딸이 걱정스러웠지만 9월 말에도 폭염이 이어지던 대구였기에 그리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로 느껴지진 않았다. 안심이었다.
문제는 서울 도착 후.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대구와는 차원이 다른 매섭고 차가운 공기에 남편과 나는 챙겨 온 외투를 꺼내 입었다. 딸은 대구에서 온 옷차림 그대로. 이때가 걱정, 근심의 시작점이었고, 여행이 생존의 문제로 변모했다. 딸아 제발 감기 걸리지 말자.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고 어쩔 수 없을 땐 내 재킷이라도 벗어주겠다고 생각했다.
미리 예약한 노랑풍선시티버스를 타기 위해 티켓 발권을 하러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오후 1시 10분에 출발 예정이었기에 약 10분 정도 전에 도착한 우리는 발권 후 버스 2층 야외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설상가상으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방울, 두 방울 정도의 근근이 내리는 비였지만 추운 날씨에 비까지 맞고 있는 딸을 보고 있자니 애처로워 몸 둘 바를 몰랐다. 약해진 나의 마음을 딸이 이용한 것이 아니겠지만 그 틈을 타 "엄마 사탕 줘"하는 딸. 단 것을 자주 찾는 딸이라 개수에 제한을 두는 나는 그 순간만큼은 무장해제였다.
딸은 행복하게 사탕을 빨며 꼬무룩 잠이 들었다. 투어버스는 온전히 딸을 위해 서울의 이곳저곳을 보여주기 위한 계획이었건만. 출발과 동시에 잠든 딸. 할 수 없이 딸의 안전벨트를 풀고 딸을 내 품에 꼭 안을 수밖에 없었다. 달리는 버스의 2층 야외석에서 더 세차게 불 수밖에 없는 차가운 바람과 언뜻언뜻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곤히 잠든 딸의 얼굴을 몇 번이고 다시 봤다. 춥진 않을까, 자세가 불편하진 않을까. 더 꼭 안아주기도 하고 내 자세를 바꿔갔다.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 딸의 수면 시간. 굳이 버스를 더 타고 있을 필요가 없어져 남편과 나는 광장시장에 내려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도넛, 커피, 분식 등 다양한 먹거리들이 즐비했고 우리는 식사로 분식을 먹기로 결정했다. 공휴일이다 보니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 속에서도 깨지 않는 딸 덕분에 남편과 나는 비교적 평화롭게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한 명이 딸을 보고 한 명이 식사를 하고 그 후 교대를 한다. 계산을 하고 일어서는 가운데 사장 아주머니께서 아기 키우는 엄마라서 이거 주고 싶다며 앞치마에 먼지를 닦은 과자 간식을 건네주셨다. 흐리고 쓸쓸한 날씨였지만 왠지 모를 따뜻함이 훈훈하게 감싸는 듯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 연희동으로 향했다. 골목 구석구석 다니며 연희동에서 유명한 베이커리, 김밥집, 독립서점, 마켓 등을 들렸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궁뜰어린이공원이었다. 걸으며 샀던 독일빵집 빵 몇 개와 연희김밥 매운 오징어 김밥을 맛봄과 동시에 딸에게 놀이 시간을 주기 위해서. 공휴일이어서인지 많은 부모, 아이들이 그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공원에서 있던 1시간여 시간 동안 나를 가장 많이 지배했던 감정은 딸을 향한 걱정이었다. 딸은 다른 아이들과 인사도 하며 아빠와 미끄럼틀도 타고 모래 놀이도 하며 즐거워했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춥진 않을까, 그냥 빨리 가자고 할까, 그래도 저리 즐겁게 노는데... 하면서 눈으로 보이는 장면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들로 복잡했다.
드디어 노심초사하는 나를 위로해 주듯 숙소로 이동하는 시간이 다가왔고 택시를 타는 것만으로도 위안이었다. 딸이 조금이나마 덜 추울 것 같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여행을 자주 가는 우리가 또 방문하는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고, 마침내 마음이 완전히 놓였다. 하지만 그 뒤 한강을 보러 가기로 했던 계획은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강가에 부는 바람이 산들바람일리 없기에.
대신 김진목삼이라는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 8시경이라 바깥공기도 쌀쌀했다. 노이로제가 또 발동하기 시작했다. 두 돌 딸이 그런 나를 이용하진 않았겠지만 젤리를 달라고 아우성이었고, 평소 단 간식 섭취 횟수를 제한시키는 나는 또 근처 편의점을 들러 그나마 당류가 적은 젤리를 사줄 수밖에 없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딸은 아빠에게 안겨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하며 마음을 표현했다. 평소 아빠 사랑해는 자주 하지 않는 딸인데 그날따라 아빠 사랑해도 자주 하던 딸. 남편은 딸을 안고, 나는 딸의 손을 잡으며,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나누던 그 시간 그 공간.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의 날카로운 차가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서울 날씨 때문에 딸도 엄마, 아빠의 자신을 향한 다정함과 애틋함을 더 느껴버린 것일까. 대구보다 서울 밤거리에서 더 많은 사랑 표현과 애교를 보였다.
대구보다 4~5도 정도는 낮았던 그날의 서울. 대구도 갑자기 가을 날씨로 접어든 날이라 서울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그날 밤 왜 그렇게 지난 역사를 그리는 영화 속 피난민 가족의 장면이 떠오르던지. 그 정도로 딸의 안위가 걱정되던 여행이었다. 제발 기침, 콧물 대구에 달고 가지 말자고. 엄마가 더 꼭 껴안아주겠다고. 아빠한테 찰딱 붙어있으라고. 잠에서 깰 때면 안 추웠어라고 물으며 꼭 딸의 상태를 체크하던 나였다.
조금은 오버스러울지 몰라도 다정한 사랑으로 갑작스러운 추위를 녹여 감기라는 질병을 물리치고 무사히 우리 집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마음이 가슴속 한가득이었던 이번 서울 여행. 너무 감정이입한 나머지 피난민 가족의 생에 대한 의지, 간절함, 가족 간의 애처로움이 떠올라버렸던 여행. 많은 여행을 다녀봤지만 특히 자녀와 함께 한 이번 여행은 다시 우리 집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로 살아 돌아가자는, 여실하게 생존의 감각을 느낀 여행이었다.
*사진 속엔 우리 가족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지만 그날의 기온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라 첨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