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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Nov 12. 2024

이제 그만 훔쳐보기로 했다.

내 삶을 살기 위한 글쓰기

 새끼손가락 골절을 겪고 할 수 있는 건 정말 얼마 없었다. 자주 읽던 종이책도 손가락에 무리가 돼 휴대폰이나 이북리더기를 통해 전자책밖에 읽을 수 없더라. 약 1년 전부터 구독해지했던 밀리의 서재를 다시 구독했고, 전자도서관을 통해 대출한 책을 읽었다.


 손의 자유를 잃고 나서 가장 아쉬웠던 건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왼쪽 새끼손가락 뼈가 부러져 오른손은 멀쩡했다. 오른손은 멀쩡한데 펜으로 글을 쓰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나의 경우 바스락거리는 종이 위보다 노트북 앞에서, 잉크가 나오는 펜보다 키패드를 두드리는 키보드가 더 맞다. 머릿속 생각의 흐름을 따라잡고 받아 쓸 수 있어서다.


 그렇게 손을 다치고 약 한 달간을 글쓰기보다 독서에 몰두했다. 소설, 시, 에세이, 자기 계발서, 교양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고, 한 권의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이러했다. 내가 쓰고 싶은 책과 비슷한 류의 책, 혹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이미 살고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거나 저자가 쓴 책, 그리고 내가 얻고 싶은 정보를 담고 있는 책.


 읽다가 감명 깊었던 부분, 내 삶에 적용해야 할 부분들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남겨두었다. 그러다 불현듯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책 읽은 이야기 하다가 매일 글쓰기 하겠단 소리가 맥락상 개연성이 참 부족해 보인다 싶다.     


 그 생각의 흐름을 조금 구체적으로 풀어보자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 의견을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그 책을 쓴 저자의 삶이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훔쳐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 작품이든 비문학 작품이든, 어떤 책을 막론하고 읽은 상태에서 그치면 얼마 뒤엔 책에 대한 내용은 기억 속에서 기필코 사라지기 때문에. 모두들 경험해 봐서 알지 않은가.


 반대로 그 책에 대해 나의 생각, 느낌, 내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 부분 등을 담은 글을 쓰면 내 삶을, 내 인생을 살게 된다. 책을 읽고 책장을 덮는 것에 그치면 저자나 작품 속 등장인물의 삶을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에 걸려 구경하는 데 내 시간을 쓰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글을 쓰면 타인의 인생을 향했던 내 시선이 나에게로 옮겨지고, 집중된다. 내 삶을 향하게 된다.


 ‘매일’ 써야겠다는 생각 또한 나를 위한 일이자 내 삶을 온전히 잘 살아보고 싶어서다. 오늘 나는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시간을 보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등에 대해 기록하는 것은 내가 지나온 오늘의 시간을 돌아보고 내일을 계획하는, 즉 과거를 잠시 들여다보고, 미래를 내다보며, 현재를 더욱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작 몇 분의 시간만을 요하는 글쓰기가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위 자기 계발은 부수적인 이점일 뿐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글쓰기에 할애한다면 세상의 잡음과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 바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 시간들이 쌓여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며, 나아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 점점 명징해진다. 내 삶에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손을 다쳐 반강제로 글을 쓸 수 없는 시간 동안 무한히 책을 읽다 이러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후루룩 지나갔다. 가장 중요한 내 인생을 내팽개쳐 둘 수 없다는 결의, 매일 일정 시간을 할애해서 일기든, 서평이든, 어떤 글이든 써야겠다는 조바심이 마음속에서 일었다. 글쓰기는 내 삶 앞에 나를 앉혀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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