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임신한 지 29주쯤, 남편과 함께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넘어져 손으로 무거워진 몸을 지탱하려다 가장 약한 새끼손가락이 부러졌다. 뱃속 아기를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켰다는 죄책감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정말 큰일이 아니면 병원에 가지 않는 편인데 둘째를 위해서 집 근처 정형외과를 바로 방문했고, 산부인과 담당의와 연락을 했다. 결론은 새끼손가락이 골절되었고, 수술까지 해야 했다.
수술 후 바로 손가락 보호대를 착용했다. 약 2-3개월간 계속 착용해야 하고, 혹시 모를 염증 방지를 위해 수술한 부위에 물이 닿아서도 안된단다. 그렇게 내 왼 손도, 마음도 답답한 2주가 흘렀고, 처음으로 보호대를 벗고 재활 운동을 진행했다. 수술한 손가락은 당연하거니와 함께 보호대 속에 있었던 약지가 내 힘으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담당 치료사의 도움으로 손가락을 구부렸고 갑작스러운 통증에 몸서리를 쳤다.
2주라는 시간이 그토록 긴 시간이란 말인가. 당연한 줄 알았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고 안간힘을 써야 간신히 조금 구부릴 수 있었다. 물리 치료사는 매일 조금씩 주먹을 쥐듯 손가락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당연한 손가락의 움직임은 애초에 없었다. 한 인간이 태어나 신생아 때부터 셀 수 없이 오므리고 조무려 손가락의 소근육과 이어진 대근육을 발달시켜 온 것이다.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아쉽게도 그 노력의 과정을 하얗게 잊고 그 결과를 당연시 여기기 쉽다. 그러다 단 몇 주 만에 태초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손가락을 수차례 오므리고 조므려야 하는.
어쩌면 모든 인간의 행동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관까지도 매일 조금씩 쌓여서 변화해 가는 여정 위에 있으며 그 결과치일지도 모른다. 그저 운이 좋아 성공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그 운을 만들어내기 위해 과거부터 쌓아온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수영계의 전설 마이클 펠프스는 5년간 크리스마스, 생일, 공휴일 할 것 없이 매일 물속에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물 밖에서의 훈련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20년 넘게 수영을 했는데 침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던 날이 100일 정도 되는데 그런 날이야말로 훈련해야 하는 날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모든 것이 매일 하면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하는 여정에 오르게 된다.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나 매일 하지 않으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그가 수년간 매일 물속에 있었던 이유이지 않을까.
활동성 많은 첫째라 혼자서 육아를 해야 할 때면 다친 손을 핑계로 더 쉬이 친정을 방문한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딸의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마치고 나갈 채비를 하기 위해 친정집 내 방에 들어갔다.
순간 어릴 적부터 읽은 수많은 영문서들, 수험서들, (비)문학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꾸준히 읽어왔던 저 책들이 내 안에 언어의 세계를 조금씩 구축해 주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그러니까 영어교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현재의 나, 틈날 때마다 국문서뿐만 아니라 영어로 쓰인 책 읽기를 서슴지 않는 나는 어릴 적부터 조금씩 현재의 나로 변모하기 위한 선택들과 그것으로 연결된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졌구나라는 생각 말이다.
손가락 운동을 매일 꾸준히 하다 보니 이제야 키보드를 두드려 브런치에 한 편의 글 정도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가슴속에 품고 있는 내가 꿈꾸는 또 다른 내가 떠올랐다. 이 세상에, 타인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고. 그러므로 당연하게 생각했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신생아 때부터 수도 없이 반복했던 오물조물거림이 있었기에 가능하듯 글을 쓰는 내가 아주 당연하게 느껴지도록 글을 쓰는 몸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글을 잘 쓰고 있는 건지, 혹은 좀처럼 글이 나아지고 있지 않는 느낌에 세상의 위대한 작가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고작 나라는 사람이 글을 써도 되겠냐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언젠가 내 속에서 들릴지라도 머뭇거림 없이 매일 쓰고 또 쓸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손가락이 굳어 뼈저린 고통과 함께 다시 그 오물조림을 반복하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