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길
남편과 빵을 사러 파리바게뜨를 들렀다. 나오는 길에 출입문 옆 찹쌀떡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코 앞에 와있다는 것을. 수능 이틀 전이었다.
남편은 내가 다 떨리네 하며 만 40세임에도 여전히 수능이 뿜어내는 긴장감이 그리 작지 않음을 체감했다. 옆에 있던 나까지도 덩달아 고3 수험생으로 돌아가는 듯, 그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다 정말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전날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성적은 최상위권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전교 1등은 아니었지만 상위권에 속했다. 부모님 주위 동료분들께서도 익히 나의 성적을 알고 계셨던 바, 수능 응원 선물이 엄청나게 들어왔었다. 초콜릿, 사탕, 찹쌀떡, 용돈 등 받을 수 있는 수능 응원 선물은 다 받은 듯했고 우리 집 식탁을 다 덮을 정도에 쌓여있는 높이마저 어마어마했다. 부모님을 통해 시험 잘 치르라는 응원의 전화까지 수 차례 왔었다.
수많은 응원 덕분에 몸이 붕 뜬 느낌이었지만 좋지만은 않았다. 내일이면 다 끝난다는 후련함도 있었지만 불안과 긴장, 혹시나 망치면 어떡하지 하며 드는 부정적인 생각도 아얘 떨칠 수는 없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기 위해 일찍 침대에 들어갔지만 두근대는 심장 때문인지 개운하게 잘 수 없었던 밤이었다.
청소년 시절을 돌이켜 보면, 꽤 자신감 넘치고 긍정적인 성향이었다. 들인 노력만큼 성적이 보답해 주는 듯했고, 그에 힘입어 노력만 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낭만과 낙관주의자였다.
수능도 당연히 잘 치를 수 있을 거라는 자기 확신에 차있었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인생에서 가장 긴장되던 날,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던 것인지 많은 이들의 기대와 응원, 특히 가족들의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높은 기대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결과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그렇다고 남 탓, 환경 탓으로 돌리고 싶진 않다. 그때도, 지금도.
내 인생에 있어 주위의 시선, 평가는 내 삶을 동심원으로 표현했을 때 저 밖에 그려질 아주 부차적인 것이다. 나의 삶은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영향력이 커 보이는 부모님조차 그렇게 보이는 것뿐, 결국 내가 살아내야 한다. 현재 내 삶이 장밋빛이든 지질하든 내가 내 삶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야 한다.
그러므로 나의 목표가 무엇인지, 나아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싶은지,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그리며, 인생의 목표가 아닌 그 여정 중 하나일 뿐인 수능이라는 시험에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니까 시험지 위 문제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나에게 집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수능을 치르는 모든 수험생들이 그렇게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길. 어떤 부정적인 생각도, 불필요한 걱정과 불안, 과도한 긴장도 떨쳐버리고 모든 신경을 문제 뒤에 있는 자신의 삶에 집중시킬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