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ing Choenghee Nov 18. 2024

이렇게 또 하나의 고통에 적응해 간다.

그 고통이 지나가고 있다.

 작년 이맘때 딸이 폐렴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돌 지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에 입원까지 해야 하는 병이라니. 엄마가 게으른 탓에 집안을 쾌적한 환경으로 만들어주지 못해서일까. 어린이집을 보내면 아프기 시작한다더니 등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며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남편이 말을 하거나 툭 건드리면 눈물부터 났다.


 현재 27개월인 딸은 최근 며칠간 재채기를 할 때마다 뭉텅이로 나오는 누런 코, 마른 재채기에서 가래기침으로 바뀌더니, 이내 구역질할 정도로 토해내던 기침을 반복했다. 아니나 다를까 폐렴이었다. 담당 의사는 입원을 권고했다.


 하지만 작년과 달리 올해는 처음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더라. 폐렴이라는 진단을 듣는 순간을 처음이라 정하겠다. 작년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말 그대로 내 가슴속의 하늘은 무너져내리는 듯했다. 감기도 아니고 폐렴이라니. 그것도 작고 연약한 돌 갓 지난 딸에게... 올해는 아 그 폐렴. 또 입원해야 할 수도 있겠네 생각하며 내가 먼저 담당의에게 물었다. 혹시 입원해야 할까요 라고.


 입원 수속 전후로 딸에게 큰 관문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피검사, 둘은 링거를 투여하기 위해 주삿바늘을 삽입해야 하는 것이다. 신생아 때부터 수차례 예방주사를 맞은 경험이 있긴 하지만 돌 아기들에게는 쉬이 적응할 수 없는 주삿바늘. 작년에 이 두 관문 앞에서 딸은 자지러지게 울며 엄마를 찾고 매달렸다. 그 모습에 나도 함께 눈물을 훔쳤다. 올해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엄마 주사 하나도 안 무서워 했다.


 3박 4일 기간 동안의 병원 생활 중에도 딸이 1년 동안 성장한 만큼 변화들이 있었다. 병원 밥도 잘 안 먹던 딸이 이번엔 너무나 잘 먹어 엄마를 안심시켜 주었고, 네뷸라이저만 대면 울어댔지만 올해는 처방된 양을 거의 다 사용했다. 병원에서 양치질도 했고 변기에 응가도 했다. 소아과병동을 돌아다니며 벽에 그려진 동물 그림 맞추기도 하고 창가로 가 하늘도 구경할 만큼 여유로웠다. 구름 많네. 구름이 솜사탕 같다. 이제 깜깜해. 잘 시간이야. 하면서.


 딸이 27개월이 된 만큼 나도 엄마로서 두 돌치 정도는 큰 것 같다. 작년엔 아픈 딸을 옆에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노심초사, 조바심, 걱정, 불안을 등 뒤로 켜켜이 쌓아 전전긍긍하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병실 안에서 자는 딸을 두고 키보드로 글을 쓰고 있다. 작년엔 죄책감과 눈물로 범벅된 엄마의 얼굴이었다면 올해는 딸이 그 고통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응원하는 엄마의 지분이 더 커졌다. 내일이면 퇴원 수속을 밟는다. 딸도 나도 성장한 몸과 마음으로.


 한편, 나는 지난 10월 새끼손가락 골절 사고 이후, 수술을 거쳐 꾸준히 손가락 운동을 하며 재활해나가고 있다. 한 달 정도 꾸준히 손가락 운동을 하다 보니 운동 시 느끼는 고통도 차츰 줄어가고 손가락의 운동성도 많이 회복되었다. 수술 후 첫 운동을 할 때를 떠올리면 인상부터 찡그려지며 신음하지 않을 수 없다.


 살다 보면 좋은 일만 행복한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힘든 일, 고통이 수반되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 처음 맞닥뜨렸을 땐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기 바쁘다. 모든 순간이 고통스럽고 자포자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통의 여정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며 생활하다 보면 점차 익숙해지고 고통마저 옅어져 간다. 더욱이 그 시간은 나도 모르게 성장하는 순간들일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안에 작은 괴물이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