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시봄제

by 이민경

4월.

매년 4월 자연은 우리에게 커다란 생명의 에너지를 여지없이 선물해준다.

벚꽃, 움트는 새잎의 청초한 초록빛,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 같은 산의 푸르름, 진분홍, 노랑, 흐드러지는 꽃잎들의 합창들..

봄은 온 세상이 생명의 연두빛과 합창으로 눈이 부시고 소리없이 소란스럽다.


간디학교의 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시봄제가 떠오른다.

봄을 시작하는 의식이다.

원래는 농사를 시작하는 의식으로서 세상 만물이 연결되어 있고 하나라는 것, 자연의 일부인 우리가 흙과 물과 바람과 해의 힘을 빌어 짓는 농사가 잘 되도록 기원하는 시농제였다고 하는데 나는 시봄제를 겪었다.


봄을 맞이하는 의식.

자연과 나와 모든 생명과 일어나는 일들이 이어져 있음을 일상 속에서 알고 살아가는 시간이다. 간디학교는 매일 오전 노작시간이 주어져있다. 수업 이름은 간디의 뜰. 학기 초에 간디의 뜰 가족이 만들어진다. 각 텃밭마다 간뜰가족이 생기고 각자 원하는 작물을 심고 키운다.

시봄제 땐 각 가족마다 봄에 바치는 상징물들을 준비하고 봄과 자연의 이치, 생명에 대한 자작시들을 낭송한다. 시 안에 흙, 바람, 물, 햇빛의 이야기가 녹아들어가야 한다. 아이들은 기상천외한 멋진 시, 재밌는 시들을 만들어 온다. 전교생이 우리학교 가장 어르신인 느티나무 앞에 모여 그런 시간을 갖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느티나무 끝까지 물을 끌어올리느라 불어대는 꽃샘바람과 따사로운 햇빛, 아이들의 와글거리는 소리, 그리고 생태평화운동의 노래에 맞춰 함께 하는 춤사위가 몸과 마음을 싱그럽게 했다.

그렇게 석동리에도, 우리 마음에도 봄이 스며든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불러모아 함께 흙을 고르고 모종을 심고 가꾸는 일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간디의 노작시간은 때론 우리에게 자연과 더불어 살고 성장해가는 지금을 알아차리게 한다. 아침마다 흙냄새를 맡으며 밭을 돌보고 돋아나는 싹을 가만히 관찰하고 물을 주며 하루하루 생명이 자라나는 신비를 목격한다. 유난히 기름진 밭이라 무얼 심어도 쑥쑥 자라나주는 땅이, 봄에도 따갑도록 내리쬐는 햇살이 감사할 뿐이다. 그 밭에서는 심지어 지렁이도 참 튼실하니 굵고 건강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농사 초보이다보니 함께 공부하고 배워가며 우리 밭은 토마토와 바질농사를 지었다. 누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배우고 다같이 노동했다. 그래서 아침 시간은 졸리거나 무력할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쌀한톨의 무게

홍순관


쌀 한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버려진 쌀 한 톨 우주의 무게를

쌀 한 톨의 무게를 재어본다

세상의 노래가 그 안에 울리네

쌀 한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쌀 한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

쌀 한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쌀 한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쌀 한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

쌀 한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쌀 한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쌀 한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

쌀 한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쌀 한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우주의 무게


간디학교에서 제일 좋았던 수업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것저것 생각나는 게 많겠지만 나는 매년 봄을 여는 시봄제와 함께 불렀던 쌀한톨의 무게, 아이들과 아침마다 티격대며 가꾸던 우리들의 간뜰, 봄의 모내기, 가을의 추수, 초겨울의 김장, 그리고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도록 당번 아이들에게 매섭게 훈계받으며 먹었던 잔반없는 식사문화가 간디철학에 충실한 수업의 시작이자 끝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정한 생태교육은 말이나 멋드러진 글, 또는 잘 조직된 수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체화되어 삶 속에 물들어 있는가, 삶으로 그것을 살아내는가가 핵심이 아닐까.

간디교사의 삶은 그래서 참 행복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함께 하는 연결감. 모두 이어져 순환된다는 삶의 진리를 가슴으로 깨우쳐가는 과정, 고생스럽지만 책을 통해 머리로 들어온 지식을 가슴으로 느끼고 몸으로 살아내는 그 통합의 경험을 간디학교에서 나는 운좋게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봄이 오면 나는 간디의 뜰에 자라난 여린 쑥들을 떠올린다. 아이들과 쑥 뜯어서 쑥전을 해먹어야하는데..

쑥전을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아이들의 헤벌쭉한 얼굴이 그립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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