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한 번 해 봐. Try try~

미완의 학교, 성장형 교육현장

by 이민경

2021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살던 그 시절, 나는 금산간디학교에 오래된 신입(좋은 말로 경력교사)으로 공동체의 식구가 되었다. 물론 레드스쿨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간디학교는 석동리 보석사 옆에 자리하고 있었고 나는 종종 학교일이 감당할 수 없는 버거움으로 다가올 때 보석사 은행나무를 알현하곤 했다. 내겐 낯익지만 또 무척 낯선 학교가 바로 간디학교였다.

앞으로의 10년을 그리며 첫 출근하던 날이 지금도 선연히 떠오른다. 초록색 브로콜리 같은 낡은 시골학교 건물, 촌스럽지만 뭔가 미소를 띄게 하는 외관이었다. 건물 앞에 가장 잘 보이는 것은 아이들이 가꾸고 있는 텃밭이었다. 옹기 종기 여러개의 밭이 긴 겨울의 혹한을 견뎌내며 아이들을, 봄날의 생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교문 없는 학교의 교문자리엔 그 세월을 다 보았다는 듯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아래는 9기 졸업생들이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다는 고래무대가 보인다. 많이 낡았다.

학교로 들어오는 현관은 삐그덕거리는 나무 계단과 데크를 올라가 아주 작은 문, 그리고 바로 복도로 이어지는 신기한 구조였다. 내부는 어둡고 추운 편이었다. 건물의 정면은 60명의 아이들의 신발장으로 채워져 있었고 전면의 첫 공간은 도서관이었는데 음침했다. 고서가 쌓인 창고같은 분위기랄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라기보다 책을 쌓아놓는 공간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책이라는 것을 아끼고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만난 간디학교의 도서관은 버려진 책들을 감금해놓은 무관심의 공간이었다.


활동분기로 바쁜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그 쓸쓸하고 어두운, 아무도 머물지 않는 그 도서관이 너무나 마음이 쓰였다. 학습분기가 시작되기 전 수업개설을 의논하다가 나는 이런 마음을 교사들에게 털어놓았고 동료교사들의 "쌤이 한번 해봐요. 하고 싶은대로!"라는 말에 불쑥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프로젝트 수업명을 '책먹는 카페'라 하고 도서관이 아니라 아이들이 책과 함께 놀고 쉬고 은신할 수 있는 북카페로 공간을 살려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새로온 선생님이 뭔가 고생 엄청 할 것 같은 프로젝트의 깃발을 들자 계산빠른 아이들은 망설였다. 결국 도서부 친구들을 설득하고 그외 지원자까지 추가하여 프로젝트 팀원이 만들어졌다.

공간 정리의 기본은 버리기이다. 아이들과 십여년 쌓인 먼지를 흡입하며 오래된 책, 필요없는 책을 꺼내고 옮기고 내보냈다. 내부의 물건들과 도서관 전면을 가리고 있는 신발장 위치 이동에 관해서도 교사회 뿐 아니라 식솔회에서 열띤 논의 후 통과가 된 후에야 다음 상황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물건을 다 치우고 보니 공간은 너무나 더러웠다. 우리는 하루종일 바닥부터 벽, 유리, 창틀까지 쓸고 닦고 또 닦고 닦았다. 아이들은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건지 노동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초반의 시간들이 겨우겨우 지나가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공간을 디자인하려면 그 전에 하얗고 깨끗한 캔버스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과정을 묵묵히 해나갔던 것이다.

책먹는 카페 아이들과의 아이디어 회의는 치열했다. 북카페 내부공간의 구조, 책장의 위치, 내부 벽화의 컨셉, 그리고 외부 벽화와 조명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입사 첫 해, 첫 학기에 내가 이걸 어떻게 해냈지 하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때 나는 너무나 신이 나 있었다. 완성체 건물인 레드스쿨에서는 절대 해볼 수 없는 시도였다. 레드스쿨에도 마음에 안들거나 아이들의 손길을 덧대고 싶은 공간이 참으로 많았지만 대한민국 건축물상을 수상한 아름다운 건물에는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다. 못을 박거나 무언가를 붙이는 일 하나까지 규제를 당했다. 그런 과거를 가진 나에게 간디학교의 어수선하고 관리가 부족했던 공간들은 기회의 땅, 예술적 감성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캔버스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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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한 번 그려본 적이 없던 우리들은 우리 마음에 드는 북카페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 학기를 꼬박 걸려서 그곳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책을 피해 다니는 통로정도로 여겨졌던 그곳을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이고, 수다떨고 싶어지는 다정한 공간으로 바꿔낸 것이다. 무모해보일 수도 있는 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나는 이후 공간크리에이터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인기높은 수업을 매학기 개설할 수 있었다. 한번 해보니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겨 처음 해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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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애써 만들고 아이들에게 사랑받았던 북카페가 지금은 없다.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오시면서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전문가의 손길로 만들어진 멋진 북카페가 되었다. 필리핀 이동학습을 다녀와보니 사라져버린 나의 북카페를 속으로 많이 아파하긴 했지만 이후 분위기있고 세련된 북카페를 나도 즐겼다. 책이 보이지 않는 북카페라는 한계를 갖고 있긴 하지만.. 우리들의 다정한 북카페는 눈으로부터는 사라졌지만 나처럼 그 시절 함께 그곳을 누렸던 아이들, 차 한잔 나누었던 친구들, 옹기종기 책수업을 했던 친구들의 기억속엔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간디학교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부족한 부분을 서슴없이 채워나가고 새롭게 도전할 수가 있다. 그 도전을 통해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도 자란다. 40대 후반인 나도 그 성장형 교육현장에서 피,땀,눈물을 수도 없이 흘리며 사랑했고 도전했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했다.


최근에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 있다. 사람이 참 여유가 있어 보인다는 말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물질적으로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소박한 소비를 하며 내세울 게 없는 삶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간디학교의 건물이 그렇게 어수선하고 촌스러웠던 것은 교육과정과 아이들을 향해 온통 힘을 쏟느라 거기까지 시선이 닿지 못했던 이유라는 걸. 교사들은 보여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정성을 다하고 사심없이 힘을 기울였다는 걸, 학교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속 변화하며 실천해나가고 있는 성장형 교육현장이 그곳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사실 '거기서 배운 게 별로 없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내게 간디학교의 3년반은 서서히 그 삶의 가치들을 스며들게 했던 것 같다. 참 그립고 고마운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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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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