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발성을 꿈꾸며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2년 차에 나는 새로운 학교로 삶의 축을 옮기게 되었다 .사실 늘 동경하던 학교였지만 자발적 가난이라는 단어가 발목을 붙들어 감히 엄두내지 못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나는 간디학교에서 조금 부족하고 불편한 삶이 오히려 가볍고 진하게 살 수 있는 지혜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작고 소박한 것들에 감사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검소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배웠다. 그리고 가진 게 없기에 더 자유롭게 마음껏 연결되고 확장시키는 멋진 경험들을 그곳에서 해냈다.
금산 간디학교는 중학교, 고등학교 합해 100명 남짓의 학생들과 20명 남짓의 교사들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사실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하나의 공동체 학교인 줄 알고 있었으나 학교 내부로 들어가보니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각각의 조직이었다. 나는 어쩌다보니 운명처럼 금산간디중학교로 가게 되었고 주로 중3과 고등 중심으로 만나오던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의 장이 펼쳐진 것이기도 했다. 사실 처음엔 아이들의 텐션과 하루종일 돌봄과 교육의 경계선을 오가며 얼마나 에너지가 소모되었는지 모른다. 하루종일을 아이들 속에 뒹굴다 집에 오면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했다.
하지만 간디학교는 정말 사랑과 자발성의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해맑고 시간이 여유로왔다. 물론 그 여유로운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축구를 하거나 멍때리는 아이들, 뭔가 재밌는 장난을 치고자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꽉 짜여진 시간표에 시키는대로 움직여야만 했던 아이들에게 그런 시간은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시키는 대로의 일과가 아닌 자신의 시간을 자기 스스로 규칙을 세워 만들어가는 연습을 한다. 처음엔 어설프고 말도 안되는 구성의 시간표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 사이 타율에 젖어 있던 아이들은 선택의 고통(?) 속에 주체적 삶, 자율적인 삶을 몸으로 배워가게 된다.
학교의 모든 공간과 일들은 학생, 교사, 학부모 3주체가 함께 만들어간다. 아주 다양한 시각과 경험, 의견들이 모여야 하기에 공론화와 합의의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 효율을 중요시 여기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이고 지지부진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간디타임이라는 게 있다. 약속시간보다 늘 5분, 10분 늦게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엄수를 굉장히 중요시 여기고 시스템을 중요시 여기던 레드스쿨 경력 11년의 나는 이 느긋한 간디문화가 처음엔 불평과 불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점점 나도 그 문화에 흡수되었다. 물론 정확한 시간에 약속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단지, 계획한 시간에 딱딱 그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강박 또는 압박, 긴장감과 나의 조급함을 간디학교에서는 내려놓고 조금더 깊은 숨을 쉬고 느긋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사람으로 나를 바꾸어갈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느슨하고 열려있는 구조의 이 새로운 학교는 나를 참 가슴뛰게 하였다. 창립 10년차를 넘어가던 레드스쿨은 어느새 완전하게 아름다운 건축물, 꽉 짜여진 커리큘럼, 잘 만들어진 시스템과 매뉴얼로 굴러가고 있었기에 누가 와도 비슷하게 굴릴 수는 있는 학교가 되었다. 물론 겉모습에 있어서는 말이다. 아주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외양과 형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교육이라는 것은 틀거리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교사가 어떤 교육철학으로 그 시스템을 움직여 가느냐가 교육의 질과 방향을 규정하게 된다. 결국은 교사인 것이다. 간디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느슨하고 뭐든지 시도해볼 수 있는 열린 구조의 학교였기에 교사가 더욱더 중요했다. 심지어 금산간디중학교는 두 사람의 담임이 20여명의 아이들과 3년간 함께 살아야 하기에 더욱더 그러했다.
내가 경험한 첫 해의 간디학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은 학교, 하고 싶은 수업이 자꾸만자꾸만 생기는 교사들의 천국같았다. 물론 몸은 피곤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낼 겨를은 없었지만 행복했다. 내가 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게 행복했다. 간디학교는 아이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시간과 공간을 열어주었다. 뭐든지 해보라고 했다. 할 수 있다고 했고 조금 부족해도 기다려주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장만큼이나 초보교사들이 1년, 2년 지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나는 간디학교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워낙 성격이 급한 데다 일은 깔끔하고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긴장하고 실행력은 엄청난 성향인 나에게 간디학교는 ‘조금 느려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가 기다려줄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축제나 여러 행사에서도 완벽히 준비되지 않아서 주저하거나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 질책하지 않고 그 사람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느긋하게 딴일을 하며 기다려주었다. 우리반 한 학생이 축제 진행자였는데 대본을 더듬더듬 읽으며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속이 탔다. 하지만 다들 그러려니 하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면서 그 아이의 진행실력은 부쩍 늘었다. 기다림의 결과였다. 만일 그 상황에서 그 실수에 모두 집중하고 뭔가 더 잘 하라고 재촉했더라면 그 친구는 그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했을 수 있다. 그 날 축제 시간은 조금 늘어지긴 했지만 나는 한 사람이 성장하는 데에 무엇이 필요한지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실수할 수도 있지. 괜찮으니까 천천히 마음을 잡고 다시 해봐.‘ 그 곳에 있던 청중들의 무언의 메세지가 그 친구에게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이것은 간디학교가 내 몸과 마음에 심어준 가장 중요한 교사로서의 지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