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흥망성쇠
14편의 글을 쓰는 동안 가슴에 많은 소회가 들고 났다. 나를 다시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게 해주었고 교사로 성장하게 해준 첫 사랑 레드스쿨과 진짜 이별을 해야할 시간이 다가온 것만 같다. 나의 30대와 40대를 함께 버무려버린 그 12년의 시간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땐 그러할 때였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레드스쿨을 떠나며 나는 충분히 사랑했기에 미련이 없었다. 단지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아꼈던 레드스쿨이 이제는 내 생각 밖의 어떤 학교가 되어버리겠구나 하는 슬픔만이 남아있었다. 정말 많이 사랑했고 사랑을 받았고 미움도 받았다. 정말 많이 존경받고 또 오해받았다. 하지만 다 괜찮다.
학교를 나와서 다시 학교를 바라보니 주어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각자의 역량껏 최선으로 살고 있었구나 알게 되었다. 그들에겐 그것이 최선이었구나 받아들였다. 그리고 달라진 흐름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많이 믿었고 아꼈던 동료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금산으로 내려오기 전의 나와는 너무나 달라진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가진 내가 있었다.
내가 아는 한 학교들의 흥망성쇠는 모두 비슷하다. 학교가 흥할 때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소통이 잘 되고 서로에게 협조적이고 열려있을 때이다. 특히 교사들이 배움에 열려있고 새로운 도전에 긍정적일 때, 그런 시도들이 서로를 독려하고 성장으로 나아갈 때 학교는 더불어 성장한다. 반대로 학교가 기울어지는 순간 또한 마찬가지다. 조직이 경직되고 시스템에 갇혀 과거를 답습하고 있을 때, 교사공동체가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고 안정적인 그 상태를 고수하고자 할 때, 문제를 발굴하지 않고 그것을 덮고 무사한 학교생활을 하고자 할 때, 학교는 시들어 간다.
교감 7년을 하고 다시 평교사로 돌아갔을 때, 나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새로 교감을 맡은 후배교사는 평교사로 자리잡고 앉은 나를 부담스럽고 어려운 시어머니처럼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교감 사임 후 2년을 나는 거의 교무실이 아닌 도서관을 지키며 오로지 아이들 속에서 살았다. 회의 때도 정말 해야할 말 이외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100명도 안되는 작은 학교, 고작 10명 밖에 안되는 교사공동체에서도 이런 조직서열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어려운데 공교육에서는 오죽하랴 하는 생각이 그때서야 들었다.
가끔 생각해 보곤 하는 것은, 내가 그때 교감에서 평교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 설립자가 원하던대로 교장을 맡았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물론 설립자와 무척 갈등을 겪어야 했겠지만(나는 설립자와 교육철학에 있어 무척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레드스쿨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고인물이 되어가던 속이 늙어버린 청년교사들을 조금더 환기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아주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 그리 되고 더 큰 리더십으로 나도 성장했을 수 있다. 또는 그 과정에서 나는 완전히 부서져 금산을 떠났을 수도 있다.
레드스쿨의 다음 스텝으로 금산간디학교를 선택한 것은 내게 축복과도 같았다. 늘 동경하고 꿈꾸었던, 만들고 싶었던 학교와 교육과정을 그곳에서는 원없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간디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나는 알게 되었다. 레드스쿨이 있었기에 나는 교사로서의 역량을 키우고, 풍부한 경험을 쌓고, 아이들에게 줄 것이 많은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제법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줄 아는 교사가 되었다는 것을.. 그래서 내 인생에서 아리도록 사랑했던 레드스쿨에게 작별인사를 고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다.
이제 레드스쿨은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16년 전 처음 금산에 발을 들이며 나자신과 했던 다짐, 아이들과 했던 꿈이야기는 평생에 걸쳐 이어가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 좋은 사람으로 우리 자신을 성장시키기로, 그리고 우리 하나하나 꽃피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기로 한 것. 나의 걸음은 여전히 꿈꾸고 그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정말 고마웠고 미안했고 사랑했다. 레드스쿨,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나의 작은 친구들..
이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