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 배워야 사는 사람들

by 이민경

교사는 성장을 목격하며 사는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종잡을 수 없이 시시때때로 변하기도 하지만 쉴새없이 성장을 위해 달려간다. 그 과정이 온화하든, 거침없든, 정체되어 보이든, 치열하든 어쨌든 지나고 보면 아이들은 불쑥 자라있다.

나는 학원생활과 대안교육 현장에서의 시간을 통틀어 24년간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다. 아이들은 단 하루도 멈추어 있거나 딱딱하게 굳어있지 않아서 나는 그 생활이 지루할 틈이 없었고 늘 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든 타인이든 돌보고 키우는 것에 제법 흥미가 있고 재능도 있던 나에게 아이들과의 일상은 적성에 참 잘 맞는 업이기도 했다.

교사로 학교생활을 하다보면 자칫 자기가 만든 작고 완고한 틀에 갇혀 그 안에서만 세상을 보는 낭패를 겪는 사람들을 본다. 이것은 나이가 적거나 나이가 많아서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다. 자신을 벼르며 날카롭게 깨어있으려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여러 학교를 거치면서 알게 되었다. 어느 학교에나 있었다. 성장이 멈추어버린 사람들. 젊었으나 늙은이, 반면 늙었으나 젊은이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태도와 방향성의 문제가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레드스쿨 3년차부터 교감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내 한몸 잘 성장시켜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이 다가 아니라 모든 교사와 학교, 아이들의 성장을 전체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고통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교감 첫 해엔 잠을 편히 자지 못했다. 새벽 5시면 눈을 번쩍 뜨고 혼자 하루일과를 시뮬레이션 하고 챙겨야할 사항, 진행시켜야할 일들, 조율해야할 것들, 아이들 상황 등등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렇게 아침 두 시간을 하루 계획 정리, 기도와 명상, 독서로 촘촘히 채워놓지 않으면 학교생활이 다 흔들려버렸다. 나의 홀리했던 아침 두 시간은 혼란했던 나의 첫 교감생활의 생명줄과도 같았다. 공부하기를 놓지 않고, 고요히 가슴을 데우고 자존감을 채우는 시간이었다. 그 새벽시간에 참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랐다. 그 밑바탕에 모두 사랑이 담겨있었다. 교사들이 행복하고 지혜가 깊고 넓어져야 아이들이 그 크기만큼 자랄 것이라는 믿음때문이었다.


신입교사들은 첫 3년간은 아이들과 다름없이 싱그럽고 서툴지만 아름답게 성장한다. 대안학교라는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을 하면서 서로에게 더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무렁무렁 올라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3년이 넘어가는 시점부터인 것 같다. 그 정도 되면 학교에 대해서도 아이들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안정감이 생기고 안다는 생각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그 때 어떤 사람은 수업에 도움이 되는 낯선 무언가에 도전하거나 학습소모임을 만들어 동료교사들과 우정을 나누며 함께 성장해 나아간다. 하지만 어떤 부류는 학교 안에서 그 구차한 권력으로 아이들 사이에서 군림한다.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대안학교 교사라는 딱지를 자신의 이마에 붙이고 자기 신념을 굳혀간다.

잘 되는 학교들을 보면 교사공동체의 문화가 달랐다. 서로 동료애와 신뢰가 깊었고 함께 배우는 데에 적극적이었다. 레드스쿨도 자발적으로 개인의 저녁시간을 내어 두 세명씩이 뭔가 새로운 걸 배우고 독서모임이 활성화 되었을 때 가장 아이들이 많고 학교 분위기가 활기찼다. 어떤 시도를 할 때도 마음이 잘 통했고 서로의 다양한 의견들이 잘 조율되었다.


교사의 성장은 '모른다'를 인식하는 시점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아이들을 24년 만나왔지만 쉽고 지루했던 한 해를 보낸 적이 없다. 단지 교감생활 5년차가 되자 학교 내부를 챙기고 유지하는 일에는 익숙해졌지만 나는 오히려 매우 암담했다. 이제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고 도전할 에너지나 상상력도 없으며 조언을 받을 선배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교감이 되면서 여러 면에서 고행 속에 많은 성장이 있었지만 학교에 발이 묶여 한발 더 나아갈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나는 학교 담장을 넘어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왜냐하면 나는 그 시절 레드스쿨을 많이 사랑했기에 그 학교의 미래가 나의 성장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창립초기부터 부재 중인 교장을 보좌하는 교감이었기에 실질적 교장의 역할을 도맡아 해야했다. 다른 학교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교사회는 어떠한지, 공동체 문화는 어떤지.. 다양한 학교들의 모습을 보고 교사들과 교류하며 배우고 싶었다. 그러던 중 나는 대한민국에 딱 하나밖에 없는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과를 만나게 되었다.

대만 APDEC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하태욱교수님의 강의는 이제까지 내가 찾던 오아시스같은 말들의 향연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교육, 정리하지 못한 생각들을 교수님은 너무나 명쾌하게 설명하셨다. 그래서 나는 대안교육학 박사과정에 뛰어들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2017년 나의 선택은 정말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막막하고 외로웠던 교감생활에서 다시 선생님들께 배울 수 있는 학생이 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매말랐던 내면에 샘물이 퐁퐁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고민하는 교사들이었기에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도 컸고 서로에게 많은 것들을 배우며 확장될 수 있었다.

대안교육학과 학생이 되면서 나는 레드스쿨에 여러가지 변화의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프로젝트수업이 개설되었고, 학생자치와 민주교육에도 더욱 힘을 기울였다. 꽉 짜여진 수업시간표를 넘어 아이들에게 더 멋지고 아름다운 삶과 사람들을 만나도록 프로젝트 여행도 실행에 옮겼다. 대학원에서 새로 알게 된 것들이나 타 학교의 좋은 프로그램들을 교사회와 공유하며 우리에 맞게 만들어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교사들은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함께 프로젝트수업에 대해 공부를 하기도 했다. 레드스쿨에서 내가 가장 나답게 학교를 꾸려가고 교사로서 살아간 시절을 꼽으라면 나는 대학원에 입학하고 학교를 개혁(?)해 나가던 그 3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런 개혁이 결국 레드스쿨을 떠나게 만드는 발단이 되긴 했지만 후회는 없다.


세 개의 대안학교를 경험하며 세상 어느 학교에나 '그런 사람 꼭 있다'하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것은 삶의 태도와 선택의 문제였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유형도 있을 수 있고, 도전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성장지향형 인간이었기에 아이들과 함께 경험을 쌓으며 매년 새롭게 리뉴얼되는 내가 좋았고 그래서 대안교육의 현장이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안정적이든, 도전적이든 그건 취향일 수 있다. 하지만 교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다 안다'라고 하는 태도이다. 자신의 과목에 대해 조금 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인간의 성장기, 가장 중요한 시점을 함께 하는 교사는 아이들 한명한명에 대해, 또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에 대해 늘 겸손하게 '모른다'의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배움의 자세이고 그런 태도로 아이들을 만날 때 우리는 아이들에게서 상상치 못한 것들까지 배울 수 있다. 결국, 배우려는 열린 사람이 살아있는 삶을 안내하는 지혜로운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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