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몰입을 통해 알게 된 아이들의 힘
flow, 몰입
[어떤 활동에 완전히 집중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움을 느끼는 최적의 정신 상태]
'넉점반'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그 책 속의 아이는 엄마 심부름으로 지금 시간이 몇시인지 알아오기 위해 시계가 있는 집으로 길을 나선다. 넉점반, 넉점반, 까먹을까봐 시간을 입으로 되뇌이며 돌아오는 길엔 순간순간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아이는 집에 들어오며 '엄마, 넉점반'이라고 외친다. 아이에겐 집까지 오는 그 길이 완전한 몰입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우리도 어린 시절, 또는 어른이 된 뒤에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진공상태인 것처럼 무언가에 완전히 집중해 있는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다. 지나고 보면 참 소중하고 행복했던 순간이 바로 그런 몰입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레드스쿨에서는 이런 몰입의 개념을 이용해 영어, 수학, 책읽기에 몰입수업이라 이름을 붙였다. 몰입이라기보다 집중수업이 더 어울리는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집중수업을 통해 몰입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보자는 의도였다.
처음 독서몰입의 시작은 책읽기교사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나는 국어과였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독서교육을 전문적으로 해본적은 없었기에 그저 그 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일반학교에선 생각해보지 못하는 3일 간의 밤낮없는 독서시간, 꿀맛이었다.
독서몰입 2기는 책읽기교사가 학교를 떠나고 나에게 책읽기수업이 맡겨지면서 시작되었다. 나는 이전의 형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새롭게 우리만의 독서몰입을 만들까 고민을 하다 도서문화부 아이들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총 기획과 세부내용을 총괄교사가 다 준비하고 실무적인 일만 학생들이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기획단계부터 함께 회의하고 내용을 채워가는 방법으로 아이들과 함께 준비를 하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콸콸, 아이들도 제안한 것들이 현실화되는 즐거움에 시너지가 올랐다.
솔직히 나는 기계치여서 편집이나 디자인 등에 소질이 없다. 아니 겁을 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나보다 이런 면에서는 훨씬 능력이 뛰어나서 내가 상상하고 제안하는 것들을 그들이 현실화 시켜주었다!! 이런 준비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정서적 평등이었다. 우리 모두가 한 사람으로서 평등하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고 서로 조율해 나가는 것, 그리고 이견이 있을 때는 서로를 설득하거나 이해시키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몰입수업이라는 효능감을 함께 느끼는 것이 정말 중요한 포인트였다.
매번 독서몰입이 끝나고 나면 깊은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꼈다. 나혼자였으면 절대 하지 못했을 그 일을 충분한 준비시간과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협력하여 좋은 작품을 우리는 늘 만들어내었다. 도서문화부 아이들과 나는 독서몰입을 통해 책에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 좋은 책 하나라도 만난다면, 책을 통해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또한 우리 한명한명의 삶이 또한 책과 같음을 알게 된다면, 그저 독서몰입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독서문화는 환경이기도 하다. 몰입 주제에 맞는 책들을 도서관에서 모두 꺼내어 접근성 좋게 세팅하고, 여러가지 이벤트와 영상도 준비했다. 책읽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 중 눈에 닿는 책 한권이라도 끝까지 제대로 읽을 수 있다면!
무엇보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던 코너는 '휴먼라이브러리'였다. 각자가 한 권의 책이 되어 자신이 들려줄 이야기로 책이름을 만든다. 아이들은 그 책제목 목록을 보고 대출신청을 할 수 있다. 사람책을 대출하여 이야기를 듣는 두 아이의 모습은 항상 아름다웠다.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시간,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정성껏 들려주는 시간, 나는 레드스쿨에서 아이들의 눈빛이 가장 고왔던 순간을 꼽으라면 그 순간을 선택할 것이다.
나의 마지막 독서몰입 작품은 2020년 5월 개구리가 한창 울어대던 시절이었다. 이미 함께 만드는 마지막 독서몰입임을 알고 있었기에 나와 도서문화부 아이들은 참으로 애틋했고 진정으로 다해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 독서몰입의 제목은 '사랑을 사랑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배웠다. 그리고 교사가 완벽하게 준비하고 아이들은 소비하거나 안내하는 대로 하는 존재가 아니라 조금 부족한 교사와 아직 조금 어린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수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과 독서몰입의 회차가 늘어날수록 내가 다 알지 않아도 아이들을 의지하고 함께 배워가며 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가 더 단단히 채워졌다. 그리고 더 겸손해졌고 자유로워졌다.
완벽한 교안과 수업준비를 추구할 때는 긴장했고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아이들을 독촉하거나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에서는 물론 분명한 철학과 목적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잘 이해시키고 공유해야할 몫이었지만 그것 외에는 더 좋은 방향으로 아이들이 나아갈 수 있도록 믿고 기다리고 독려하며 아주 너른 울타리를 만들어 주면 되었다. 조금 헤매고 더디더라도 교사가 먼저 나서지않고 격려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해나아가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의 의견에 더 귀기울일 수 있었고 실수해도 다시 해보면 되니 마음이 조급해지지도 않았다. 결국 아이들은 가장 멋진 것들을, 내 생각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내었다. 한 교사의 머리보다 여러 사람들의 머리가 모이면 정말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나는 그때 확실히 배웠다.
독서몰입 마지막날 밤, 그날 온 학교를 휘감으며 귓가를 쟁쟁거리던 개구리소리를 잊지 못한다. 밤 늦게까지 환히 켜진 학교 곳곳에서 아이들은 책을 읽고, 산책을 했다. 나는 내 인생에 다시 그런 시간이 오지는 않을 거 같아 그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으로 열심히 담았다. 그리고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한달 여간 준비한 아름다운 독서몰입의 과정들, 그리고 마지막 2박3일이 가슴에 오래오래 남아있다. 그 눈빛들, 책읽는 예쁜 모습들, 과자를 씹으며 만화책 뒤적이던 장난스런 얼굴들, 해먹에서 책과 함께 누리던 낭만을.. 그때 그 아이들도 기억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