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DEC, IDEC 프로젝트
나의 내면은 언제 어디서 쑥쑥 자랐을까? 교사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장을 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학교가 아닌 어떤 공간에서 불쑥 성장을 이루곤 한다. 가끔은 그럴 때 우리의 의도와 노력에 대해 허탈해지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우리의 어린시절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무한히 반복되는 듯한 학교 안에서의 교육활동과 정서적 교류들이 그런 성장의 기본바탕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반복되는 암기, 답답한 야자(야간 자율학습), 월마다 다가오는 시험과 그 결과로 줄세우는 하루하루, 그리고 그것에 의해 결정될 것만 같은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고등학교 시절과 학교를 생각하면 즉각 떠오르는 것들이다. 나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피난처로 토요일 오전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문화문고에 갔다. 인터넷도 없고, 핸드폰은 더더욱 없고, 오직 라디오에 기대어 상상의 나래를 펴던 낭만의 시절이었다. 마산이라는 작은 도시에 딱 하나밖에 없던 그 서점은 내겐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는 어떤 통로와도 같았다. 그곳에서 잡지를 읽고, 인생책을 만나고, 세상의 여러 삶의 모습을 염탐하면서 나는 무렁무렁 꿈을 키웠다. 토요일 오후 문화문고. 그곳에서 나는 윤동주와 법정스님을 만나고, AJ크로닌을 만나고, 헤르만헤세를 만났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일주일마다 반복되는 시간표, 활동들에 익숙해지면 변화와 성장의 속도가 늦추어진다. 아니 어떨 땐,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같은 실수를 하고, 또 하고.. 그때마다 교사는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하고.. 마음이 급해질 때마다 '안크는 것 같아도 아이들은 콩나물시루 속 콩나물처럼 자란다'는 말을 가슴 속에 콕 심어놓고 되뇌이고 또 되뇌이곤 했다. 물을 주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지만 어느새 콩나물이 자라있는 것처럼 우리의 수고가 헛되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느새 아이들은 불쑥 자라있다.
내가 아이들의 성장을 드라마틱하게 관찰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는 단연코 IDEC프로젝트였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여행하는 건 더 좋아하고,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과 섞이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는지라 이 프로젝트는 아이들 뿐 아니라 교사인 나도 꾸준히 성장시켜준 감사한 기획이었다.
APDEC은 아시아태평양 민주교육 컨퍼런스, IDEC은 세계 민주교육 컨퍼런스를 의미한다. 전 세계 민주교육에 몸담고 있거나 관심있는 학생, 교사, 학부모, 활동가가 함께 모여 교육과 삶을 나누고 문화를 교류하고 표현하는 축제이다. 매년 다른 나라에서 개최하기에 나는 아이들과 한 학기 컨퍼런스 참가를 위해 그 나라를 공부하고 함께 가게 될 국내 학교 학생들과 연합모임을 갖기도 했다. 오픈 스페이스를 준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가장 의미있었던 것은 민주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이들과 깊이 나누고 함께 공부하며 고민했던 시간이었다.
인도 IDEC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아이들은 오픈 스페이스로 영어 학교소개를 준비했다. 그리고 한창 뜨고 있는 K-pop 댄스 수업도 개설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학교소개에 관심을 보였다. 그 중 한 독일인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의 학교소개를 듣고선 이렇게 말했다. "너희 학교는 민주학교가 아니야." 그날 저녁 아이들은 마침모임을 할 때 분통을 터트리며 분개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맞아. 우리 학교는 아직 민주학교라고 할 수 없어. 그래서 너희들과 이곳에 함께 하고 싶었어" 아이들은 기대치 않았던 내 발언에 동공이 확장되고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그 이후로 우리는 민주교육이 무엇인지, 우리 학교는 어떤 부분이 민주적이지 않은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한참을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레드스쿨 민주화 운동이. 아이들은 시선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자신들이 학교의 주인임을 인식하며 능동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의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금산에 돌아와 하나씩 공동체의 문화를 바꾸고 개선하고 용기내어 표현했다. 어찌보면 나는 참 위험한 선생이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했던 네번의 IDEC프로젝트는 아이들의 힘을 온전히 믿게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교사인 내게도 큰 의미와 성장의 기회가 되어주었다.
학교 안에서 매일보는 친구들, 선생님들이 아닌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나고 몸으로 부대끼며 확장되는 기회였다. 대안학교에 다니면서도 늘 성적 걱정을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가장 중요한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아이들도 IDEC에 다녀오고 나면 삶을 보는 기준이 달라졌다. 행복한 삶, 아름다운 삶이 단지 그런 단순한 잣대 하나로 판단될 수 없다는 것,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그저 기어 오르는 애벌레 기둥이 아닌 번데기를 거쳐 나비로 날아올라 참 자유를 누리는 삶이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아차리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학교 담을 넘고 바다를 건너 고생도 많이 했고 시행착오도 겪었다. 하지만 다시 레드스쿨 생활을 떠올리면 이구동성으로 IDEC프로젝트 그때를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한다. 아이들과 더불어 나도 다양한 삶들과 연결되었고 삶이 더 깊고 여유로워졌다. 아이들이 있었기에 함께 공부하며 여행을 준비하고 낭만을 누렸다.
레드스쿨 IDEC프로젝트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간디학교에서는 공정여행을 더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해 과로로 쓰러져 대만IDEC 참가기회는 내게 허락되지 않았지만 아이들과의 준비기간 또한 의미있었고 공정여행수업은 별무리학교에서도 매 쿼터 이어졌다. 길 위에서의 수업은 말로만 하는 교실 안의 수업보다 힘이 세다. 아이들이 길 위에서 걷고 헤매고 실수하고 또 우연히 만나는 그 멋진 기회들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