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 간의 진로 프로젝트 - 성인식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스무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것일까
어느새 50년이라는 세월을 산 나도 내가 진정한 어른인지 자문할 때가 있다. 어른이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며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적 역할을 다 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을 일컫는다. 이 정의에 따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보다는 한 인간의 성숙도에 관련된 부분인 것 같다.
레드스쿨에서 가장 오랜 시간 진행한 개인 프로젝트가 바로 성인식 프로젝트이다. 성인식을 한다고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18개월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세상에는 어떤 멋진 사람들이 삶을 아름답게 가꾸며 살고 있는지 탐험하는 여정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국어교사이지만 종이책보다 더 관심이 있는 분야가 바로 사람이라는 책이었다. 그래서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국어교과가 아닌 진로교과를 맡고 싶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진로코칭부터 상담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또 마음공부를 꾸준히 했다. 그리고 자기탐구수업을 열고 성인식과 연계하여 개인프로젝트로 진행해 나가게 되었다.
16살 쯤 되면 아이들은 전전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자기자신에 대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기고 또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 자기탐구 수업을 하면 아이들의 눈에서 반짝거리는 빛을 보게 된다. 6년제 통합형 학교인 레드스쿨에서는 3학년부터 1년간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어떤 강점이 있고 약점이 있는지, 또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나는 세상과 어떻게 관계하는지 등을 탐색하는 수업이 진행된다. 자기탐구 수업은 몇년을 함께 지낸 친구들이 집단상담처럼 함께 하는 수업이기에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보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4학년이 되면 그런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탐색한다. 세상에는 어떤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고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롤모델도 스스로 섭외해서 인터뷰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다. 막연하게 꿈만 꾸고 있던 여러가지 직업이나 삶에 대해 직접 어른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아이들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기도 하고 실망도 한다. 또 각양각색의 삶을 살고 있는 어른들과의 만남을 통해 문득 내면의 무언가 접촉이 되면 새로운 꿈이 생기기도 한다. 꼭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그 사다리를 경쟁하며 올라가지 않고도 각자 나름의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기도 한다.
롤모델 인터뷰는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고 긴장하는 과정인데 본인이 만나고 싶은 어른을 3명 이상 선택해서 직접 섭외하고 인터뷰 후 보고서까지 제출해야 성인식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아이들에게는 낯선 어른에게 전화를 거는 것 자체가 굉장한 도전이다. 아니 그 낯선 어른의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해 시도하는 것부터가 도전이다. 참 신기한 것은 첫 시작이 힘들지 한번 성공경험을 하고 나면 아이들은 속도와 재미가 붙고 용기가 생긴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매년 그러했다. 자기만의 성장의 과정을 하나씩 밟아가며 불쑥 넓어지고 깊어져가는 생각과 시선을 곁에서 직관할 수 있었다.
10월3일 하늘이 열리는 날, 개천절에 성인식이 진행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성인식을 하지만 성인식 전에 1부 꿈 발표회가 있다. 18개월 간 진행해온 개인프로젝트를 통해 배우고 깨닫게 된 것들, 그리고 하고 싶은 일과 살고 싶은 삶에 대해 부모님과 학교 선후배, 선생님들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시간이다. 15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준비하고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발표자료 준비부터 발표 태도까지 아이들은 참 열심히 연습한다. 우리는 리허설도 여러번 하며 서로 응원하며 그 순간을 함께 준비한다. 인생 한번뿐인 성인식이니까.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간다고 생각한다. 물론 꿈발표회에서 살고 싶은 삶을 선언했다고 해서 꼭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고작 17살이다. 아이들은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시시때때로 변하고 또 확장되어 갈 것이다. 쭉 뻗은 1차선 도로가 아니라 샛길로 빠져 헤매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오솔길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헤매이면서 결국은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그랬듯이..
성인식은 성인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가보겠다고 시작을 선언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했다. 이 날 아이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공동체 앞에서 선서를 한다.
“나는 내 말과 행동, 삶을 책임지는 어른이 됩니다.”
레드스쿨에서 나는 아홉 번의 성인식을 아이들과 함께 치렀다. 아이들이 선서를 할 때마다 나도 미숙했던 20대와 성숙의 길로 내 몫의 짐을 짊어지고 떠난 30대, 대안교육으로의 삶의 여행이 오버랩되곤 했다. 매년 10월이면 나도 아이들과 함께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18개월간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성인식을 진행하며 ‘책임지는 어른’이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이제 그 아름답던 고택에서의 성인식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때의 아이들은 20대, 30대가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나 건강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살고 있는가. 그때의 내 진심과 정성이 아주 가끔이라도 아이들의 삶 속에서 발현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더불어 나도 그때보다는 조금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