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거기 있어 우리는 그곳을 오른다. 가본 사람만 안다 - 명산등반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고3 때 무한 반복으로 많이 들었던 양희은의 ‘한계령’의 첫 소절이다. 특히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높은 곳에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김민기의 목소리든, 양희은의 목소리든 이 부분을 들을 때 울컥하곤 했다.
나는 타고나기를 겨루거나 경쟁하거나 누구보다 높아지거나 하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불편해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유 없이 높은 데로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올라가서 쾌감 내지는 성취감을 느끼며 “야호!”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내려올 것을 왜 저렇게 올라가려고 하는 건지.. 하지만 운명은 나를 그냥두지 않았다. 가보지도 않고서, 해보지도 않고서 싫다고 별로일 거라고 단정하는 나에게 그 산을 오르라 했다.
레드스쿨의 초반 5년 정도는 1년의 학사일정이 말도 안되는 한계령의 연속이었다. 봄 국토순례가 끝나면 축제가 기다리고 있었고, 짧은 여름방학이 끝나면 아이들은 마치 처음 학교에 온 사람들마냥 리셋되어 있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도전의 하루하루였다. 다시 학교생활에 몸에 익숙해질 법 하면 4학년 아이들이 2년간 준비한 성인식을 진행해야 했고 성인식이 끝나면 체육대회, 명산등반, 마라톤이 줄줄이 겨울방학 전까지 줄을 서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학사일정을 매년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 시절엔 그 많은 것들을 어떻게든 해냈다.
개교 2년차에 첫 시작을 한 지리산 등반. 70명의 인원이 2박3일 간 지리산으로 들어가 지리산에서 먹고 자며 결국 천왕봉에 오른다. 나는 등산이란 걸 극도로 싫어하던 사람이라 첫 해의 지리산 등반은 정말 엄청난 긴장과 각오가 필요했다. 마음 속에 딱 하나, 나때문에 아이들의 활동에 문제가 생기면 안된다. 무조건 다치지 않고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등산화, 등산복, 등산용폴, 배낭 등등을 내 돈으로 구입했다. 우리는 깜깜한 새벽에 학교를 출발했는데 버스 타러 가던 길에서 올려봤던 검은 하늘과 무수히 박혀 있던 별, 그리고 떨리던 가슴을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총 세번 지리산을 올랐다. 첫번째 지리산 등반은 무서웠다. 총괄 책임교사는 지리산 등반에 능숙했지만 70명의 인원을 이끌고 등반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전 인원이 첫날 묵을 숙소까지 등반하는 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고 어둠이 내려앉은 후에도 계속 등반을 해야했기에 초긴장 상태였다. 바위 같은 곳에 묶인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할 때도 있었고 발 옆에 낭떠러지가 있는데도 그것조차 잘 볼 수 없을만큼 앞 사람 뒷꿈치만 바라보며 걸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첫 숙소에 도착했을 때 하늘에는 둥근 달이 둥싯 떠있었다. 나는 아이들 몰래 눈물을 훔쳤다. 나도 이랬으니 갓 중학교를 올라온 아이들이 그 일을 해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너무 기특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지리산국립공원은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던 편리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치약대신 소금으로 양치를 하고 물은 식수로만 사용해야했기에 물티슈로 간단히 세수와 몸의 땀을 닦아내는 정도로 최소한만 사용했다. 음식도 먹을만큼만, 대피소의 화장실과 잠자리는 그저 주어진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몇번째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번은 군 부대가 우리와 한 숙소, 같은 층을 쓰는 일이 있었다. 남자분들과 한 층에서 잠을 자게 될 줄이야! 심지어 밤새 코고는 소리에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다. 천왕봉 올라갈 준비를 하는데 군인들이 물건을 두고 출발한 걸 알게 되었다. 그때는 군인이 뭐 물건도 제대로 못챙기나 속으로 생각했지만 아들을 군에 보내고 제대까지 시키고 보니 고작 스무살 남짓 된 앳된 아이들이 완전군장을 하고 지리산을 올랐던 거구나 싶어 이제서야 안스런 마음이 올라온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한 만큼만 헤아리고 이해하고 알게 된다. 만일 내가 지리산을 오르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지리산이 왜 어머니산이라 불리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산을 그리 오르는지, 또 왜 그렇게 지리산을 그리워하는지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지리산 천왕봉을 세번이나 올랐다. 첫 번째 올랐을 때는 남몰래 눈물을 훔쳤지만 두번째 오를 때는 아이들 중간에 섞여 어려움 없이 올랐고, 세번째 오를 때는 아이들을 독려까지하며 가을의 지리산을 마음껏 누리며 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등반 때 천왕봉에서 일출을 맞이하던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 운해와 일출의 풍광. 눈을 감고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온 피부로 느끼던 그 순간, 나는 또 눈물을 훔쳤다.
등산 초보 교사가 이렇게 지리산, 설악산, 계룡산, 덕유산을 오르며 등산에 어울리는 근육이 붙고 체력이 늘고 성장하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매년 달라지는 자신의 몸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 세포분열이 빠르고 성장기였기에 아이들은 더욱더 급격한 변화를 느꼈을 거 같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은 산 오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설악산 등반 때는 5시반에 이른 아침을 국밥으로 먹고 헤드랜턴을 켠채 산 초입에 들어섰는데 세시간 남짓 만에 정상을 찍고 하산해서 점심을 먹었다. 하산길에 아이들이 동네 뒷산을 다녀온 것 같다는 말을 하며 낄낄거리던 소리가 선연하다.
아이들은 유연하고 변화무쌍하며 어떤 순간에도 성장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내가 지리산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아이들도 제각기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평생 무용담처럼 지리산과의 조우를 추억할 것이다. 누군가는 올해 또 그곳을 올랐을지도 모른다. 해보지 않고 섣불리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직접 내 발로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나는 무릎이 고장나 더이상 산을 오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가을이 되면 그시절 서투른 나를 포근히 안아주었던 지리산이 눈물겹도록 그립다. 그리워할 무언가가 있는 삶은 낭만이 있고 아름답다. 힘든 과정은 모두 기억에서 사라지고 아름다운 것들만 남아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때 온몸으로 지리산을 만났고 서로 돕고 격려하며 그 어려운 봉우리에 올랐고 그리하여 성장했다. 산 등성이에서 화알짝 웃던 아이들의 건강한 얼굴이 지리산과 더불어 그리워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