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걷는 그곳까지가 삶이다 - 국토순례
나는 걷기를 참 좋아한다. 일상에서 잠시 틈을 내어 내가 사는 곳곳을 천천히 걸어다니며 자연이나 도시의 구석구석을 음미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은 땀이 날 정도로 동네 천변 산책로를 숨차게 걷는 것도 좋아한다. 다리가 움직이고 발이 지면에 닿기 시작하면 머리속에 엉킨 실타래들이 휘리릭 날아간다. 발바닥과 지면이 닿는 느낌, 콧 속으로 들어오는 바람냄새, 푸른 하늘이나 노을로 물드는 하늘의 색감, 그리고 근육의 움직임 등이 온전히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레드스쿨에서 아이들과 11년을 생활하면서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하는 두번째 일은 아홉 번의 국토순례였다. 5년을 주기로 남쪽끝 해남 땅끝마을부터 북쪽 끝 임진각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약 150km 정도씩,우리 국토를 자기 발로 한발한발 걸어 완주하는 대장정이다. 아주 개인적인 산책이나 걷기운동만을 즐겼던 나에게 국토순례는 또다른 도전이었다. 하지만 걷기를 좋아했던지라 조금은 만만하게 본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5월 한낮 더위에 국토순례는 쉽지 않았다. 해남과 강진 남도답사일번지라는 그곳을 늘 동경했지만 고학생인 나는 대학생으로서 한번쯤 누려볼 국토순례는 꿈도 꾸지 못했다. 대안학교 교사가 되어서야 아이들과 함께 책으로만 보던 구비구비 길들을 걸었다. 남도는 흙색깔부터 붉고 나무들은 진했다. 지역마다 나는 특산물로 만든 음식들도 새로웠고 다양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경험들이었다. 특히 나는 경상남도 마산출신이고 한창 지역갈등이 심할 시기에 청소년기를 지났다. 그래서 전라도는 가면 안되는 곳인양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더 미지의 땅이었다. 국토순례는 아무리 빨리 걷는다 해도 시속 6km를 넘기지 못하기에 발이 닿는 곳곳을 충분히 몸으로 흡수하게 된다. 나는 서른 중반에 담배잎사귀를 처음 보았다. 길가다 오리 가족의 행렬도 만나고 비에 홀딱 젖어 세 시간을 쉬지 않고 행군한 적도 있다. 섬진강의 아름다운 물길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김용택 시인을 만나기도 했다. 7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사고 없이 5일동안 날씨가 좋든 궂든 상관없이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시간이 20대 청춘에 누리고 싶었던 것들을 뒤늦게 하나씩 채워나갔던, 내겐 치유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첫 해엔 다들 아무것도 모르고 '해내야 한다'만 있어서 군대 행군 경험이 있는 교사가 주체가 되어 무려 170km를 걷는 엄청난 일정을 소화했다. 지나고 보니 그건 그냥 군대 행군이었다. 남원을 지날 땐 새벽부터 밤 9시까지 뒤쳐지는 아이들을 챙겨 앞뒤로 달리면서 걷다보니 발등에서 뼈가 이탈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중학교 1학년 아직은 어린이같은 신입생들은 참다참다 울음을 터트리곤 해서 그 아이들 손을 잡고 걷노라면 내 통증 정도는 열외가 되어야 했다. 2년차까지의 국토순례는 체력훈련, 극기훈련과도 같았다. 하루에 45km를 걸었던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하지만 그날 밤 먹었던 남원추어탕의 맛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국토순례 3년차에 사회선생님이 새로 오셨는데 지리와 역사를 통달하신데다 전국의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하이킹을 즐기던 분이셨다. 국토순례가 우리 국토의 역사와 문화 알기와 극기라는 두 가지 목적에 적합한 일정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아이들은 그저 꿋꿋이 걷기만 하던 초기 국토순례에서 벗어나 미리 우리가 걷는 공간의 역사와 문학사적 의미 등을 사전에 공부하고 이후 책 속에서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그 공간을 두 발로 걸었다. 신체를 통과하는 지식, 지식이 경험을 통해 몸으로 흡수되는 경험을 했다. 그 힘든 길을 우리가 함께..
지나고 보니 레드스쿨의 국토순례는 머리와 가슴과 몸이 서로 연결되며 지식과 경험이 통합되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대한민국 국토를 (비록 임진각에 멈추긴 했지만) 거의 두번 완주하면서 그 지역에서 만났던 바람, 햇살, 산과 나무, 꽃과 풀, 윤슬, 음식들, 사람들, 아이들과의 크고 작은 소동들이 오롯이 몸과 마음에 남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먼나라 얘기 같던 역사이야기를 읽을 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떠오르고, 정약용이 머물렀던 다산초당도 선하게 떠오르며 정약용의 마음에도 머물러 보게 된다. 최종 목적지인 임진각 도착을 준비하면서 교사들과 각 지역에서 떠온 흙을 잘 챙겨 마지막 의식으로 임진각에 각 도의 흙을 함께 모아 뿌리며 통일을 기원하던 일도 가슴 뭉근히 남아있다. 5년차 임진각에 도착했을 때 교사들은 너나할 거 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새로 길을 떠나는 아침마다 무탈하기를 바라며 자연에, 우리를 걷게 해준 국토에, 그리고 건강한 몸을 주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삼배를 올렸는데 그 아침이 참 간절하고도 뭉클했다.
여전히 4월이 되면 몸이 근질거린다. 온몸의 세포가 한바탕 순환된 느낌이 들 만큼 국토순례는 강렬했다. 학교 밖으로 나가 내 나라의 길을 뚜벅뚜벅 걷던 일을 내몸이 습관처럼 기억하고 있다. 철없던 방장들은 국토순례를 다녀오고 나면 방원들을 더 아끼고 불쑥 성숙해져 있다. 함께 한 경험, 서로 도움의 손을 내밀며 의지했던 기억, 책임감 등이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존 듀이는 말했다. 성찰이 없는 경험에서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나는 아이들을 만나며 이 말을 가슴에 진리처럼 새기고 살았다. 대안학교는 이것저것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하지만 경험이 그저 오징어땅콩 같은 추억거리, 또는 해봤네 하는 자랑거리로 끝나지 않으려면 후속과정이 참으로 중요하다. 아이들은 경험하고 또 그 경험을 돌이켜 성찰하며 성장한다. 그 경험을 통해 내가 배우고 느낀 것은 무엇이며 그 경험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나는 그 때 어떤 사람이었는가.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아본다. 진정한 교육은 그 경험들을 돌이켜 차근차근 성찰하고, 함께 했던 이들과 나누고 공감하고 또 피드백을 받는 과정까지인 것이다. 국토순례라는 멋진 경험을 삶에 의미있게 자리잡게 하는 가장 중요한 맺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