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한계 넘기1

레드인은 달린다 - 손기정마라톤

by 이민경

요즘 러닝이 한창 유행이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러닝에 관심을 보이고 천변 산책로에 나가면 언제나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은 아주 오랜 옛날 바퀴가 없던 시절 수렵과 채집을 하기 위해 두 발로 걷고 뛰어다녔다. 우리의 두 발은 땅을 딛고 일어서고 걷고 달리는 일을 하기에 아주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문명화 되고 사회가 복잡하고 빨라지면서 걷고 뛰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 되었다. 늘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바퀴를 이용한 이동수단은 우리에게 신속한 일처리와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우리에게서 신체성을 빼앗아 갔다. ‘나’라는 실체는 몸이요, 마음이요, 생각이며 경험의 집합체일텐데 거기서 몸이 쏙 빠져버린 것이다. 특히 교육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학력고사 세대인 나는 연합고사라는 입시체제를 통해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알아야할 기초 교양들을 달달 외워 시험을 보아야 했다. 심지어 음악, 미술, 체육조차 필기시험으로 보았다. 이것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학교에서 ‘몸’의 소중함을 배우지 못했다. 얼마나 오래 앉아서 버틸 수 있느냐가 대학입시의 당락을 결정했다. 우리는 몸을 잊고 말았다. 내게 다시 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알려준 것은 마음공부를 하러 다니며 접했던 춤테라피였다. 사실 어릴 적부터 한국무용을 너무나 좋아해 국민학교(요즘의 초등학교) 6학년에 늦게 배우게 된 무용학원을 시작 시간 2시간 전부터 가서 수업을 기다리곤 하던 나였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공부시간이 뺏긴다는 이유로 무용을 멈추었고 그 이후로 나는 춤을 잊고 살았다. 하지만 춤테라피에서 다시 내 몸의 움직임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나에게 몸이 있고 몸짓이 있다는 것, 경직되어 있던 몸의 구석구석을 조금씩 풀어가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가는 기쁨을 느꼈다.


학원 생활을 할 때 내가 만난 아이들도 비슷했다. 학교 갔다가 학원 갔다가 독서실 갔다가 집에서 자고 또 학교가는 일상. 아이들은 몸을 움직여 놀 틈도 없었고 서울 도심에는 그럴만한 공간도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숲과 공원이 많이 조성되고 러닝문화나 요가 등 운동을 워라밸의 일부로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도 싶다. 워낙 걷기를 좋아해서 출근 전 한강변을 따라 걷기의 낭만을 즐기기는 했지만 나는 거기까지였다. 걷는 건 좋지만 뛰는 건 싫었고 오르는 건 거부했다. 심장이 과도히 뛰거나 숨이 헐떡대는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금산에 내려오자마자 나는 달려야했다. 이유는 딱 하나 아이들이 달렸기 때문이었다. 교사로서 내가 가진 고집일 수도 있는데 나는 내가 하지 않은 것,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하도록 할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 당당하지 못한 기분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는 것은 꼭 같이 하고 싶어한다.


달리기는 첫번째로 내가 넘어야 할 고개이자 한계였다. 그런데 이 싫은 일이 깜깜한 새벽을 달리는 아이들과 함께하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나서 가능한 일이 되었다. 엄지발톱이 피멍이 들었다가 빠져버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피 냄새가 올라왔다.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하지만 천천히 뛰더라도 아이들이 달리고 있는 그곳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 처음 입학하는 아이들은 예비학교에서 아침마다 10바퀴 정도씩 달리기를 해야했다. 첫날엔 두바퀴, 둘째날엔 4바퀴, 셋째날엔 5바퀴.. 마지막날엔 모두 10바퀴를 돈다. 시작할 때는 한바퀴 도는 것도 힘에 겨워하던 아이들이 예비학교를 통해 함께 걷고 달리고 잡초를 뽑고 청소하며 몸의 기능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한다. 나는 학기에 한번씩 예비학교를 진행해 10회 이상의 캠프를 진행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은 이 일주일동안 처음에는 몸을 움직이는 걸 극도로 힘들어하지만 하루하루 함께 하면서 그 모든 몸의 움직임이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몸은 정직하다. 그리고 함께의 힘은 강하다.


아침달리기는 결국 하루를 깨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1년에 한번 마라톤대회를 위한 준비작업이기도 했다. 5km, 10km, 하프코스까지 완주해야 졸업요건이 갖추어지므로 아이들과 11월이면 마라톤대회에 나가게 된다. 나는 손기정마라톤대회 10km와 하프 완주경험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달리지 않았다면 내 인생에 없었을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빨리 달리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과 끝까지 달리는 것이었다. 마라톤 도전을 하며 나는 내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다. 내가 어떤 교사이고 싶어 하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또 성급한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외롭게 단지 두 발에 의지해 달리던 2시간 반의 시간동안 나는 참 많은 고통을 만나고 넘기고 생각과 감정들을 떠올리고 흘려보내었다. 그리고 결국엔 그저 달리는 두 다리를 느꼈고 각자의 삶을 제 속도로 달리고 있는 사람들과 아이들, 그리고 나를 보았다. 44세에 도전한 하프마라톤 완주의 경험은 내 평생 두고두고 자랑스럽고 의미있는 순간으로 남아있다. 그러기에 아이들에게도 자꾸 말한다. 몸을 움직이라고. 걷고 뛰어보라고, 그리고 죽을만큼 싫지만 마라톤대회에 한번쯤은 도전해보라고.. 멈추지 않으면 된다. 가다보면 자기 속도를 알게 되고 그 속도로 끝까지 가다보면 우리는 거기에 닿는다. 결국 혼자 가는 길이지만 또 혼자만은 아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