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탈이라는 설립이념

- 무지와 가난, 허약으로부터의 탈출

by 이민경

나의 첫 학교 레드스쿨 설립의 기초가 된 핵심어는 무가탈이었다. 무가탈은 ‘무지와 가난과 허약으로부터의 탈출’의 첫자를 따서 만든 조어이다. 사실 처음 나는 이 단어에 굉장한 거부감을 느꼈다. 본질에 가까운 교육을 꿈꾸며 내려온 이곳에서 하려고 하는 일이 80년대 새마을 운동 구호같은 무지와 가난과 허약으로부터의 탈출이라니! 하지만 설립자는 뜨거운 열정과 창조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자유롭지 않고 속박된 상태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무지, 가난, 허약이라는 각 단어들이 가진 뜻이 통념적인 개념이 아님을 스스로 이해하고 정리한 후에야 그것을 받아들이고 학교라는 실체 속에 담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무지란 ‘앎이 없음’을 의미한다. 보통 세상의 지식이 없을 때 무지하다는 말을 쓰곤 한다. 하지만 레드스쿨에서 의미하는 무지란 ‘나를 모르는 것’, ‘진리를 알려고 하지 않는 것’, ‘지혜의 부재’를 의미한다고 나는 정리했다. 그것이 설립자의 진짜 의도인지는 나는 모르지만 나는 무지를 그렇게 해석하고 소화하며 학교의 커리큘럼에 반영하려고 애썼다. 배움이 부족하고 지식이 없는 것도 무지의 일부분이겠지만 진정한 무지는 자기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휩쓸려 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러한 무지로부터의 탈출이 첫번째 개념이 되었다.

가난은 빈곤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가난하다고 하면 물질적인 가난을 많이 떠올린다. 어쩌면 설립자가 생각하는 가난은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정리한 가난은 내적 가난을 의미한다. 내면에 가진 게 없음, 내면적 곤궁함은 늘 타인에게 바라고 원망하고 구걸하게 된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이해받고 받고 받고 받고.. 하지만 내면이 풍요로운 사람은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여유롭고 유연하게 관계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일에 쉽게 마음을 내어 댓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을 줄 줄도 아는 사람이 된다. 그런 사람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함께 하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들이 동행한다. 그러기에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성장시키고 풍요롭게 만드는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이 두번째 개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허약은 힘이나 기운이 약하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허약함,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고 내면이 건강하려면 일단 몸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몸이 건강해지면 그 몸에 건강하고 싱싱한 마음의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그래서 허약으로부터의 탈출은 안팍의 체력을 키워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 세번째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무지, 가난, 허약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개교 10개월이 지나 완성된 학교 건물의 이름은 무가탈캡슐이 되었다. 무지와 가난과 허약으로부터 알을 깨고 나오는 곳.

지금도 그 이쁜 무가탈캡슐 건물을 떠올리면 가슴 한켠 용광로같은 뜨거움이 솟아오른다. 한때 뜨거웠던 깊은 사랑의 파동과 격동의 시절을 보내며 우리가 흘렸던 많은 땀과 눈물의 온도가 오롯이 느껴진다. 내 삶에서 가장 그립고도 너무나 아픈 양가감정의 근원지이다.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지력, 심력, 체력으로 교과를 구분하여 균형을 맞추어 커리큘럼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학교가 3년차가 되어갈 때쯤 거의 완성된 커리큘럼이 만들어졌고 레드북이라는 매뉴얼북까지 만들어내게 되었다.

지력교과 -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한문

심력교과 - 레드아포리즘(학교철학), 진로와 자기탐구, 성인식, 책읽기

체력교과 - 아침달리기, 검도, 마라톤, 명산등반, 국토순례


대안학교들 중 반반치킨을 원하는 학부모가 많다고들 우스갯소리처럼 얘기하는데 바로 그 반반치킨이 레드스쿨이었다. 간디학교와 민족사관학교를 섞어서 두마리토끼를 다 잡고 싶어하는 학부모들에게 욕망접촉되기 아주 좋았던 학교.. 그러나 한정된 시간에 그 많은 것들을 다 해내야만 했던 아이들과 교사들의 삶을 설립자와 학부모들은 잘 알지 못했다. 초기 학사일정을 돌아보면 내가 이걸 어떻게 아이들과 다 해냈지 할 정도로 놀랍다. 무지의 소산이다.

그리고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했지만 정작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그런 무지와 가난을 인지하지도 못했기에 탈출이라는 개념까지 가는 데에는 아주 길고도 긴 시간이 걸렸다. 진정 무지와 가난으로부터 얼마나 탈출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교사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월 100만원이 넘는 학비와 그 외 비용들을 감당해야 하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가난을 어찌 알 수 있을까.. 학교생활을 하는 내내 내가 가진 의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가난에 대한 개념은 교사마다 다 달랐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교육방향과 같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10년이 넘는 세월을 아이들과 나아갔다. 물질적 가난이든, 내면의 가난이든, 지식의 결핍이든, 지혜의 부재이든 우리는 조금씩 알아차리고 서로가 서로를 건드리며 성장해 갔던 시간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레드스쿨은 무지와 가난과 허약으로부터의 탈출, 내 안의 틀과 고정관념을 깨고 한계를 넘어가게 한 하나의 세계였던 것은 분명하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