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창기 학교의 풍경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처음을 만난다. 엄마뱃속을 나와 처음 숨을 들이쉬고 처음 입으로 무언가를 빨거나 씹기도 한다. 누워있던 아이가 처음 몸을 뒤집었을 때, 직립보행을 위해 일어섰을 때, 그리고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엄마‘라고 말을 했을 때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는 처음들을 엄마는 기억하고 있다. 나도 내 아이의 모든 처음을 오롯이 가슴과 눈에 담고 있다. 감사하게도 아이가 태어난 후 5년동안 나는 온전히 아이와 함께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그것이 나쁘게 말하자면 독박육아였지만 20여년이 훌쩍 지나 돌아보니 선물로 받아들여진다. 오롯이 혼자 아이의 모든 것을 돌보아야 했기에 나는 아이의 모든 처음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고통과 슬픔도 뒤엉켜 있었지만 아이가 다 커 이젠 더이상 내 돌봄이 필요없어지니 모든 것은 아름답게 편집되어 버린다.
학교의 처음도 그러했다. 레드스쿨의 첫 3년은 모든 게 처음 투성이였다. 빈 땅에 다섯개의 컨테이너가 ㄷ자 형태로 놓여졌다. 시골생활도 처음이었지만 컨테이너 교실에서의 수업도, 컨테이너교무실에서의 업무도 처음이었다. 야생의 아이들과 야생의 교사들이 만나 전자음이 없는 골동품 학교종을 진짜로 땡땡치면서 학교일과를 시작했다. 개교 100일이 지나고 6월이 다가오자 컨테이너는 너무나 더웠다. 우리는 선풍기 하나로 컨테이너에서 생활해야 했다. 체력은 바닥나고 파리들은 신나게 컨테이너 내부로 침입했다..나는 자연 속에서 감성을 키우기를 바라며 종종 아이들과 함께 호숫가로 산책을 갔다. 사실은 컨테이너 교실 안에서의 수업은 참을 수 없이 답답해서 언제나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야외수업을 제안하곤 했다. 돌아보면 그 시절 아이들의 7할은 자연이 키웠다. 맑은 공기, 아름다운 봄여름가을겨울의 시골풍경, 하늘, 그리고 먹을 게 널린 뒷산과 꽃들.. 아이들 뿐 아니라 고향을 떠나 금산으로 내려온 교사들도 돌보고 안아준 것이 자연이었다. 거칠고 험난했던 처음의 학교에서는 아이들도, 교사들도 마음이 쉴 자리가 필요했다.
처음이라는 사실은 많은 걸 용서해주고 기다려준다. 대안교육이라는 걸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있던 교사들은 자기방식대로의 수업을 진행했다. 정규 교육과정으로 본다면 빈구멍이 너무나 많았지만 굳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을 그대로 모두 배워야 한다면 대안학교에 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더 깊고 넓은 삶에 대한 이야기, 삶의 지혜를 전하고자 하는 수업에 교사들은 도전했다. 나는 학원에서 가르치던 국어교과서를 집어던지고 마인드맵으로 책을 구조화하고 생각을 구조화하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배움에 굳이 국정교과서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서로 조율되지 않은 수업들이 부딪히면서 첫 해의 레드스쿨은 마치 실험학교와 같았다. 그 때까지만해도 시간표가 비어있다거나 수업을 개설하고 없애는 아이디어들을 생각해내지 못해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책읽기 이렇게 6과목 선생님을 한명씩 두고 모든 수업시간표를 짰다. 인원이 적었지만 초등부터 고3까지 모든 학년이 있었기에 수업시간표를 짜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학년별 수업을 처음엔 진행했지만 아이마다 학습의 차이가 커서 레벨별로도 수업을 나누어보았다. 외부교사의 파트타임 운영도 했다. 2년차엔 매일 같은 시간에 영어수업을 모든 학년이 할 수 있는 레벨별 영어 동시수업도 진행을 해보았다. 영어를 매일 2시간씩 수업을 하려면 다른 과목의 수업이 줄어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교사회의 때는 늘 이런 문제가 쟁점이 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답없는 회의였다.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인데 그 안에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독서, 체력, 영성까지 모두 욕심껏 양을 채우려했으니 말이다. 어찌보면 우리는 대안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합의가 없이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도 처음이었다고 이해받을 수 있을까.. 나는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 35살의 이민경이 된다면 조금더 진지하고 충분히 이 문제의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듣고 또 이야기하며 마음을 맞추었을 거 같다. 그런데 충분히 이야기하고 듣고 마음을 맞추려했다면 지금 나는 여기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안맞았거나 엄두가 나지 않았거나! 그러므로 그 무모하고 실수투성이였던 나의 시작을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