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위험하다. 한 중간에 생일이 있는 달이고, 많은 이별과 실망이 있었던 달이며, 기억해야 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보통 11월에만 인용하곤 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달 이름에 따르면('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기 때문에 11월마다 심취하며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안 하고 넘어갈 뻔 했으나 지금 하고 있다), 4월은 얼음이 풀리는 달,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이라는데, 그렇게 새 희망과 시작의 봄이 정말 이제 온다는데도 영 행복하지가 않다. 그래, 행복하지가 않다. 몇 년 전에는 4월에 눈꺼풀에 결석이 생겨 길을 가면서도 눈물을 줄줄 흘리고 다녔는데, 그때는 산다는 게 너무 시시해서 매일매일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겨주기만을, 내가 우주를 위해 사라지는 절반이기를 바랐다.
올해 4월은 다른 의미로 심각했다. 진로를 근본적으로 고민했다. 아무래도 이 직업으로 버티는 건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쓸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했다. 계약이라는 게 있고, 책임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엉망진창으로라도 했다. 그러면 한숨을 쉬고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한 발자국씩 더 가봅시다, 하는 사람과 한 달에 한 번 미팅을 했다. 이대로 괜찮은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뭘 쓴다고 해도 되는 걸까?
4월이었거나 이미 5월이 되었거나 아무튼 그 봄의 어디쯤, 미팅을 마치고 헤어지려는데 상대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비스킷이었다. 고맙다고 인사하곤 가방에 넣고 헤어졌다. 비스킷 상자에는 작은 쪽지가 붙어있었다. 더 잘해보자는, 애써보자는 응원의 말 뒤에 이런 문장이 덧붙여져 있었다.
"작가님, 그래도 우리 불행하지는 말아요."
그렇군. 그때는 그냥 그렇게 거기 가만히 둔 쪽지가 이후로 가끔 내 마음속에서 펼쳐지곤 했다. 행복하면 좋겠지만 행복하려고 사는 건 아니야. 그래도 불행하지는 말아야지. 불행은 행복의 반대말 같지만 이 두 단어를 양 끝에 두고 얼마나 긴 사이가 있는지 우리는 안다. 행복의 모양도, 불행의 모양도 수없이 많고 다양하다는 것도. 그러니 일단 방향만 정하자. 행복의 방향으로. 불행하지는 말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의 다짐보다는 소극적이고 비관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게 지금 우리의 최선임을.
근데 비스킷은 맛이 없었다. 하긴 원래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쪽지도 감동적인데 비스킷도 맛있고 하는 식으로 이루어져있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