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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Dec 14. 2020

이 별이 그 별

책상에 앉긴 앉았다. 자료도 꺼내보았고, 잠깐 뭘 적기도 했다.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첫눈이 왔고, 마감은 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핑계지만 그럴듯한 핑계라는 게 중요하다. 눈을 못 본지 엄청 오래되었고, 첫눈이니까. 비록 오전에 일어나지 못해서 눈이 제대로 쌓인 걸 보지는 못했지만, 내렸으니 됐다. 눈, 그것도 첫눈이 내린 일요일에 일을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문장을 쓸 수 있게 되었으므로 첫눈은 할 일을 다 했다.


유성우가 내린다는 소식은 기억해두고 있었지만 꼭 보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린 날 유성우가 내린다니 아무래도 낭만적이고, 이런 우연과 이벤트에는 튕기지 않고 바로 넘어가주는 게 나라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첫눈이 내린 날이 아니라면 안 봤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갑자기 추워지지 않았어도 안 봤을 것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네 자리수가 되지 않았어도, 아마. 하지만 다가올 새벽은 영하 10도이고, 한파 특보가 온 서울은 앞으로 사흘간 계속 추울 거라고 했다. 모든 것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모르겠고 별이나 보자, 그런 거였다. 원래 올해의 목표 중 하나가 맨눈으로도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는 곳에 가는 거였다. 그러니 이 또한 그냥 우연은 아닐터였다. 코로나 이전을 원래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2020년 쌍둥이자리 유성우를 조경철천문대에서 생중계하는 국립과천과학관 유튜브 채널에 들어갔다. 조경철천문대를 찾아보니 강원도 화천에 있었다. 중계가 시작된 밤 화천의 기온은 영하 15도라고 했다. 한파로 인해 새로 산 망원경이 작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진행을 하는 교수가 거듭 사과의 인사를 전했다. 영하 15도에 멀쩡한 것이 몇 개나 되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멍청하게 화면을 보고 있으면 그 어떤 규칙도 없이 어느 순간 유성이 떨어졌다. 하염없이 보고 있었더니 시간이 잘 갔다. 너무 갑작스레 떨어져 소원을 비는 걸 잊었다. 그런데 애초에 소원이 없기도 했다. 가족이 건강하고... 글쎄요.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바라고, 원하는 일이 이토록 어색할 수가.


올해는 가끔 <드래곤 볼>의 원기옥을 생각했다. 모두의 기를, 힘을, 바람을 하나로 모아주면 아주 큰 힘으로 뭉쳐지는 것. 뭉쳐진 거대한 힘으로, 지구와 이 별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구해내는 이야기. 올해만큼 많은 수의 사람이 하나의 바람을 가진 적이 있을까. 원기옥이랑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간의 바람은 늘 생각보다 보잘 것 없다. 세계를 망쳤으면서, 간절함 같은 게 우리를 구해줄 리 없잖아. 이야기에서만 가능한 거야, 그런 건. 이야기에서라도 가능한 게, 좋을까 나쁠까.


소원을 생각하다 엉뚱한 데로 생각이 길을 틀고, 그러면 또 별이 후두둑 떨어졌다. 또 하나의 별은 별똥별이 영어로 뭐였더라 생각하는 사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 슈팅스타였지. 입 안에서 괜히 뭐가 터지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여하튼 다시 돌아가보자. 그러니까 정말로 소원은, 저의 소원은... 라이브 채팅창에는 돈, 주식 대박, 학업과 취업, 아이돌의 이름, 건강, 연애에 대한 소원이 별의 몇 배는 되는 속도로 끊임없이 쏟아졌고... 그러니까 저의 소원은, 제가 바라는 것은,


안녕. 안녕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마음이 편해졌다. 안녕할 수 있는 것들과 안녕하고, 안녕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본 채팅창의 소원이 "꿈에서 엄마 보게 해주세요"여서, 그 소원을 같이 빌어주려고 딱 한 개의 별똥별을 더 기다렸다. 이 별이 그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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