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년 전, 천장의 얇은 막 위로 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던 골방에 누워서 울었다. (쥐와의 대면을 막아준 얇은 막을 고마워하게 된 건 그보다 한참 지나서였다) 오랜 만에 만난 엄마가 살이 너무 빠져있었고 나는 그걸 보고 엄마가 간암에 걸린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 선생이 사람이 간암에 걸리면 몸이 몇 달만에 반의 반으로, 거기서 또 반으로, 그리고 나중엔 30키로 대가 된다고 말했던 것이 충격적이어서 한참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의대생도 아닐뿐더러 상식적인 의학과 관련해 어떠한 지식도 갖고 있지 않다. (아침마당에 나오는 명의들의 말에 코웃음치던 나였다)
나는 의사에게 엄마의 병에 대해서 전해들은 게 없지만 (실제로 병에 걸리지도 않았다) 엄마가 간암에 걸려서 나에게 효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그간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에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던 것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다면 나는 엄마가 외할머니가 떠난 후 가끔 울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자주 울 것이다.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핑계로 나는 모든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를 세게 짓누를 것이며 (현재로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짓이다) 맨 손으로 거리에 나가 쥐를 때려잡고 사람을 무는 개 앞에 서서 기꺼이 물리기를 자처하면서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질 것이다.
엄마가 없는 삶을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그렇다고 엄마가 살이 조금 빠졌다고 엄마를 간암으로 스스로 진단한 것은 너무 했다. 건강한 엄마를 왜… 고사 지내는 것도 아니고… 없던 병도 생기겠다 야…
나는 이렇게 극단적이다. 살 빠지는 게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라 누구라도 내 앞에서 살 빠진 모습을 보인다면 어디 아픈 거 아니냐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펑펑 운 다음날, 눈이 퉁퉁 부운 채로 엄마를 만나서 당시 유행하던 한식 뷔페인 계절밥상에서 밥을 먹였다. 엄마에게 퉁명스럽게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말한 후 그릇에 고기를 잔뜩 담아 주고나서 내 그릇에 음식을 채우러 음식 항아리 앞을 지나면서 울었다.
엄마는 “나 죽으면 후회하기 전에 효도해. 다른 집 자식들은 돈도 많이 준다던데” 라는 말을 정말, 너무, 지겹도록 많이 하는데 막상 내가 “엄마가 어디 아파서 죽을까봐 걱정돼” 라고 하면 또 그 말을 안한다. 마치 이제야 정신 차렸네, 하는 표정으로 흐뭇하게 왕처럼 나를 바라본다. “괜찮아. 엄마 밥도 여섯 끼 먹잖아. 조금씩 계속 한 시간마다 먹는 거야. 소식하되 자주 먹으면 건강해. 우리 새끼 엄마 걱정했어? 오구오구” 이러면서 추가로 자기가 준비한 말을 A4 용지로 따지면 3장 정도 이어서 한다. 그럼 난 그제야 눈물이 바짝 마른 눈가를 잔뜩 찌푸리며 정신을 차리는 거지. 엄마 짜증나…
그후 안심하고 몇 년을 지내다가 2년 전에 나는 또 다시 엄마의 병을 의사보다 먼저 깨달았다. 이번에 엄마의 병명은 바로 알츠하이머였다. 뉴욕에 있으니 동생 고다와 엄마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 가끔 얘기하는데, 고다 말로는, 엄마가 4번 연속으로 가스 불을 켜놓은 걸 까먹어서 집이 홀랑 타버릴 뻔했다고 했다. 우리는 동시에 카톡을 보냈다. “엄마 치매인 것 같다…” 나는 그 카톡을 보내고 나서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아 큰일났다. 우리 엄마가 치매에 걸렸구나. 어떡하지. 어떡하지. 엄마가 나를 잊으면 어떡하지. 너무 불쌍해서 어떡하지.
나는 바로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고다한테 얘기 들었어. 엄마 아무래도 치매인가봐. 아직 초기일테니까 병원이나 보건소가서 검사 받아보자. 초기면 그래도 치료 가능하다고 하니까 하루 빨리 가봐. 고다랑 같이 가봐. 걱정하지마”
엄마는 카톡으로 화를 냈다. 나는 엄마가 쓸데없는 소리하지말고 뉴욕에서 사위랑 싸우지나 말라고 하는 걸 보고 더 눈물이 났다. 치매 환자의 특징이 아니라고 아니라고, 부정하는 거라던데 엄마는 지나치게 치매인 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엄마 가스불 계속 켜놨다며. 탄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잤다며. 한 번도 아니고 짧은 기간 동안 세 번 넘게 그런거면 그게 정상이겠어? 괜찮아. 검사만 받아보는 거잖아.”
그러면서도 나 또한 최근에 가스불을 켜놓고 낮잠을 자서 한 번은 보리차 끓이던 냄비를 홀랑 태워버리고(가득 담긴 물이 다 증발해버리고도 냄비가 타버린 것이다) 또 다른 한 번은 냄비에 끓이던 흰쌀알이 마치 흑미인냥 까맣게 바짝 말라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 후 두 번은 사소하게 데우던 찌개를 까먹고 있다가 찌개가 아주 짜게 쫄아버린 정도였다.
나는 주방이 복도 끝에 분리돼있어서 그런거고 (우리집 복도는 한뼘(?) 정도로 매우 짧다) 엄마집은 거실과 주방이 일체형이라 가스불이 안보일 수가 없다. 설마 나도 치매면 엄마랑 딸이 같이 치매에 걸리는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었다. 그러면서 나는 치매가 아니라고 부정했다..
엄마는 그후 깜빡하는 거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최소한 20년은 더 엄마와 즐겁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싶다. 이런 말이 무색하다는 건 알고 있다. 사람 일이야 알 길이 없으니 너무 자주 글에서(만) 다짐하는 매일매일 카톡이라도 하기로 해본다. 돈 주고 산 엄마사랑해 이모티콘도 의무적으로라도 사용해보기로 한다.
아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구나. 엄마의 없는 병을 상상하면서 굳이 어렵게 깨닫는 사실이다. 엄마에 대한 나의 크나 큰 사랑을 말이다.
정작 엄마가 정식으로 병원에서 진단받은 허리디스크나 식중독에 대해서는 사소하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더 많은 깨방정 사진들은 @hem_allo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