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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도 Dec 05. 2020

브런치 글을 모두 삭제했다

3년차 브런치작가의 브런치 new 전략

브런치 작가가 된지도 3년이 다 되어간다. 퇴사하고 싶은 밤, 새벽 1시까지 야근을 하고 온 날에 무조건 글을 하나씩 써서 올렸다. 그렇게 1년은 미친듯이 썼다. 지금까지 200개가 넘는다. 하지만 얼마 전 34개의 글만 남기고 전부 글을 삭제했다. 엄밀히 따지면 비공개로 돌린 거지만 아마도 다시 그 글들을 공개하지 않을 것 같다. 


삭제한 이유는 단순하다. 부끄럽고 쪽팔려서. 글이 쓰레기여서다. 


그럼에도 글들을 완전히 Delete 할 수 없던 건 그 과정에서 내가 많이 성장했다. 대학교 교양수업으로 들은 글쓰기 수업이 전부였던 나에게, 매일 글을 쓰는 것만큼 좋은 스승은 없었다. 브런치는 몰스킨처럼 깔끔한 온라인 공책을 만들어주었다. 브런치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더욱이 브런치를 통해 내가 책을 한 권 냈다. 책을 낸 것은 내가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글을 쓰며 먹고 살 수 있으리란 가능성이었다. 브런치 덕분에 나는 그 가능성을 발견했다.


브런치 작가 1년차

네 번의 브런치작가 탈락 후 가까스로 작가로 승인된지 10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브런치 제안하기'를 통해 작은 출판사의 편집자에게 메일이 왔다. 다음날 회사 근무 중에 전화가 걸려왔고, 추운 겨울, 복도에 서서 책을 출간할 계획이 있는지 묻는 편집자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나를 기억한다. 당연히 소리지르면서 "YES!!!"를 외치고 싶었지만 갑처럼 보이기 위해 침착한 척, 생각해본다고 했다. 그 후 미팅을 잡았고, 그날 곧바로 출간계약서를 작성했다. 


작가님이 브런치에 올린 글을 다 읽었어요. 뭐랄까. 투박하고 솔직하면서도... 음.. 이렇게 말해도 될까. 찌질하다!? 그게 너무 공감되더라고요. 저 뿐만 아니라 요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 편집자의 말


브런치 작가 2년차; 브런치 활용법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글을 모아서 책을 내기 위함이었고, 1년도 되지 않아서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너무 쉬운데? 생각했지만 책을 파는 건 또 다른 일이더라. 


아무튼 브런치 2년차에 접어들면서는 브런치 활용법을 달리했다. 브런치를 마치 에버노트처럼 활용했다. 공개하진 않을 때가 많았지만 이상하게 브런치 글쓰기 창에 글을 쓰면 잘써지는 기분이랄까? 브런치는 작가에게,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글을 쓰고 싶도록, 글이 술술 쓰이도록 UX/UI 디자인에 적잖이 공을 들였다. 4년 동안 디자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트렌디하고 편리하다. 글에서 중요한 가독성을 높여주는 디자인 또한 이만한 플랫폼이 없다. 


하지만 책을 낸다는 목표에 도달하다보니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열정이 사라진 거다. 가끔씩 글을 올리고, 올린다고 해도 홍보글이 대부분이었다. 브런치에 다시 글을 쓰는 새로운 원동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브런치 작가 3년차 

브런치 짬밥 3년이면 대단해질 줄 알았는데 책이 나온 후에도 다시 글을 쓰지 않으며 오히려 슬럼프가 지속됐다. 브런치북 공모전에 한 두 번 지원했지만 남들처럼 신춘문예에 출품하듯 꼼꼼히 글을 쓰거나 기획하지 않았고, 마지막 날에야 겨우, 퇴고도 못한 글을 모아서 냈을 뿐이다. 주변 브런치작가들도 나처럼 예전만큼 브런치를 하지 않았다. 글맛 작가님은 공공연히 브런치보다 인스타에 열을 올리겠다고 선언할 정도였고 나 또한 그에 편승해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콘텐츠를 올리며 플랫폼을 옮겨가는 와중이었다. 


잠시 글맛작가님 브런치를 소개하자면.. 아 잠깐만 이거 뭔 내 글보다 더 크게 뜨고 난리임... 아무튼 가서 뭐 구독하고 읽어보시면 번역가님이 맞나 싶게 유쾌하고 재미있는 분이랍니다! 


https://brunch.co.kr/@glmat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브런치를 끊어야겠다는 다짐과 다르게 


문득, 그래도 역시 브런치가....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 브런치에서 개성있는 글을 쓰는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로! 글맛 작가님 역시 브런치를 과감히 접을 수 없는 이유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관계자들과 책읽는 유저들이 많이 찾는 플랫폼이 바로 브런치라는 걸 들었다.


글 200개를 지운 이유 

그러니까 글을 거의 몽땅 지운 이유는 새롭게, 제대로 된 글을 올리고 싶어서다. 누가 봐도 '이 사람 괜찮은 글 쓰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뭐 그렇다고 지금 남겨둔 34개 글이 꼭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그동안 브런치를 운영하면서는 글을 많이 쓰는 것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잘 쓴 글, 공유가 많이 된 글은 10% 정도 였다. 그 10%도 어그로(?)성 글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심금을 울리는 글은 손에 꼽는다. 앞으로는 나의 포트폴리오가 될 브런치를 있어보이게, 아니 최선의 나를 잘 드러내도록 전략적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글을 비공개르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0개의 새로운 창을 켜서 일일이 클릭을 해야했다. 가뜩이나 느린 컴퓨터로 인해 시간이 꽤 걸렸지만 글을 정리하고 나니 기분이 나아졌다.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기도 했다. 나는 다시 처음처럼 글을 쓸 예정이다. 많은 글이 아닌 재미있는 글, 나다운 글을 꾸준히 써내려가다 보면 나도 브런치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지 않겠어? (결국 이게 목적이었나) 




온도와 뉴욕에 살면서 글을 씁니다. 인스타그램에는 짧은 글과 사진을 올리고 있어요.  


instagram.com/1988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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