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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국 Jan 19. 2023

나는 만화를 보며 운다.

다 늙어서...

아들이 훌쩍이고 있었다.

아들은 웹툰 연재를 단행본으로 출간한 그러니까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뽀짜툰'이라는 제목이었다.

(이 아래로는 '뽀짜툰' 6권의 스포일러가 꽤나 있다.)

아들은 울면서 책의 에필로그 부분을 펼쳐 보이며

너무 슬프다며 아빠도 읽어 보라고 했다.

그 만화에서는

고양이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천국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양이는 지상의 시간은 이곳에서는 금방 지나가니까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거야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 주인에게 하는 이야긴 거 같은데...

그러면 안 될 거 같은데...

아무튼 고양이는 그때까지 안녕이라며 작별 인사를 남기고 있었다.


아들은 어떠냐며 슬프지 않냐며 그러니까 공감을, 나의 눈물 한 방울을 촉구했다.  

아들에게 이야기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이야기를

따라와야 하는데 아빠는 에필로그만 읽어서 그다지 슬프지는 않구나.

아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 고양이가 죽는 부분만 읽어 보라며 책을 건넸다.

어른은 쉽게 울지 않는단다.

훗 웃으며 아들의 책을 건네받고 아들이 가리키는 부분을 읽었다.

펑펑 울어버렸다.

고양이는 여러 병에 걸려 있었다. 의사는 고양이의 고통이 심할 거라며 주인에게 안락사를 권했다.

주인은 차마 고양이와 작별할 수 없어서 먹을 힘도 없는 고양이를 계속 보살폈다.

하지만 고양이의 상태는 계속 악화되었고

어느 날 심한 발작으로 괴로워하는 고양이를 보며

주인은 결국 떠나보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대성통곡을 확인하고

아들은 뿌듯하게 돌아갔다.  

만화를 보고 우는 게 얼마만인가?!

생각해 보면 어릴 때는 만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 수많은 만화 캐릭터를 떠나보냈다.

아주 어릴 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별나라 손오공'이라는 꽤나 유치한 제목으로

공중파에서 방송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아마 여주인공인 오로라 공주라가 죽는 거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그 시절 나의 세상은 그때 잠시 멈춰버렸었다.

이 만화를 알고 있다면!! 당신은 나이가 많다.

'나디아'라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었다. 아마 걸프전 때었던 거 같다.

그때 마지막 편에서 나디아의 아빠가 죽는 장면이 있었다. 그날도 그렇게 서럽게 울었더랬다.

'아기공룡 둘리'에서 둘리와 둘리의 엄마가 이별하는 장면은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충격적이었었다.  

만화영화만 보고 운 건 아니었다.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일본 소설이 있다.

(나 오타쿠구나....)

나름 대하소설인데 소설 초반부에 주인공의 절친인 '키르이하이스'의 죽음에 독자들은 오열하고

후반부에는 두 명의 주인공 중 하나의 죽음에 독자는 거의 기절하게 된다. 나도 미치는 줄 알았다.

어릴 적 읽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홈즈가 죽는 장면에서도 울었고(다시 살아나긴 하지만)

삼국지 읽을 때는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이 죽을 때마다 울었던 거 같다.(장비가 죽었을 때는 안 울었다.)

나이가 들어서 이젠 눈물이 적어지나 했는데

슬픔의 역치는 나이와 비례하는 건 아니었나 보다.

'은하영웅전설' 소설이 원작이며 애니매이션, 게임으로 각색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꽤나 답이 없는 주제를 명랑하게 다루고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린 이야기에 수월하게 공감하고 그 서사의 끝에서 창작자가 의도하는 감정을 표출한다.

그러니까 드라마나 영화를 감상하고는 쉽게 운다.

하지만 현실에서 누군가의 삶에 그렇게까지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다.

친구네 집 고양이가 죽었다고 해서 우리는 쉽사리 눈물 흘리지 않는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아마 서사가 결핍되어 있어서가 아닐까?

연인과 헤어진 친구를 위로할 때 우리는 진심으로 그 친구의 슬픔에 공감하기 힘들다.

친구와 연인의 서사는 그 둘만의 은밀한 것이기에 우린 그 슬픔의 깊이를 헤아리기 힘들다.

그들은 그들만의 즐거움과 슬픔 어려움을 견뎌나가고 함께 하고 기뻐했

그들만의 시절이 있었던 것이고 헤어짐은 그 시절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다시는 반복될 수 없다는 선언인 것이다. 그 슬픔은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것이니

제삼자는 온전히 그 사연을 살펴서 공감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위로는 겉치레가 될 수밖에 없고 진심으로 당사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소설이나 만화, 영화는 다르다.

사건과 세월의 흐름이 압축되어 있을지언정 만남과 일상 헤어짐 속의 사연과 감정을

우리는 지켜보고 공유하게 된다. 감정적 변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니

그 이야기들의 소비자 역시 얼마나 압축되고 극적인 감정 변화를 겪게 되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결국 공감해 버리고 최종적인 카타르시스의 국면에 들어가는 것이리라


나이가 들면서 현실에 시큰둥 해졌다.

주변 사람들의 슬픔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면서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깐 Pick me 노래에 맞춘 소녀들의 딱 맞춰진 군무를 보며...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어

눈물이 나왔었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아내도 미래를 걱정하고 과거를 후회하며 울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오늘

만화책을 보며 흘린 눈물이 주는 상념이

내가 그렇게 잘못된 게 아니라는 위안을 준다.

물론 확신은 없다.

소녀들이 어찌나 장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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