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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국 Jun 04. 2023

가르침 없는 배움

천왕봉을 오르고 내리고

지리산 천왕봉같이 높은 산은

3분의 1까지는 체력으로 그다음 3분의 1은

너무 힘들면 분비된다는 호르몬의 힘으로

나머지 3분의 1은 이제 많이 왔으니까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착각으로 오르는 것이다


등산은 항상 깨달음을 준다


높은 산을 오르는  특히 더 그렇다.

등산이 인생이 자주 비교되는 건

그렇게 끊임없이

묵묵하게 견디며 발걸음을 옮기며

지치고 쉬고 웃고 힘들어하고

실망하고 힘을 내고 뿌듯함을 느끼는

과정의 연속이 우리네 삶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번 등산에서도 느끼고 생각한 게 많았다.

산이 너무 높아서 시간 자체가

너무 많았다. 

산 3개 정도 눌러주지도 않고 겹쳐 놓은 느낌

등산의 시작은 새벽 3시였다.

천왕봉 하절기 등산은 새벽 3시부터

오후 2시로 제한한다. 이걸 어기면

6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정보 출처가 산에 오르다가 잠깐 쉴 때

만난 아저씨다 보니 사실 여부는 자신이 없다.)

렌턴이 있지만 새벽 3시는 참 어두운 시간이다

나무로 둘러싸인 등산로는 더 그렇다.


하지만 가장 단 시간에 많은 거리를

이 어둠 속에서 올랐다.


시작점은 항상 성공에서 가장 먼 거리다.

상황도 가장 어렵고 정보도 부족하다.

그래서 무모하게 힘을 낼 수 있다.

효과적이고 의욕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어둡고 목표가 보이지 않지만

어차피 그런 거라고 받아들이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발은 가장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들고 무기력해지면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나보다.


첫 번 깨달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시작은 무모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초반이 가시적 성과가 가장 두드러지는 시기고

그래야 지칠 때 회상할 수 있는 초심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의욕만으로는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 오를수록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찬다.

조금씩 쉬고 다시 걸었지만 쉬는 빈도는

늘어가고 힘겨움은 더해졌다.

이 놈의 등산로는 왜 이렇게 주구장창 경사만 있는지

누가 산 아니랄까 봐 귀염성 없이 마냥 오르막길이다.

게다가 지리산은 어쩐 일인지 중간중간에  

마땅히 앉아서 쉴 만한 휴식터가 많지 않다.

하산길에 생각한 건데 초반에 의욕적으로 움직이고

퍼질러 쉬었다가는 정상까지는 죽어도 못 갈 거라는

섬세한 배려가 아닐까도 싶었다. 아니면 그냥 귀찮았거나.


하여간 난 너무 힘들어서

살짝 샛길로 빠졌다. 지리산 등산로같이

많은 사람이 통행하고 잘 정돈된 등산로는

샛길로 빠지기도 어렵다. 워낙 구분이 되어있고

조난의 위험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푹 쉬고 싶었다.

마침 널따란 바위가 있었다.

거기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보였다. 보름달이라

별이 많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낭만이라 부를 수준은 되었다.

 하염없이 걷다가 하염없이 별을 바라보니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다. 몇 분을 그렇게 늘어져 있다가

더 있다가는 잠들겠다 싶어서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그래도 좀 힘이 생겼다. 다리도 의욕적으로 움직여지고

숨이 덜 찼다.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별이 사실은 태양같은 애들인걸 생각하면 왠지 밤하늘이                         성의없어  보인다.

두 번 깨달음, 쉴 는 충분하게 과감하게 쉬어야 한다.

어중간하게 쉬는 건 해야 할 일이 계속 머리에 남아

육체는 쉬어도 정신의 휴식이 어렵다. 다시 힘을 내기

위해서는 머리를 비워야 한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푹 쉬어야 한다.


그래서 휴식에는 기간이 중요하다.

충분히 머리를 비울 수 있을 정도

가장 스트레스 주는 존재의 이목구비가

흐릿해질 정도의

시간 동안 쉬어야 한다. 

휴식의 질도 중요한데

내가 좋아하는 NBA의 탑 플레이어들은

시즌과 연습 시간에는 가혹하게 자신을 몰아대며

훈련하지만, 쉴 때는 최대한 법이 허락하는 선에서

(그 선을 넘기도 하고)

본인 내키는 대로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놀고 휴식을 취한다.

내가 좋아하고 몰입한만한 걸로 휴식 시간을

채워야 한다. 쉬는 것도 쉬어본 놈이 잘 쉰다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등산은 계속된다.

산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도 죽겠다 싶을 때쯤 이정표가 나온다.

하지만 이정표를 봐도 별로 위로가 안된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이렇게 보잘것없었나

라는 실망을 주고 앞으로 올라온 길보다

올라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았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런데 걷다 보니

이상하다. 아까만큼 힘들지 않다.

약간 흥이 나고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그래서 조금 속도를 붙여 산을 오를 수 있었다.

난 이 이유를 알 듯했다. 짚이는 데가 있었다.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는 건 없으면 안 올랐을 거라는 말도 된다.           산의 존재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과거에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할 때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분류된 어떤 종교

(주변에 위협을 끼치는 집단은 아니었다.)

를 믿는 마라톤이 취미인 아저씨를 만났는데,

그분은 마라톤 하프 코스를 종종 뛰기도 하신다고 했다.

내가 힘들지 않냐고 질문을 하니깐

마라톤을 하다 보면 너무 힘들 때가 오는데

그 지점을 지나치면 갑자기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 순간이 온다고 한다.

그래서 그 순간을 계속 만끽하고 싶어

마라톤을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의 몸은 참으로 신묘하여

너무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모르핀같이

오히려 쾌락을 증대시키는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어

고통을 줄여준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사자에게 물리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도

생각만큼 그렇게 아프지는 않다는...

(확인하기 어려운 정보다. 표본이 적다.

생존자부터 확보하기가...)


아... 이게 그 순간인가 보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고 힘이 생겼다.

희망과 의욕이 높은 지분으로

내 머리를 지배했고

그게 또 내 몸을 끊임없이 빠르게

움직이게 했다.


세 번째 깨달음, 죽을 거 같이 힘든

순간이 지나면 반드시 좋은 순간이 온다.

의심할 수 있겠지만 이건 사실이다.

죽을 거 같이 힘들다는 건 그게 최악이라는 이야기고

최악이라면 이제 남은 건 나아지는 일뿐이다.

그 순간이 다소 길 수도 있지만

일단 그때보다는 미약하게라도

나아질 일만 남아있다.

바닥이니깐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물론 끊임없이 걷고 있고

목표를 향한 의지가 있다는 전제 하에

그러니 포기는 언제나 이르다.



다음 편에 계속(아무도 기다리지 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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